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참회,진정한 출가

2009. 11. 17. 19:2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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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출가

반갑습니다. 시간이 모여 세월은  우리를 벌써 9월 둘째 주라는 존재와 실상의 문고리를 열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지라 산소에 벌초도 하러 가셔야 하고 온갖 대소사의 일들이 발등을 찧고 있습니다만, 


중생 중생이 아침에 눈을 뜨고 동서남북을 아무리 바쁘게 움직이고 머리를 바쁘게 회전하고 전화통이 불이 난다한들, 이 모든 행위의 근본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이렇게 바쁘게 살고계시는 그 자체에 점을 찍는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중생들의 근본의 존재이유와 이리 살아가는 데서도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삶의 축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살피건대 세존께서는 지금의 시대와 3천 년 전이라는 시공의 세월을 격하고 계시는데도 그 때의 가르치심을 대하고 있으면 그것은 삼천여년 전의 일 같지 않고 지금의 우리들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을 대하고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부처님께서는 삼천여년 후에 태어난 우리의 일을 이처럼 잘 알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도 듭 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겪는 환경, 곧 투쟁견고 백법은몰(鬪爭堅固 白法隱沒)의 시대를 환히 보시고ㆍ꾸짖고ㆍ타이르시며 참회 가운데서 살라고 하시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이 지구촌이 멸망하지 않는 한, 천년, 이천년 후에 태어날 사람들도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대하게 되면 또한 그러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시들어 버리는 가르침이 아니라, 언제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適切)하게 오욕으로 끄달리는 어리석음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가르침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이 남겨진 경전은 절대의 진리(眞理)인 것입니다.


우리가 600부나 되는 반야부 경전 속에서 “다이아몬드 수트라”라 하여 금강경이라 부르는 이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외도들이 주장하고 선전하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참다운 불변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이 어떠한 시대에서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귀의(歸依)하게 되고 어떠한 시대에서도 새롭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구세경(救世經)이라는 단순하고 상징적인 일차원적인 의미에서 만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다면체로 깍여 어느 각도 어느 면, 어느 위치, 어느 전공에서건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여 온갖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세계에서 삼독과 오욕으로 인해 일어나는 8만 4천 가지의 번뇌와 고통만이 아니라, 번뇌 즉 보리라 8만 4천 가지의 번뇌마가 있다면 앞이 있으면 뒤가 있듯, 중생들이 빠져서 허우적대며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8만 4천 가지의 유한한 즐거움이라는 환희마 또한 존재하는 것인데, 세존께서는 중생들이 이 유한함에 취해서 끝없는 윤회의 길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보시고 원을 세워 공교(空敎)라는 지혜를 말씀으로 남기시여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업에 쌓여있는 중생 중생들을 인도해주시기에 금강경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신은 부처님의 세계를 여는 도구입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망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저 하늘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이나,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는 개들이나 축사에 갇혀서 주는 사료만 먹으며 살아가는 소나 돼지나 닭들을 보게 되면 이 몸 받기 전에는 나 또한 저 몸의 주인공도 되었을 것이고, 저것도 생명이고 나도 생명이기는 마찬가지고, 저것도 지 삶에 착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 몸 어서 벗고 사람 몸 받거라 하는 마음에 어서 죽으라 하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며 차라리 이 몸으로 살테니 건들지 말라는 식으로 지나는 개미에 옆에 손바닥을 내려칠 량이면 동서남북 방향감각이 없이 줄행랑치는 모습을 목격하면 다음 생에 받을 이 몸이 걱정되어 기도 중에 망상관을 하다보면 과거 전생의 모습도 보이고 다음 생에 갈 인연이 친화력을 가지고 자꾸 떠오를 때가 있어 소위 엉덩이에 불침 맞은 듯, 지극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육도는 윤회라, 육도 중에 으뜸이라는 천상계를 간다한들 언젠가는 인연이 다하면 또다시 윤회에 들 것이니 중생계에서 사람의 몸만이 부처의 세계에 들어가는 도구일지니 다음 생에도 사람의 몸을 받아 더욱 정진 잘하여 윤회없는 세계에 가리라는 혼자 다짐을 하면서 요즘에는 사람 몸 받드라도 좋은 인연지어 세가지 복, 스승 잘 만나는 복과 좋은 도반을 만나는 복과 좋은 공부처소를 만나는 복을 성취하고자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기도하고 법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화경화성유품에 나오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천만년을 가도 변하지 않는 것임을 더욱 더 간절하게 설하신 덕목으로, 석가세존께서는 일체중생구제를 전제로 한 진실교(眞實敎)인, 법화경을 세상에 펴려는 자비심으로 일관하셨슴이 밝혀집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근기(根機)가 같지 않아서 근기가 낮은 사람에게는 방편의 교(方便敎)를 설해주셨던 것이고, 이러한 방편설은 진실설인 법화경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한 예비적(豫備的)인 가르치심이기 때문에,

 

방편교를 배운 것으로 그치고 말면 부처님의 眞實意, 곧 참 마음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방편의 가르침을 통해서 중생의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신앙심이 생겼으면, 다시 더 나아가 부처님의 진실의 교, 곧 일불승 법화경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자상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 우스운 점은 부처님은 출가하시기 전에 결혼하시어 라훌라, 장애(障碍)라는 이름의 아들을 두셨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통지승여래불을 보더라도 한국불교 장자종단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조계종에서도 기득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계층이 있어 꼭 동진 출가하여야만 부처를 이룰 수 있거나, 부처를 이루는 지름길을 가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화성유품에 보게되면, 당시에 대통지승여래불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대통지승여래불 또한 출가하시기 전에 이미 열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의 이름은 지적(智積)으로 맏아들을 비롯한 모든 아들들은 진기(珍奇)한 보물과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라 평화롭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들들은 아버지 대통지승불이 그 모든 화려함을 뒤로 두고 오랜 동안 수행한 결과로 정각을 열고 부처를 이루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때 아들들은 자기들도 수행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열겠다는 결심으로 호화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아버지 대통지승불의 처소(處所)를 찾아 출가하게 됩니다.


그 때, 그들의 어머니를 비롯한 유모와 그들을 보살핀 권속들이 모두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들의 출가를 막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에도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의 출가를 막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우스갯 소리로 요즘 IMF행자들이 많이 생겼다고들 합니다만,

 

살피건대, 출가라는 것은 다만 세상과 처자식을 버리는 그런 단순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인생무상(人生無常), 권력무상을 느끼고 세상이 싫어서 입산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진정한 출가의 동기, 곧 출가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참 뜻을 알고 싶다, 나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무엇 때문에 노력하는가 하는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어서 출가하는 것입니다.

설사, 첫 출가의 동기가 그렇지 않다해도 불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각오가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발심을 했던 마음들이 나중에는 세속적인 욕구에 다시 물들여지면서 종단의 온갖 시시비비에 매이기에 "초발심이 변정각"이라는 말로 경책시켜 주는 것입니다.


싯달타 태자의 출가동기를 보게 되면 답은 간단합니다.


요즘 자식들은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며, 지들 좋아서 만들었다는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왔냐는 식으로 부모 속 터지게 하는 놈들이 한 둘이겠습니까 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해도,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삶에서 어느 날 아침 화장을 하다가? 출근 준비로 세수하고 면도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희끗하게 변해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그때부터 인생을 잘 살아보리라 이제 밥술이라도 먹게 됬으니 내 인생 나도 누려보리라하고 고작 누린다는게 대부분의 중생들은 말초적인 환희마에 빠져 요즘 유명한 바다이야기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살아 가는 부류들이 바로 하근기 중생들이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쓰는 법도 배워야 정승처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개 같이 버는 데만 집착하면서 쓰는 법을 못 배우게 되면 벌어서 써도 개같이 쓰게 되는 것입니다.


부언하면 올바른 출가란 수행을 쌓아 인생의 참뜻을 알려는 목적으로 출가를 하거나 공부과정에서 그런 발심을 일으켜야하는 것입니다.


출가에는 네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신심출가와 신출심불출가가 있으며, 심출신불출가와 신심불출가라는 네 종류의 출가가 있습니다.


흔히 세상이 싫어져서 세상을 버리기 위해 출가한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의 행동, 곧 자기 증오(憎惡)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라고 하는 한 사람이 존재하기까지는 삼세 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폐를 끼치며 모든 사람의 덕택으로 존재한 것입니다.


하물며 염세(厭世), 곧 세상이 싫다고 해서 세상을 버리고 제멋대로 산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기 증오(自己憎惡)의 표현일 뿐, 그것은 진정한 출가가 아닙니다.

이런 연유로 절집에 들어온 사람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또 다시 환속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교의 진정한 정신은 은애(恩愛)입니다.

남의 은혜와 덕(德), 곧 사랑을 받고 살다가 자기가 싫다고 해서 세상을 버린다는 것은 은애를 무시한 처사이며 세상에 대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父母) 처자(妻子)를 버리고 출가하여 생노병사학(生老病死學)을 공부한 인연과보로 생사관(生死觀)이 확고해지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모든 사람에게 그 깨달은 생사학(生死學)을 가르쳐서 그들을 구원해주리라 하는 생각으로 출가를 해야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 한 사람을 위해 출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출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청신사도인경(淸信士度人經)에 이르시기를 중생은 삼계 가운데를 유전하여 은혜를 끊지 못한다.

은혜를 버리고 무위(無爲)로 들어가는 것은 진실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은애(恩愛)가 있는 부모나 처자를 버리고 입산하여 수행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은혜를 모르는 자ㆍ은혜를 배반하는 자 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출가 수행하여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진실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인 것입니다.


양가득죄라, 출가하여 제대로 공부를 못하게 되면 부처님 집안에도 시주 밥을 공짜로 축내기에 죄를 짓는 것이며 출가하여 부모님에게 사람 효도를 못하였기에 양쪽 집안에 죄를 짓는다 하여 양가득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으로 출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의 은혜를 갚는데는 부모님 살아생전 금생에 비단금침에 호의호식은 못시켜 드렸다 해도 부모님 주인공이 이 한 생을 마감하여 어느 몸을 받을 것인가를 헤아려 윤회로부터 벗어나도록 해드리는 것은 영원한 효도인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유한한 윤회를 벗어나 존재의 진정한 뜻을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자비(慈悲)로운 부모이며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인간의 정이라든가, 은애라든가, 하는 것을 별개(別個)의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대방광부사의경계경에서,은혜를 아는 자는 생사(生死)에 있다 하더라도 선근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은혜를 모르는 자는 선근(善根)을 끊어 없애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부언하면 우리가 불교를 배우는 것은, 과거 수많은 생을 거치는 동안 자기가 받은 모든 사람의 은혜를 갚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도락(道樂)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내가 박식(博識)하게 되어 남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체중생구제론 분상에서 우선 가까운 오음세간 중생, 곧 부모ㆍ처자ㆍ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고, 되도록 이면 그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 곧 삼세간의 사람들도 알게 하기 위해 열심히 불교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출가인 것이고 이리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마음이 출가를 하신 분들이기에 처음 그 마음이 변치 않고 그대로 정진하신다면 반드시 정각을 이루어 저와 더불어 대통지승여래불 처럼되시리라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同成佛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발심했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곧 바로 정각을 이룬다는 뜻으로 초발심시 변정각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아침의 향기 / Garden Memories

- Susan Rios Canvas Painting

  

 

 

 

 

 

 우리집...이해인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은
음악처럼 즐겁다

멀리 밖에 나와
우리집을 바라보면
잠시 낯설다가
오래 그리운 마음

가족들과 함께한 웃음과 눈물
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
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
눈물 글썽이는 마음
그래서 집은 고향이 되나 보다

헤어지고 싶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
주고받은 상처를
서로 다시 위로하며
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
따뜻한 눈길로 하나 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
우리집 우리집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고마움 가득한 송진 향기가 난다

 

 

 

 

 

 

 

 

 

 

 

 

 

 

 

 

 

 

 

 

 

 

 

 

 

 

 

 

 

 

 

 

 

 

 

 

 

 

 

 

 

 

 

 

 

 

 

 

 

 

 

 

 

 

 

 

 

 

 

 

 

 

 

 

 

 

 

 

 

 

 

 

 

 

 

 

 

 

 

 

 

 

 

 

 

 

 

 

 

 

 

 

 

 

 

 

 

 

 

 

 

 

 

 

 

 

 

 

 

 

 

 

 

 

 

 

 

 

 

 

 

 

 

 

 

 

 

 

 

 

 

 

 

 

 

 

 

 

 

 

 

 

 

 

 

 

 

 
아침의 향기 "플루트`의 정원" (Flute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