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바라밀은 궁극적 실체 아닌 中道의 교설

2009. 10. 13. 20: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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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님께서 이번 향천사여행에서 찍어 공양하여주신 사진입니다. 법광님감사합니다.^^_()_

 

 

 

“반야바라밀은 궁극적 실체 아닌 中道의 교설”
 
 
 
김호성 교수 『불교학보』서 주장 
  
 
 
반야바라밀을 ‘궁극적 실체’ 로 본 고익진과 이건준 교수의 관점은 잘못된 것이며, 반야바라밀은 공(空)의 측면뿐만 아니라 불공(不空)의 측면을 함께 설한 ‘중도(中道)’ 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김호성 교수는 『불교학보』 제44집에 수록된 좥반야심경의 주제에 대한 고찰좦에서 이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이건준 교수는 2000년에 발표한 좥범본 금강경 제1품에 대한 해설좦에서 반야바라밀의 의미를 궁극적인 실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익진 교수의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에서 제기된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김호성 교수는 반야는 궁극적인 실체와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의 상정을 거부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수증론의 입장에서 궁극적 경험으로는 설명될 수 있으나, 실재론적 차원에서 논의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반야바라밀을 공의 측면뿐만 아니라 불공의 측면까지 아울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광덕 스님의 설명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 탁효정 기자<2006-04-26/850호>입력일 : 2006-04-25 15:39 
 


*普賢 코멘트----------------------------------------------------

 

제가 누누이 벗님들께 강조드린 것을 저희 카페 글을 열심히 읽거나 번개에 오셔서 제 말씀을 잘 들으신 벗님들은 아실 것입니다.왜 중국 역경사들이 지혜를 뜻하는 인도 말 '쁘라즈냐'를 한자어인 '지혜'로 번역하지 않고 굳이 '반야'라는 음역을 했는지를... 

 

흔히 반야=지혜라고 말하지만, 반야의 뜻은 이처럼 우리가 아는 '지혜'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반야인가? 이것을 물어보면 명확히 답변하는 분들은 매우 드무십니다. 학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생각하는 반야'를 말씀하실 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광덕큰스님의 반야관은 실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반야관은, 바로 [화엄반야]입니다. 화엄을 모르면 큰스님의 반야관을 알기 힘듭니다. 전통적인 반야만을 가지고 큰스님의 반야 사상을 이었다고 하는 것은 이런 사실을 착각하신 것으로 저는 봅니다. 普賢合掌



 
 




        사랑한 그 만큼 아프다. 성재 서상민 아프지 않을 그 만큼만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은 잔인하다. 사랑한 그 만큼 미운 결과로 밖으로 나타난다. 사랑한 그 만큼 아프다. 사랑은 사랑이다. 대리행위가 안되는 것이 사랑이다. 떠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떠난다. 기억에 저장되어 남는 빈쭉쟁이가 사랑의 진실이다. 가을이 화려한 오색의 옷으로 갈아 입는 채비를 하는 동안 메마른 찬 겨울을 느낀다. 과거 추억의 보고픔이 사랑의 약점이고 사랑의 해답은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