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문화에서 벗어나기 / 법정스님

2009. 11. 17. 20: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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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속 문화에서 벗어나기 / 법정스님 ***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 본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연 나 자신답게 살아

왔는지를 묻는다. 잘 산 한 해였노라고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많은 이웃들로부터 입은 은혜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 보답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적잖은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그때 그때 만나는

이웃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로 집약될 수 있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했는지 아니면 건성으로 스치고 지나왔는지 반성한다.

지난 한 해의 삶을 몇 점으로 매길 것인지 헤아린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날들을 두고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새롭게 다지는 것만 못하다.

새해부터는 내 나쁜 버릇을 고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시대의 고질병인 과속 문화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성급하게 달여가려는 잘못된 버릇부터 고친다. 남보다 앞질러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흐름을 함께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말만을 내세우려고

한다. 언어의 겸손을 상실한 것이다.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과는

좋은 만남을 갖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또한 과속에서 온 나쁜 습관이다.


슈퍼마켓의 계산대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짜증을 내는 것도 조급

하고 성급한 과속 문화에서 온 병폐다. 자기 차례를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그 안에서 시간의 향기를 누릴 수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현재 자신의 삶을 맑은 눈으로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수행자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면 이와 같이 대답한다.


"나는 서 있을 때는 서 있고, 걸을 때는 걷고,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고, 음식을 먹을 때는 그저 먹는답니다."


"그건 우리도 하는데요."라고 질문자가 대꾸하자 그는


"아니지요, 당신들은 앉아 있을 때는 벌써 서 있고, 서 있을 때는

벌써 걸어갑니다. 걸어갈 때는 이미 목적지에 가 있고요."


오늘의 성급하고 조급해하는 과속 문화의 병폐를 드러낸 이야기다.


둘째,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는 일에 보다 적극

성을 띠려고 한다. 내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새 주인

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내 것이란 없기 때문

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몸도 내 것이 아닌데 그 밖의 것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셋째,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을

거듭거듭 다짐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웃으로부터 받은 따뜻함과 친절을 내 안에

묵혀 둔다면 그 또한 빚이 될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도 내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성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서운함과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야한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 

 


한국 천주교 정신적 지주`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웃집 성자` 김수환 추기경이 2월 16일 오후 6시10분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한국 천주교 첫 추기경으로 역사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김 추기경(본명 스테파노)이지만 그는 결코 권위적이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추기경을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편안하고 인자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5월 대구에서 출생,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1966년 초대 마산교구장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 장에 올랐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첫 추기경으로 서임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1998년 정년(75세)를 넘기면서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善終)한 김 추기경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8월 29일부터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김 추기경은 생전 운동을 매우 좋아했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운동은 테니스. 윔블던테니스 대회 같은 큰 대회가 열리면 밤을 새워서 볼 정도로 `테니스 광`이었다. 추기경은 또 `보통 남자들처럼` 축구도 즐겨 보았다. 축구 한일전이 있으면 빠짐없이 챙겨봤을 정도. 축구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듯 김 추기경은 실제로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TV드라마도 평소 그가 좋아했던 취미 활동이었다. 추기경은 특히 역사적 사실을 다룬 시대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2002년 초에 한 모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태조 왕건`과 `여인천하`를 즐겨 본다며 해당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말한 적도 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날 때부터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다닌 김 추기경은 몇 년 뒤 언론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계획을 달성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추기경은 필기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면허따기를 포기한지 꽤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럼없이 "문제집을 풀어봤는데 낙제점을 맞아 포기했다"며 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그는 분명히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웃을 때는 친근하고 인자하게 느껴졌던 우리네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매일경제  2009.02.16 19:08:44 )

 

평화를 지켜주는 푸른 별이 되소서  

   

 

김수환 추기경 영전에 / 이해인수녀

 

언젠가는 이렇게 당신과의

 

마지막 이별이 오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소식을 듣고 보니

 

가슴이 철렁합니다

 

커다란 등불 하나 사라진 세상이

 

새삼 외롭고 아프고 쓸쓸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추기경님의 사목표어가

 

당신의 삶을 그대로 말해줍니다

 

진정 모든 이를 위한 삶이었기에

 

그만큼 고달프고 고독했던 시간들조차

 

큰 사랑으로 성화시키신 크신 아버지

 

우리 곁엔 언제나

 

‘기댈 언덕’이신 당신이 계셔 좋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버팀목이신 거룩한 사제,

 

지혜의 스승, 시대의 예언자,

 

용서하는 치유자이신 당신이 계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 든든했습니다

 

순교자의 피로 축복받은 이 땅에서

 

사랑의 소임 충실하게 마치시고

 

이제는 존재 자체로 죽음 너머의

 

기도가 되신 추기경님

 

우리 가슴속에 오래도록 살아계실

 

사계절의 추기경님

 

슬픔이 내어 준 길을 따라

 

깊은 그리움 모아 기도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근심과 고통으로

 

당신을 잠 못 들게 했던

 

이승에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지복의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우리나라와 겨레의 평화를 지켜주는

 

푸른 별이 되소서

 

얼마 전 제가 병실에서 뵈었을 때

 

아픔 속에도 유머를 잃지 않으시던

 

따스한 웃음, 남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시던 그 넉넉한 사랑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말의 애도보다

 

침묵 속의 기도를 더 반기실

 

당신을 그리며 말을 아끼렵니다

 

마지막 감사와 이별의 인사를

 

눈물로 대신하며 두 손 모읍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우리 모두

 

당신처럼 진실하고 겸허하고

 

깨끗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아름다운 첫 약속의 기도 속에

 

( 동아일보  2009-02-17 0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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