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공하는 법 (3)

2009. 10. 23. 23:0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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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공하는 법 (3)

    내가 전부터 자주 불공 이야기해 오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도와주는 이것이 참으로 불공이요,
    이것을 행해야만 참으로 내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디 자서전에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에 유학 가서 예수교를 배웠는데
    예수교에서는 사람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그 후 불교에서는 진리에 눈떴는데
    일체생명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 말이
    「남의 종교를 말하는 것은 안 되었지만
    비유하자면 예수교는 접시물이라면
    불교는 바다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사람이 상대 아닙니다.
    일체중생이 상대입니다.
    사람에 한정한다면 너무 범위가 좁지 않습니까?
    사람을 돕는 것만이 불공 아닙니다.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불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실천하고 또 궁행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스님도 답답하시네,
    내가 배가 고파 죽겠는데 자꾸 남의 입에만 밥을 떠 넣으라 하니
    나는 굶어죽고?」

    인과법칙이란 불교뿐 아니고 우주의 근본 원리입니다.
    인과법칙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과보가 오는 것입니다.

    병이 낫다든지, 생활이 가난하여 어렵다든지 하는 것이 악한 과보입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악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그것이 기억 안날 것입니다.
    세세생생을 내려오며 지은 온갖 악한 일들이 다 기억나겠습니까?
    그러나 기억 안 난다고 해도 그 과보의 원인이 있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남을 해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인선과라, 이번에는 착한 일을 자꾸 행합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선이냐?
    남을 돕는 것입니다.
    남을 자꾸 도우면, 남을 위해 자꾸 기도하면
    결국에 그 선과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도로 자기에게 모두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 되고
    남을 해치면 결국에는 나를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도우면 도운 그만큼
    내가 아무리 안 받으려 해도 또 내게 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생활하면
    남을 내가 도우니 그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
    또 인과법칙에 의해 그 행복이 내게로 전부다 오는 것입니다.

    생물 생태학에서도 그렇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해치면 자기가 먼저 손해를 본다고...
    농사를 지어도 그렇습니다.
    곡식이 밉다고 곡식을 해쳐 보십시오. 누가 먼저 배고픈가,
    자기부터 배고프지.
    남을 도우면 남이 행복한 동시에 나도 배부르고
    남을 해치면 남이 배고픈 동시에 나도 배고픈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배고파 굶어 죽을까 걱정하지 말고
    부처님 말씀같이 불공을 잘 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공할 줄 모르고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지옥 문 앞에 서서 보니
    지옥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 모습이 하도 고통스럽게 보여서
    도저히 눈뜨고 못 보겠거든요.
    보통 같으면 「아이쿠 무서워라,
    나도 저 속에 들어가면 저렇게 될 텐데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
    어떻게 하여 도망갈까.」 이런 생각이 먼저 날 텐데.
    이 사람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저렇게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잠깐 동안이라도 나 혼자 대신 받고
    저 사람들을 쉬게 해 줄 수 없을까?」하는 착한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하고 보니 지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순간에 천상에 와 있었습니다.
    중생을 대신해서 지옥고를 받으려고 하는 생각을 내니
    지옥은 없어지고 자기부터 천당에 먼저 가버렸던 말입니다.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착한 생각을 내면 자기부터 먼저 천상에 가 버린다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이 더 깊은 사람이면
    남을 위해 아침으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어느 정도 인격이 있는 사람이면
    〈내 복(福)만을 위해, 내 배(腹)만을 위해서> 기도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내게 항상 다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의무적으로 절을 시킵니다.
    「108배(拜)절을 하라고 ! 」
    참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런 생활을 하려면
    날마다 아침에 20분 동안 108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 108배 기도하는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불공한다고 해도 매일 108배 하는 사람과는 많이 다릅니다.
    나도 새벽으로 꼭 108배를 합니다.

    그 목적이 어디 있는가?
    시작할 때 조건이 나를 위해 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길 구함 아니요
    모든 중생이 함께 같이 무상보리 얻어지이다.〉
    이제 발심하여 108배를 하는데
    스스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를 위해 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모두 다 성불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중생들과 보리도에 회향합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 남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했는데 기도한 공덕이 많습니다.
    이것이 모두 일체중생에게 가버려라 이것입니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원합노니 수승하온 이 공덕으로 위 없는 진법계에 회향하오며〉
    예불 참회한 이 공덕이 모두 남에게로 다 가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혹 남은 것이 빠진 것이 있어서 나한테로 올까봐
    온갖 것이 무상진법계로, 온 법계로 돌아가고
    나한테는 하나도 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저 인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거쳐
    신라, 고려에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중국도 중공적화 이전에는 총림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절에서 다 「참회」해온 것입니다.

    일체중생을 위해서,
    일체중생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참회하고
    일체중생을 위해 모두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법계에 회향하고
    모두 남에게 다 가버려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불교 믿는 사람의 근본 자세이고,
    사명이며, 본분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사회에서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 불자들은 이런 활동에는 많이 뒤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직 부탁하고 싶은 것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는 불공을 해보자 이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석으로 부처님께 예불하면서
    꼭 한 가지 축원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축원문〉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세 번 하는 것입니다.
    매일 해보면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참으로 좋은 것이 있습니다.

    절을 한 번 하든 두 번 하든
    일체중생을 위해 절하고 일체중생을 위해 기도하고
    일체중생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봅시다. (끝)



    * 법문 출처 : 해인지 <해인법문>
                       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

 

 

요즘은 연탄을 보기도 쉽지가 않네요.

어쩌다 운좋게 연탄불로 자글자글 고기굽고 소주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정겨운 장소를 만나지 않으면 말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연탄이야 그저 몸을 태워 열기를 내뱉는 연료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은 그렇지만은 않은듯 합니다.

얼마전 홀로 떠난 여행에서 느낀 감정이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 과 비슷하여 옮겨와 봤습니다.

낯선 곳에서 어두어지는데 갈곳은 없고 바람은 차고 하늘에 기러기떼 저 멀리 날아가고

기러기떼를 보며 들던 생각과 지평선 너머 가을 찬바람에 넘어지는 갈대 마냥 해가 밀려갈때

나는 연탄 한장만도 못한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온몸으로 무언가에 전력을 다하고 나면

무엇으로 남을지 두려워 하는 우리들 모습이...연탄재만도 못하단 생각 가끔은 아니드시던가요?

오늘은 정말 소주한잔 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연탄불 앞에서 말이죠...이제 퇴근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