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http://kr.img.blog.yahoo.com/ybi/1/7c/05/jampetring/folder/39802/img_39802_654486_13?1088776909.jpg) 2004년에 타계하신 시인이 투병과정에서 '영원이라는 것은 저승에 가 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 곧 영원 속의 한 과정'이라는 유언과 함께 남긴 시다. "내 사랑을 가장 잘 담은 시"라는 그의 말처럼 인간 존재와 우주를 아우 르는 진리의 명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가난한 절학자 디오게네스가 떠 오른다. 일광욕을 위 한 한 뼘의 햇살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갈망보 다 더 소중하다고 역설했던 디오게네스 "적게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 이요 만족할 것이다. 많이 구하라. 그러면 네 갈망은 영원히 멈추지 않 을 것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저승가는 길에 알렉산드로 대왕이 "다시 만났군. 정복자와 노예가 말이야"하자 이렇게 말했다. "네. 정복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노예와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 한 제가 말입니다." 세계의 지배자와'풍요로운 빈자'의 대화는 '영원속의 이 순간'이 어떻 게 '신비의 샘'으로 치환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물의 한 방울이 '산꼴짝 옹달샘'과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이 '과 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인 오늘.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 터' 영원을 사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운 삶'이자 '영원에 합당한 삶'이 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바로, 여기'를 신비의 삶이라고 노래한다. 눈앞의 욕심이나 허명에 매달리지 말고 과욕의 겉꺼풀을 벗어던질 때 '날마다 새롭게 솟는 옹달샘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의 풍요가 찾아온다. 비울 줄 아는 사람이 얻을 수 있다. 고두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