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은 웅장한데 부처는 영험이 없구나…馬祖道一

2009. 8. 3. 23: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법당은 웅장한데 부처는 영험이 없구나…馬祖道一선어록

 

마조(馬祖;709∼788) 선사는 중국 사천(四川)의 한주(漢州) 출신으로 속성은 마(馬)씨, 법명은 도일이다. 자주처적(資州處寂)에게 출가하고 원(圓)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남악회향을 만나 크게 깨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회양 선사가 남악의 반야사 주지로 있을 때 어느날 마조가 찾아왔다. 회양 선사가 물었다.

 

"좌선은 무엇하러 하는가?"

"성불하려고 합니다."

 

마조의 대답에 회양 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벽돌 하나를 집어다가 바위에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스님, 그 벽돌은 왜 갈고 계십니까?"

"응, 이걸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마조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이에 회양이 마조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만을 해서는 성불할 수도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달구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달구지에 채찍질을 해야 하느냐, 소에 채찍질을 해야 하느냐?"

"……"

 

마조가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자 회양 선사는 준엄하게 꾸짖었다.

"좌선한다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부처를 흉내내는 것이니,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일이다.

또 선은 앉거나 눕거나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이란 영원한 것이어서

어떠한 형태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니라."

 

마조는 여기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고 회양 선사를 10여 년 간 모시다가,

강서(江西)로 떠나 방장(方丈)의 지위에 올랐다.

 

 

마조 선사에게 8백여 명의 문하인이 운집했을 때는 바로 홍주(洪州;南昌)의 개원사(開元寺)에

머물 무렵이었다. 어느 날 제자가 마조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은 왜 마음이 부처라고 하십니까?"

"어린애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울음이 언제쯤 그치겠습니까?"

"부처인 이 마음은 실제로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어느 날 저녁, 공양을 마치고 마조 선사는 제자들에게 달구경을 가자고 했다.

그날 스승과 나온 제자는 보원(普願) 지장(智藏) 회해(懷海)였다. 마조 선사가 말문을 열었다.

 

"이런 밤에는 무엇을 하는게 좋을까?"  지장이 나섰다.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기에 좋은 때입니다." 회해가 이었다.

"참선으로 정신을 수련하기 좋은 때입니다."

그러나 보원은 아무 말없이 있다가 소매를 툴툴 털고는 가버렸다.마조 선사가 입을 열었다.

"오직 보원만이 현상세계를 초월했구나."

 

 

하루는 마조 선사와 회해가 산보를 하고 있었다. 들오리 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마조 선사가 물었다.

 

"무엇이냐?"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갔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회해의 이 말에 마조 선사는 회해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비틀어 잡았다.

회해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파 "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마조 선사는 태연스레 말했다.

 

"날아가 버렸다더니 여기에 있군."

회해는 이 말에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마조 선사의 뛰어난 제자 중에 대주혜해(大珠慧海)가 있다.

그가 처음 마조 선사를 찾아왔을 때 마조 선사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느냐?"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왔습니다."

"여기까지 무엇하러 왔는가?"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 불법이 어찌 나한테 있겠는가?

그대는 왜 자기 집에 있는 보배를 돌보지 않고 밖에서 찾고 있는가?"

 

혜해는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끔벅이다가 되물었다.

"제게 보배가 있다니요? 무슨 뜻인지……."

 

마조 선사는 혜해의 끄벅거리는 눈이 우습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내게 묻고 있는 그대가 바로 보배일세. 그대 배 안에 모든 보배가 가득 갖추어져 있어

평생을 써도 바닥이 나지 않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밖에서 찾아다니는가?"

 

 

하루는 경전에 조예가 깊은 분주무업(汾州無業)이 찾아왔다. 마조 선사는 그의 예방을 받고

우렁찬 목소리와 장대한 그의 체격을 보더니 말했다.

 

"법당은 웅장한데 그 안에 부처가 안 계시는군."

이 말에 무업은 무릎을 꿇고 실토했다.

"소생은 모든 경전을 거의 다 통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처라는 말은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때 마조 선사가 다시 한마디 던졌다.

"그렇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바로 부처이지 부처가 따로 있는게 아닐세."

무업은 아직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스님, 달마 대사께서 전해 주셨다는 심법(心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쓸데없는 일에 바쁘군. 잠시 물러갔다가 다시 오게."

마조 선사는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무업이 무색해져서 물러가려고 일어섰다.

이때 마조 선사가 큰소리로 불렀다.

 

"스님."

무업은 돌아서서 마조 선사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무엇인가(是甚?)?"

마조 선사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무업은 크게 깨달음을 얻고는 말했다.

"저는 경전에 통달했으니 내 위에는 아무도 없는 줄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늘 선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일생을 헛보낼 뻔했습니다."

 

 

어느 날 마조 선사에게 젊은 대매(大梅)가 찾아와서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조 선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지."

 

이 말에 대매가 바로 깨치고 그 길로 깊은 산중에 들어가 숨어 살며 수행을 계속했다.

마조 선사는 그 소식을 듣고 후일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 한 스님을 보냈다.

그 스님이 대매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은 마조 선사에게 무엇을 배웠길래 이 깊은 산중에 들어와 사시는지요."

대매가 말했다.

"마조 선사께서 내게 말하셨소, 마음이 곧 부처라고. 그래서 산중에 들어와 살고 있소."

찾아간 스님이 말했다.

"마조 선사의 요즘 말은 다른데요."   대매가 물었다.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요?"

"예, 요즘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매는 그 말에 관심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늙은이가 뭐라고 하든 나는 마음이 곧 부처요."

 

스님이 돌아와 마조 선사에게 그대로 보고하자 선사가 말했다.

"매실이 익었구먼."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세요

타인의 행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결코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 내면의 힘을 끌어내려면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건네야 합니다.
당신의 꿈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는 건지요?
그렇다면 자신에게
"넌 세계 제일의 부자야" 라고 말하세요.
멋진 사랑을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상대에게 애정을 담아 말을 건네세요.
"안녕 하세요. 좋아 보이네요"
"안녕하세요. 안색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상대에게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는 사람과
그저 기계적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무뚝뚝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겠습니까?
둘 가운데 한 사람은 좋은 상대에게
둘러싸여 멋진 사랑을 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머피 박사는
이렇게 "마음을 담아 말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머피 박사는 "말은
신 그 자체다"라고 주장합니다.
말에는 실로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
사소한 말로도 커다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결과가 일어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지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또 자신에게도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꽃씨를 심으면 꽃이 피는 것처럼
마음에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땅에 꽃씨를 뿌리는 것은
마음에 소망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빈곤을 느끼면 빈곤하게 되고
번영을 느끼면 번영하게 되고
기품을 느끼면 기품 있는 존재가 됩니다.
- 월간 좋은 생각 -


 

 

☞ 공덕총림의 세계 덕림 http://cafe.daum.net/cnu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