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處作主 立處皆眞/광현스님

2009. 11. 9. 20:1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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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 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이다.” 이런 뜻입니다만,

사량 분별심 모두 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참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다 놓고 양변을 여윈 중도의 길에서 본질을 보고 그대로 사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니, 중도란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가르지 않는다거나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 허공은 칸을 나누지 않고 주관과 객관의 구별도 없이 그 자체가 바로 중도인 것입니다.


부처를 이룬다거나,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바로 주관이 성성하게 살아서 객관을 찾는다는 것이니, 번뇌 즉 보리요, 심 불급중생이 시 삼무차별이다, 마음이 부처로다. 하는것은 바로 스스로 이 자기 마음 안에서 온갖 분별과 시시비비와 사량 분별하는 벽, 경계를 허물어버릴 때, 바로 그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대중에게 설법하는데, 도를 수행하는 이들 이여! 

“불법은 특별한 수행과 공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평상시에 마음으로 조작하는 번뇌 망념없이 무사히 지내면서, 대소변을 보고, 옷을 갈아입고,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일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는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있는 사람은 그러한 불법의 본질을 곧바로 알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자기 마음 밖에서 불법을 수행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짓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있는 어느 곳이라도 자기가 참 주인이 될 수 있다면, 자기가 있는 그곳은 모두 진실한 깨달음의 경지가 될 것입니다. 순간순간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서 아! 내가 지금 이런 생각에 떨어져 있구나. 연속극을 보면서도, 누굴만나면서도, 항상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번뇌는 보리로 변해지고, 부처는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어떠한 외부적인 조건도 그 진실된 장소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번뇌 즉 보리라, 수행을 하거나 기도하는데 마장이 많습니다.

기도만 할라치면 온갖 생각이 쥐 잡듯이 일어납니다. 오늘날의 불자들이 불법의 안목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하여 마치 눈먼 염소가 코에 닿은 물건을 모두 입안에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과 감정이라는 하인과 주인을 구별하지 못하고 손님과 주인도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삿된 마음으로 불문에 들어와 곳곳에서 법당의 문고리를 잡고 절 문턱을 드나든지 얼마나 되었느니, 무슨 절에 갔더니, 어떤 큰스님을 만나보았더니 이러더라는 둥, 온갖 말로 시끄럽게 하니 이들을 진정한 불제자라고 할 수 없으며 바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신심불출가 세속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항상 마음에 번뇌가 들끓고 잡념이 소용돌이칠 때를 가장 공부의 좋은 기회로 여기시고 아, 내안에서 지금 손님이 주인노릇를 하려 하는구나, 하고 퍼뜩 알아차려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주인자리를 뺏기시면 안 될 것입니다.


진실로 출가한 사람은 평상시에도 진정한 견해로 부처와 마구니를 판단하며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고 범부와 성인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판단할 수 있는 정법의 안목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마구니와 부처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떤 집에서 나와 다시 다른 집으로 들어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죄업을 짓고 육도 윤회를 돌고도는 중생이라고 하며 진실한 불제자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육도를 돌고돌며 만나는 기막힌 인연의 실타래에서 과거전생의 부부가 자식이 되고 부모가 짝이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가는 곳 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다는 의미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부디,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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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 먹어야 적당히 소식하는 것인가요? 
 
 일반인들에게는 복팔부(腹八部)가 가장 좋습니다. 
복팔부란 배에 8할 정도만 채워 먹으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공기만 먹어도 배가 차고, 
어떤 사람은 두세 공기를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두공기를 먹어야 배가 차는 사람은 한공기 반을 먹는 것이 복팔부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한 공기만 먹어도 
배에 알맞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양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비위(脾胃-한의학적으로 소화를 담당하는 장부)의 
문이 저절로 열려 음식을 받아들이고, 
알맞다고 느끼면 비위가 닫힙니다. 
비위가 닫혔는데도 계속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면 음식이 소화 되지 않아, 
결국 병의 원인이 됩니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은 몸 곳곳에 독소로 퍼져 몸을 상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병이 이과정을 거치는데, 
세상 사람들은 운이 없어 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지식이 높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다 절제하지 않은 탓 입니다. 
운이 없어 병에 걸리는 일은 없습니다. 
음식을 절제하면 병에 걸리지 않고 운이 열립니다. 
병에 걸리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음식이 무절제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 식탐을 버리고 성공하라/ 미즈노 남보쿠 
 
 

 

 

 

 

 

나이 들면서 더 필요한 친구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벌써 가슴이 뛰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그런 사람 보다는
곁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더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길을 걸을때 옷깃스칠 것이 염려되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야하는 그런 사람 보다는
어깨에 손하나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
걸을 수있는 사람이 더 간절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자신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보다는
자신과 비록 어울리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주고 받을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 해질때가 있습니다.



말할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이 답답 해지고,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도 상처 받으며 아파 할까봐
차라리 혼자 삼키고 말없이
웃음만을 건네 주어야 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 해질 때가 있습니다.




괴로울때 찻잔을 앞에두고 마주할수 있는
사람 밤새껏 투정을 해도 다음날 웃으며
편안하게 다시 만날 수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더 의미 있을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비위 맞추며 사는게 버거워
내속내를 맘 편히 덜어놓고 받아 주는
친구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램 탓이 겠지요.



하나되는 이 가을날에
바다며 산으로 나가 볼 만 하지요.



바람도 살살 불어 참 좋고
갈대밭에 거니는 느낌이란
나를 시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합니다.




이 가을은 보내고

겨울 맞이 바다로 함께 나가 볼까요?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