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어 잘 사는 비결

2009. 10. 26. 21:0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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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어 잘 사는 비결

업보는 소멸해가는 것이고
운명은 개척해가는 것이다.
법구경에
“모든 과보는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다."고 하였다.


악한 업보를 피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 속으로 숨는다 해서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업보라 하여 새로이 닦은바 없이
받고 싶어도 오는 것이 아니다.

인과응보는 불변의 진리요
우주의 이치이므로
뿌린 대로 거두고 자신이 행한대로
받는 만유공동의 법칙이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법칙은 불변이지만
자기의 노력하기에 따라서
점차 악업에서 벗어나
선업으로 개선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선업을 지었어도
악업을 다시 짓게 되면
선업이 빨리 소멸되어
나쁜 과보를 받게 되므로
사람의 업보와 운명은
결국 자신이 하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선업(善業)으로 과거를 갚는자는
무서운 인과라 할지라도 능히 단절할 수 있어
마치 구름 사이에서 나온 달처럼
세상을 비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엄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나
참 뉘우침과 행동의 개선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고져하는 사람에게는
밝은 변화를 가져 온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서
"나는 험한 사주팔자를 타고나서
하는 일마다 꼬이고 않되며
병도 많고 인덕도 없다"는 등의
운명과 사주를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고뇌와 답답함에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인생 삶의 자체를
숙명이나 운명이란 것에
매달리고 끌려가는 자세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세상에 제아무리
운세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무슨 새로운 운명이 열리고 발전이 있겠는가?
다소 운세가 나쁘다 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고 개척 하려는 사람을
불행인들 무슨 방법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운명이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가짐과 노력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복되고 변화되며
바꿀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인간의 운명이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고 하였고
샤르트르는
“인간의 미래는 그 자신에게 있다“고 하였다.
참으로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은
불행을 스승으로 삼고
장애를 성공의 디딤돌로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다.

이 세상의 음악을 비롯한 연극 영화 등
많은 문화 예술들이
인류의 벗이 되고 공감하는 까닭은
그것이 곧 인간의 고뇌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표현이며 해소하는 까닭이다.

사람에게 어찌 아픔과 고통이 따르지 않겠는가.
저 인도의 시성 타골이나 괴테는
불행과 슬픔을
자기 성장의 기회와 창조적 계기로 삼았다.
우리보통 사람들은
어두운 운명과 슬픔의 고통을
인생의 패배로 여기고 상처받아 좌절하지만
지혜롭게 사신분들은
그것을 인간심화의 계기로 삼고
자기 성장의 모체로 삼았다.

오늘의 결과가 과거의 원인 때문이라면
미래의 결과와 운명은
오늘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지난해의 농사를 잘 못 지었다면
올해의 농사는
더 잘 짓겠다는 마음 자세를 가지면 된다.

오늘의 행복이나 불행에 대하여
기뻐하거나 한숨짓기 보다는
업보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과
보다 밝은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진흙속에 연화처럼
거듭 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하자.

 

 글   정 법 륜  스님




 
      아름다운하루의 시작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 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 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