[대도무문-쉬운 길로 들어가라!]

2009. 9. 9. 22: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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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로 들어가라!]


세상에 많은 길이 있지만,
우리를 편하게 이끄는 길은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험하고 어려운 길 역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갈 길은 그런 길이 아닙니다.
일반인은 가파르고 험한 길보다, 넓고 편한 길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넓은 길, 편한 길이 상식적인 길이요 '보편적인 길'입니다.




우리가 특수 목적을 위해서는 가파르고 힘든 길을 가야할지 모르지만
(이런 이유로 소위 '특수부대원'들은 평상 시 일부러 굉장히 힘든 훈련을 받지요),
이 세상은 대부분 '특별'한 일이 없습니다.


흔히 바둑에서 '묘수(妙手) 나오는 바둑은 진다'라고 하는데,
묘수가 아주 기발하고 대단한 것임엔 틀림없지만,
묘수가 나와야 할 정도의 국면이라면 묘수를 둔 기사(棋士)에게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수부대도 마찬가지라, 전황이 유리하고 별 다른 일이 없으면
굳이 특수 부대를 투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해탈을 위해서도 굳이 특별한 방법이 필요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평범한 방법으로 해탈에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평범한 나의 모습, 나의 삶이 바로
해탈에 이르는 길이란 것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해탈에 허기가 져 끝 모를 방황을 하는 것입니다.
천생연분의 조강지처를 옆에 두고
엉뚱한 곳에서 다른 이상의 여인만 찾아 꿈속을 헤메는 것이지요.



보현행원은 쉽고 편하게 해탈의 길, 행복의 세계로 가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늘 살고 있는 이 삶 속에서,
우리의 삶 그대로'를 깨달음의 세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멀리서 '새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삶 그 자체를 '깨달음의 삶'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화엄경에는 역설적으로 '이세간(離世間)'이라 하여,
이 세상이 바로 정각이 이루어진 부처님 세계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하면 결코 부처님 나라는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세간'은 문자 그대로
세속을 버리고 멀리 산 속이나 무인도를 가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눈을 떠서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입세간(入世間)'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지방의 어느 한적한  절에 갔다가 모처럼 절을 찾아 데이트하는
20 대 초반의 젊은 남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젊은 남녀에게 불교를 전하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었습니다.



30 대 후반이나 40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스님은,
약수 한잔 먹으려는 젊은 남녀에게 다가와
'처사님은 왜 사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모르고 살아서 뭐하느냐?' 는 데까지 이르고,
마지막엔 '참선하라' 라는 일성으로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그것도 처음엔 말씀을 높이는 듯 하더니
연배가 아래인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곧 하대를 하시고
윽박지르듯 질문과 일장 훈시를 하는 것이었지요.  


절에 데이트하러 온 이 두 젊은 연인들은
난데없는 스님의 훈시(?) 앞에 마치 죄(?)지은 학생들처럼
좌불안석으로 스님 말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선 말씀을 끝으로 스님이 한 템포 쉬는(?) 틈을 타
재빨리 도망치듯 절을 내려가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야 이 젊은이들이 다시는 절에 오겠습니까?



이런 사례만 아니더라도 우리 불교는
일반적으로 너무 어렵게 접근을 가르칩니다.



불교가 무언지도 모르는 초보자 앞에,
자상한 설명 대신 보통 염불하라, 좌선하라고 하시며 말씀을 맺습니다.



염불이 뭔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아미타불이 더 좋다 관세음이 더 좋다고 하시고,
질문하는 이 놈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하십니다.



좀더 교학적인 분은 삼법인 사제 팔정도 오온 십이처를 설명하러 드시는데,
서양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에개 이런 말씀은
도통 알아 듣지 못하는 개념이요 단어들입니다.
이런 풍토에서 젊은이들이 불교에 마음을 쉽게 낼 수가 있겠습니까?...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1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윤태원

소심하다는 것은 상처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가 있는 사람은

미연에 그것을 방지한다

또 . . 상처받기 싫어서

그리고 그 상처는 마음 속에 깊이 남아

마음이 아닌 죄에 각인된다

그리고는 그 상처는 곧 그 사람 자신이 된다

 

 

2 낙원/미야베 미유키

 

낭비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를,

시간을 낭비하기는 너무도 싫다.

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 엄청난 금리에

놀라는 것이다.

 

 

3 망각/니체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등장하는 명대사다. 원래는

니체가 남긴 명언으로 실연의 아픔을 위해 사랑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이 영화의 스토리처럼

망각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커다란 축복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잊을 수 있기에 멀쩡한 표정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