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선사 / 인과법문

2009. 8. 9. 10: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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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난한 사람이 장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 무제가 또 물었다. “부귀한 사람은 복을 누리면서 도리어 수명이 짧으며, 가난 하고 괴로운 사람은 생활이 곤란하면서도 팔십여 세까지 장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부귀는 보시(布施)로부터 온 것인데, 그가 구복(口腹)을 탐 하여 널리 살생을 하고 생명을 해치므로 원결(怨結)을 맺어 병이 많고 수명이 짧게 됩니다. 선악의 업연(業緣)과 죄와 복의 과보는 추호도 틀림이 없습 니다. 선을 찬양하고 악을 벌하는데, 모든 것은 ‘스스로 지어 스스 로 받는 것’입니다. 금생에 마침 복을 누릴 때, 전생에 갚아야 할 생명의 빚이 있 으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래 장수하면서 고독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전생에 보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보시한 것은 없지만 살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 오래도록 살지만 빈궁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게송으로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인과는 분명하여 조금도 오차가 없다. 콩을 심었는데 어찌 팥이 나겠느냐! 선악에 복과 죄의 과보가 없다면 성인들이 어찌 그들을 믿고 따르게 하겠느냐!
          2 세간의 사람 중에는 불공평한 것이 많습니다 !! 무제가 또 물었다. “세간의 사람 중에는 불공평한 것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매우 가난하고 부자는 매우 부유하며, 괴로운 사람은 매우 괴롭고 즐거운 사람은 매우 즐겁습니다. 이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지공 스님이 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과보는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만약 사람이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행하면 금후에는 반드시 안락하고 부귀하다고 하였습니다. 금생에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은 전생에 선행을 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괴로워도 선행을 닦을 줄 알고, 어떤 사람은 괴로 움을 받고도 여전히 선행을 닦을 줄 모르니,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나한게(羅漢偈)에 이르니 다음과 같습니다. 부귀하고 빈궁함에는 각각의 원인이 있으며 숙세의 인연으로 정해진 것이니 억지로 구하지 말라. 봄에 종자를 뿌리지 않았으면서 빈손으로 황무지 밭에서 가을의 수확을 바라네. - 지공선사 / 인과법문 -

           

           

           

          오늘/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2004년에 타계하신 시인이 투병과정에서 '영원이라는 것은 저승에 가

          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 곧 영원

          속의 한 과정'이라는 유언과 함께 남긴 시다.

          "내 사랑을 가장 잘 담은 시"라는 그의 말처럼 인간 존재와 우주를 아우

          르는 진리의 명편이다.

           

          이 시를 읽다보면 가난한 절학자 디오게네스가 떠 오른다. 일광욕을 위

          한 한 뼘의 햇살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갈망보

          다 더 소중하다고 역설했던 디오게네스 "적게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

          이요 만족할 것이다. 많이 구하라. 그러면 네 갈망은 영원히 멈추지 않

          을 것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저승가는 길에 알렉산드로 대왕이

          "다시 만났군. 정복자와 노예가 말이야"하자 이렇게 말했다.

          "네. 정복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노예와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

          한 제가 말입니다."

           

          세계의 지배자와'풍요로운 빈자'의 대화는 '영원속의 이 순간'이 어떻

          게 '신비의 샘'으로 치환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물의 한 방울이 '산꼴짝 옹달샘'과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이 '과

          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인 오늘.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

          터' 영원을 사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운 삶'이자 '영원에 합당한 삶'이

          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바로, 여기'를 신비의 삶이라고 노래한다.

           

          눈앞의 욕심이나 허명에 매달리지 말고 과욕의 겉꺼풀을 벗어던질

          때 '날마다 새롭게 솟는 옹달샘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의 풍요가

          찾아온다. 비울 줄 아는 사람이 얻을 수 있다.  

            

           

          고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