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무상의 도리와 복밭

2009. 11. 19. 21: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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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무슨 불치병들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세월일 것입니다.


세월 앞에선 그 어떤 아름다운 사람도 세월가면 볼품 없어지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누리고 살았던들 권불십년이라 듯이 가는 세월 앞에선 “무상” 이 제일 무서울 것입니다.


이제 다음 주 부터는 또다시 천일기도가 시작되고 지금 이 자리에 이 몸뚱이를 끌고 온 “나다”하는 주인공이 다겁생을 돌고 돌며 윤회의 바다에서 몸 바꿔 살아오면서 뿌려왔던 인과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시작되는 살업을 참회하고 소멸시키는 백일기도가 시작되기에 이번에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부모님 두 분이 호젓이 계시는 선영에 바삐 다녀왔습니다.


살아생전처럼 두 분이 뎅그마니 계시는 묘소에 올라 백 세주 한잔을 붓고 일배를 드리고 주변의 잡초를 뽑아드리고 옆자리에 앉아 문득 떠오르는 금강경의 마지막 사구게송이 떠올라 혼잣소리로 독송해드렸습니다.


“하이고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이요 여로역여전이니 응작여시관이라.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어찌하여 눈과 귀와 코와 입과 감촉과 분별이라는 육근에 의해 존재가치를 느끼고 분별을 일으켜 욕구와 착심을 일으키도록 하는 모든 것들이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은 스러지고 마는 꿈속의 그림자와 같고 풀잎 끝에 맺힌 가을 이슬과 같으니 이러한 공수래공수거의 이치를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라는 이 게송이 그리도 와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이 세상에 백년을 산다 해도 삼만 육천 오백일에 불과할 것이고 인생 팔십을 산다 해도 이만 구천이백일에 불과함이요, 인생 칠십을 다 산다 해도 이만 오천오백오십일에 불과 할 것이니 여기에서 철없던 시절을 빼버리고 병들고 괴롭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다 빼버리고 호시절이라 야! 살맛난다! 하는 날들을 모아보면 과연 얼마나 살맛나게 살았다고 할 날들이 될까요?


지금 각자가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서 메뉴를 눌러 계산기로 계산해보십시오.


꿈은 야무지게 꾸더라고 일년 365일에 곱하기 눌러 구십은 산다고 쳐서 곱하기 구십을 쳐보십시오. 

삼만 이천 팔백오십일이 나올 것이나, 지금 내 나이 사십을 친다면 365일 곱하기 40을 쳐보십시오.

만사천육백일을 살았으니 삼만이천팔백오십일에서 만사천육백일을 빼보십시오.

이제 남은 날은 만 팔천이백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십을 살아오셨다면 만 팔천이백오십일을 살아오셨으니, 90세를 산다쳐도 남은 날은 만사천육백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겨우 이것 살자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리도 아득바득하게 살아오고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살다 가신 두 분의 선영에서 천주교 집안으로 사셨으니 가셨다면 천국을 가셨을 것이고 막내를 부처님 전에 보냈으니 이 공덕으로 극락구경은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돌고 도는 육도윤회는 없는 것이 아니기에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구구절절하게 설하셨던 것입니다.


하여, 천국도 지옥도 축생계도 모두가 다 중생들의 의업들이 모여 만들어진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 생각 돌리면 지옥도 극락으로 변해지고 그토록 밉던 사람도 한 생각 돌리면 잊혀지고 미움보다는 연민이 될 수 있듯이 사람 중생은 분별지가 있어서 한 생각을 돌리면 악도 선으로 변해지고 미움과 증오도 연민과 동정으로 바뀔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사람중생의 몸을 벗어버리면 분별지를 가질 수 없기에 죽기 전에 가졌던 어두운 마음의 지향성과 에너지에 의해 어두운 에너지에서 벗어나올 또 다른 에너지가 될 수 있는 수행이라는, 인연이라는 에너지를 만들 수 없기에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두움과 무거움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손들이 불전에 재를 올리고 무상의 법문을 들려주며 온갖 공덕을 대신해주는 것이건만,

요즘 세상은 물질이 풍요로우면 다 되는 세상인지라 그 마저도 세속적으로 변해져 가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입니다.


천계의 세계나 육도윤회의 세계를 알려준들 그 또한 눈에 보이지 않고 손바닥에 올려두고 보여줄 수 없으니 전설따라 삼천리로 받아들여지는 중생들의 제 잘난 알음알이와 전 번에 뉴스 꺼리가 됬던 일산의 황룡사의 허무맹랑한 기가차지도 않는 짓들이나 휴거를 주장하며 온갖 사람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가는 삿된 무리들이 빙자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으니 정말로 개탄할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법이 정법을 호도하는 세상에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신행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집고 넘어 가는 게 싫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이러한 진리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태어나면 언젠가는 간다는 순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보다 진솔해질 수 있고 겸손해지고 내가 잘났다는 교만과 어리석은 분별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초로에 이슬과 같은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살았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대로 윤회를 벗어나버리는 부처와 같아지는 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정진하고 자신을 닦아 가는 것 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재가 불자들이 우선 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수행 중에 알고 넘어갈 것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즉, 세간(世間)의 복전(福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①보은(報恩)의 밭이요, ②공덕(功德)의 밭이며,

③빈궁(貧窮)의 밭이니, 보은의 밭은 부모와, 스승과, 화상(和尙)을 말하고, 공덕의 밭은 부처님 법을 받아가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며, 빈궁의 밭은 모든 어렵고 곤란한 사람을 말합니다.


고로 “출가자는 보은의 밭과,공덕의 밭과,빈궁의 밭 세 가지 복전이 있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우바색계경 권 3)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에는 두 가지 밭이 있으니, 그 하나는 복(福)의 밭이요, 또 하나는 빈궁의 밭이니, 보살이 복덕을 더하기 위하여 빈궁한 사람에게 보시하고, 더 없이 훌륭한 지혜를 더하기 위하여 복전에 보시하며, 보은을 위하여 복전에 보시하는 것이다. 또한 불쌍하고 가엾은 마음을 냄으로 빈궁의 밭에 보시하며, 번뇌를 버리기 위하여 복의 밭에 보시하며, 공덕을 이루기 위하여 빈궁의 밭에 보시하며, 온갖 즐거움을 키우기 위하여 복전에 보시하고, 온갖 고(苦)의 인연을 버리기 위하여 빈궁의 밭에 보시하는 것이다.

친애(親愛)하는 곳에 보시하는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요, 원수에게 보시하는 것은 악(惡)을 없애기 위함이다.”고 하셨습니다. 

 (우바색계경 권 2)


세존께서는 또한 두 가지 밭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①자비의 밭(悲田)이요, ②공경의 밭(敬田)이니, 자비의 밭은 모든 고독(孤獨), 빈궁, 곤고(困苦)를 말하고, 공경의 밭은 불, 법, 승 삼보와,부모와,스승을 이르며, 자비의 밭에 대해서는 마땅히 가볍게 여기고 천(賤)하게 여겨 이는 복전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것이요, 공경의 밭에 대해서는 마땅히 결과를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 하셨습니다.  (대승리취 육바라밀경 권 4 보시품)

 

인(仁)을 행하고 자(慈)를 행하여 큰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건지면 11가지 자랑이 있게 된다고 하셨으니,

11가지 자랑이란, ①복이 항상 몸을 따르고, ②누워자도 편안하고 ③잠을 깨도 편안하고 ④악한 꿈을 꾸지 않고 ⑤하늘이 보호하고 ⑥사람들이 사랑하고  ⑦독(毒)을 받지 않고 ⑧전쟁을 만나지 않고 ⑨물에 빠져 죽지 않고 ⑩불에 상하지 않고 ⑪살아서는 이(利)를 얻고 죽어서는 범천에 나는 일이다. 고 하셨습니다.

 (법구경 권상자인품)


남에게 먹을 것을 주면 힘을 주는 것이요, 입을 것을 주면 고운 얼굴을 주는 것이며, 탈 것을 주면 편안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요, 등불을 주면 눈을 주는 것이다. 있을 곳을 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요,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영생(永生)을 주는 것이니, 믿음과 청정한 마음으로 먹을 것을 보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어디서나 먹을 복이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색한 마음을 항복받아 번뇌를 이기고 보시를 행하면, 그 공덕은 모든 사람의 뒷세상을 건지는 나루터가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증일아함 권 4 호심품)


또, 보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시(財施)요, 둘째는 법시(法施)라 합니다.

그리고 보시는 준다는 생각도 없이 주는 베품이지만,


다섯 가지 보시할 것과 못할 것이 있습니다.

 

즉, 보시를 해도 복(福)을 받지 못하는 다섯 가지는 ①칼을 남에게 보시하는 일이요 ②독물(毒物)을 남에게 보시하는 일이요 ③들소(野牛)를 남에게 보시하는 일이요 ④음녀를 남에게 보시하는 일이요 ⑤신사(神祠:외도가 귀신을 섬기는 사당)를 짓는 일입니다. 


그리고 보시하면 큰 복(福)을 받는 다섯 가지란, ①원관(園觀:경치를 바라보며 쉬는 누각)을 짓고 ②수림(樹林)을 만들며 ③다리(橋樑)를 놓고 ④큰 배를 만들며 ⑤미래를 위하여 여행자의 숙소와 주택을 짓는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증일아함 권 27 사취품)

이처럼 우리는 한번 뿐인 삶에서 이 손과 발과 말은 모두가 다 생각의 지배를 받기에 이 생각을 지극하고 간절하게 가져서 손과 발과 입이라는 이 종들을 오로지 현세에는 복을 짓고 후세에 인과에 걸리지 않고 부질 없는 업들이 모여있는 세계에 가지 않도록 항상 밝고 긍정정인 생각으로 바꿔가며 지금 이 현실의 삶은 모두가 다 인과의 과정이요, 결과로 겸허히 받아들여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자신이 알게 모르게 뿌려왔던 인과의 밭에서 잡초를 골라내고 마음 농사 잘 지으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물


 


미안해 하지 말아요
늘 부족하다 하지 말아요

당신의 존재로 꿈을 빚는 나는
마음의 보석 상자를 간직했는데요

힘들어 하지 말아요
늘 안타까와 하지 말아요

당신의 마음 하나로 깨어나는 나는
또 하나의 선물로 채우는 걸요

빛을 삼켜먹은 어둠이
어제를 유린했던 시간이었지만
다시 그려나가는 내 안의 아름다움은
당신이란 이름의 선물 때문인걸요

한 세상 키 작은 잎새가 된다해도
바람이 할퀴고 간 들녘으로 남는다해도
당신이 함께하는 하루는 눈부신 선물인걸요

사랑이라는 선물은 손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 하나 되어버릴 때
사랑은 안개처럼 스며듭니다

사랑이라는 선물은
손으로 풀어보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바라보면 스스로 풀리는 선물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서로를 향해 당기고 있다면
그 사랑은 향기가 진동합니다

사랑이라는 선물은
한없이 퍼 주고 나눠 주어도
깊은 산골 샘물처럼 마르지 않습니다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