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생사관(生死觀) /탄허스님

2009. 11. 18. 19: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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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생사관(生死觀) /탄허스님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삶과 죽음일 것이다.

즉 생사(生死) 문제야말로 그 무엇보다 앞선 궁극적인,
그리고 이 세상에서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동안
기필코 풀어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문제를 이렇게 해결한다.

즉 마음에는 생사가 없다(心無生死)고. 다시 말하면,
마음이란 나온 곳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연히 갈파한 것을
'도통(道通)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어디든 찾아보라.

마음이 나온(生) 구멍이 있는지.
따라서 나온 구멍이 없으므로 죽는 구멍도 없다.

그러니까 도(道)가 철저히 깊은 사람은
이 조그만 몸뚱아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천년 만년 살고 싶어한다.

도인(道人)·성인(聖人)은 굳이 오래 살려고 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헌옷 벗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굳이 때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중생들의 우견(愚見)일 따름이다.

도를 통한 사람은 몸뚱아리를 그림자로밖에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간밤에 꿈을 꾼 것이나 같다고 할까.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서 무슨 일 인가 분명히
있었긴 있었으나 헛것에 불과하듯 삶도 그렇게 본다.

그러므로 굳이 이 육신을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벗으려고 들면 향 한 대 피워놓고
향 타기 전에 마음대로 갈(죽음)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존재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육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으며,
일년에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고,
또 우주는 일었다가 없어짐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도인(道人)에게는 생사가 없다.

혹자는 '그 도인도 죽는데 어찌 생사가 없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옷 벗는 것을 보고 죽는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옷'을 자기 '몸'으로 안다.
그러니까 '죽는다'.
그렇다면 도인이나 성인은 무엇을 자기 몸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몸 밖의 몸,
육신 밖의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
좀 어렵게 말하면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
그걸 자기 몸으로 안다.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란
죽으나 사나 똑같은 자리.
이 몸을 벗으나 안 벗으나 똑같은 자리,
우주가 생기기 전의 시공이 끊어진 자리,
생사가 붙지 않는 자리란 뜻이다.

부처님은 바로 이 '자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오셨다.

이 세상의 삶이
'꿈'이란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우리는 꿈 속에서
덥고 춥고 괴로운 경험 등을 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있는 이 육신이
한 점도 안 되는 공간에 누워,
또 10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몇백년을 산다.

우주의 주체가 '나(我)'이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우주 속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세간(世間)의 어리석은 이 들은 꿈만 꿈인 줄 안다.
현실, 이것도 꿈이다.
하지만 중생들은 꿈인 줄 모른다.

다시 말하거니와 성인이 깨쳤다는 것은
이 현실을 간밤의 꿈으로 보아버린 걸 말한다.

우리는 꿈만 꿈이라고 생각할 뿐,
이 현실은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몇백 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눈엔 현실이 바로 꿈이다.
즉 환상이나 집착이 없다.
그러므로 천당과 지옥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 정도로 말 해 놓고 나서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고 본다면 영원할 수도 있고
찰나라고 본다면 찰나일 수 있을 것이다.

좀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

요컨데, 우주 창조주 즉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우주 생기기 전의 면목을 타파한 걸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란
하늘 어느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어떤 실재적인 인물이 아니다.

이 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내 얘기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 태어난 젊은이라면
3천만, 5천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즉 나 하나의 잘못은
3천만, 5천만명에게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어른이 되어
무슨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준비를 갖추며 살 일이다.
청년은 그런 자신을 길러야 한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고흐가 그린 마지막 유작이라고들 한다
<오베르 교회>는 이 작품 바로 전에 그린 것으로 되어있다
<오베르 교회>에서 보이는 것 처럼 역시 하늘의 먹구름이 거칠고

어둡고 불안감이 돌고있다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처럼

낮게 내려앉은 코발트색 짙은 하늘과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불어가는 바람이 그대로 화면에 담겨있는 붓터치
지평선 너머의 흰 구름 두 개는 고흐와 동생 태오의 방황하는

영혼을 나타낸다고 한다

 

Vincent Van Gogh. Wheat Field with Crows. 1890년 7월, 오베르.
Oil on Canvas. 50.5 x 103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Vincent van Gogh -  sunflowers

 

 


자화상

고흐(Vincent Van Goch)
네덜란드의 화가. (1853.3.30~1890.7.29)

국적 : 네덜란드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
주요작품 :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아를의 도개교(跳開橋)》《해바라기》

 

                          

 Two Cut Sunflowers

 

 

 Two Cut Sunflowers

 

 

 Two Cut Sunflowers

 

 

 Four Cut Sunflowers

          고흐의 전체 그림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그림이다.

          파리에서 그린 작품들 중에는 남프랑스의 강한 매력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 많지만,

          이것보다 분명하게 표현한 그림은 없다.

           

          꿈틀거리며 타오르는 불쏘시게의 불꽃처럼 보이는 꽃들은, 결국 그림의 오른쪽 끝에

           있는 순수한 노란색과 오랜지 색으로 이루어진 불길로 변해가리라는 인상을 준다.

           

          네송이의 해바라기는 파리시절 사랑하는 여인 세가토리에게 실연당한 후 자신의

           모습을 해바라기 꽃에 담아 그리것이다.

          네송이의 해바라기가 뜨거운 사랑과 정열을 나타내듯...

          그중 잘려진 채 뒷모습을 보이는 외톨박이가 된 꽃송이(맨 오른쪽)는 

          고흐 자신을 나타낸것이다.

           

          Still Life: Vase with Five Sunflowers  

            순수하고 가슴아픈 고흐의 글

             

            "나는 외톨박이 화가 입니다.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버림 받은

            인간입니다. 작열하는 태양마저도 저를 보고 외면하는 천애의

            버림받은 인간입니다. 내 심장은 항상 사랑과 열정으로 고동치지만

             그 고동은 허공에 메아리치는 고독한 외침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것이 저를 멸시하고 저에게서 떠나려 합니다.

            "자냉에게는 작약 그림이 있고,코스트에게 접시꽃 그림이 있다면

            나에겐 여러점의 해바라기가 있다

             

            여러점의 해바라기가 있으나, 화병의 좌측 고흐의 서명의 위치와

             형태로 구 분 할수 있다. 

            고흐가 죽은뒤3629억 2500만 달러라는 거액에 경매 돼었지만 정작.

            37년의 생에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고흐는 술의 부작용으로 황시증이 생겼다. 시립병원의 레이 의사가

            음주를 나무라자 고흐는 이런 말을 했다.

             

            "노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올 여름 그것에 .

             

            도달하기 위해 나로서는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찬란한 노란색을 얻기위해 여름내내 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아를르에 오기로한 고갱이 거처할 방에 걸기위해 해바라기 연작을

            그리게 된다.마침내 고갱은 10월 아를르에 도착하고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보고 감탄하게 된다.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 고흐는 네델란드에서 파리로,
            다시 이를로로 옮겨 갔는데
            이는 태양을 쫓은 그의 행적을 잘 보여 준다.

            태양에 대한 자신의 집념이
            해바라기와 닮았다고 여긴 고흐는
            "해바라기는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풍부한 변화상을  나타내 태양을
            또 생명을 찬양하는 듯하다"고
            말하며 여러점의 해바라기 작품에
            태양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담아 내고자 했다.

 

 

리차드 롤랑드 홀스트는

반 고흐의 최초 전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카탈로그의 표지에

시들어 구불어진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이는 예술가로서의 고흐의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Rainbow Song - Ralf B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