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길 (1)/성철스님

2009. 11. 8. 17: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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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구원받는 길 (1)

    내가 부처가 된 이후로(自我得佛來)
    지내온 많은 세월은(所經諸劫數)
    한량없는 백천만억아승지로다.(無量百千萬億阿僧祗)


    이 구절은 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있는 말씀인데
    법화경의 골수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성불한 뒤로 얼마만한 세월이 경과했느냐 하면
    숫자로써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무량무궁한
    한량없는 그런 세월이 경과했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통으로 봐서 이것은 사실하고 틀립니다.
    부처님께서 인도에 출현해서 성불하여 열반하신지
    지금부터 2천 5백 여 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부처님 말씀이 자기가 성불한 지가 무량백천만억아승지라고 했을까?
    어째서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옛날부터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사실에 있어서 부처님이 2천 5백 년 전에 출현하여
    성불하신 것은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실지가 아닙니다.
    실지로는 한량없는 우수한 아승지겁 이전에 벌써 성불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불교에 대한 기본자세 근본자세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보면 불교의 목적이 무엇이냐 할 때
    “성불이다”, 즉 부처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으레 하는 말입니다마는 실제로는 안 맞는 말입니다.
    실제내용은 무엇이냐 하면 본래부처(本來是佛)라는 것입니다.
    깨쳤다는 것은 본래부처라는 것을 깨쳤다는 말일 뿐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는 자기가 중생인 줄로 알았는데
    깨치고 보니 억천만우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로 성불해 있더라 이것입니다.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로 성불해 있었는데
    다시 무슨 성불을 또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성불한다 성불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 중생을 지도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하는 말일 뿐입니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했다고 하는 것은, 깨쳤다고 하는 것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한 본래 모습 그것을 바로 알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부처님 한 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일체중생, 일체생명 심지어는 구르는 돌, 서 있는 바위,
    유정(有情) 무정(無情) 전체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다 성불했다는 그 소식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모를 때는 사바세계이지만 알고 보면 이곳은 사바세계가 아니고
    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이대로가 극락세계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목표는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바로 깨쳐서 본래 자기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다는 것,
    이것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동시에 온 시방법계가 불국토(佛國土) 아닌 나라,
    정토(淨士) 아닌 나라가 없고,
    전부가 불국토이고 전부가 정토라는 이것을
    깨치는 것이 불교의 근본 목표입니다.

    혹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이라는 말을 합니다.
    “구원을 받는다” “예수를 믿어 천당간다” 그런 식 아닙니까?
    그러나 불교에서는 구원이라는 말이 해당이 안 됩니다.
    본래 부처인 줄 확실히 알고
    온 시방법계가 본래로 불국토, 정토인 줄을 알았으면 그만이지
    또 무슨 구원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불교에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구원이란 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전체가 본래로 부처인 동시에 천체가 본래로 불국토, 정토인데
    누가 누구를 구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어느 종교도 따라올 수 없는 불교의 독특한 입장입니다.
    불교가 어느 종교, 어느 철학보다
    가장 수승한 이론을 갖고 있다 하는 것이 공연히 내가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실제 어느 종교, 어느 철학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佛), 부처란 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부처라 하는 것입니다.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다고 하는 것은
    본래부터 모든 존재가 불생불멸 아닌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사람은 물론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심지어 저 허공까지도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또한 모든 처소 시방법계 전체가 모두다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즉 정토며 불국토인 것입니다.
    즉 모든 존재가 전부 다 부처고,
    모든 처소가 전부 다 정토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사바세계가 있고 중생이 있는가?
    내가 항상 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해가 떠서 온 천하를 비추고 환한 대낮이라도
    눈 감은 사람은 광명을 못 봅니다.
    앉으나 서나 전체가 캄캄할 뿐 광명을 못 봅니다.
    그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천체가 광명인 동시에 대낮 그대로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부처 아닌 존재 없고
    전체가 불국토 아닌 곳이 없습니다.
    마음의 눈만 뜨고 보면!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 눈을 뜨지 못해서
    “내가 중생이다.” “여기가 사바세계다.”하고 말할 뿐입니다.

    근본 병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눈을 떴나 눈을 감았나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다 광명이고
    눈을 감고 보면 전체가 다 암흑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천체가 다 부처이고 천체가 다 불국토이지만,
    마음의 눈을 감고 보면 천체가 다 중생이고
    전체가 다 사바세계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저것 말할 것 없습니다.
    누가 눈 감고 캄캄한 암흑세계에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광명세계에 살고 싶고
    누구든지 부처님세계에 살고 싶고
    누구든지 정토에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시 바삐 어떻게든 노력하여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문제가 해결 다 됩니다.

    가고 오고 할 것 없습니다.
    천당에 가니 극락세계에 가니 하는 것은 모두 헛된 소리입니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문제가 해결 다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내가 아승지겁 전부터 벌써 성불했다라고
    본래 부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속)

     

    * 법문 출처 : 해인지 <해인법문>
                       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가야산의 메아리]

행복한 가정이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의자와 책상과 소파가 아니라
그 소파에 앉은 어머니의 미소입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푸른 잔디와 화초가 아니라
그 잔디에서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동차나 식구가 드나드는 장소가 아니라
사랑을 주려고 그 문턱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설레이는 모습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부엌과 꽃이 있는 식탁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으로 터질 듯한 엄마의 모습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고 깨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속삭임과 이해의 만남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바다와 같이 넓은 아빠의 사랑과
땅처럼 다 품어내는 엄마의 사랑 있는 곳

거기는 비난보다는 용서가
주장보다는 이해와 관용이 우선되며
항상 웃음이 있는 동산이 가정입니다.

가정이란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노래가 들리는 곳
가정이란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마주치는 곳,

가정이란
서로의 성실함과 우정과 도움이 만나는 곳,
가정은 어린이들의 첫 교육의 장소이며
거기서 자녀들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사랑인지를 배웁니다.

상처와 아픔은 가정에서 싸 매지고
슬픔은 나눠지고,기쁨은 배가되며
어버이가 존경받는 곳,

왕궁도 부럽지 않고
돈도 그다지 위세를 못 부리는
그렇게 좋은 곳이 가정입니다.



- 아름다운 가정만들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