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9. 20:1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어느 절에 노스님 한분이 계셨다.
덕이 높고 수행이 깊은 노스님은 여간해 아프시지도 않고
대중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살아 가셨다.
어느 날 짖궂은 손자 상좌들이
"노스님 언제 옷 벗으실 겁니까?"
하고 여쭸다.
언제 돌아가실 것이냐 물은 것이다.
그 때 스님은
"뒷산 바위가 무너지는 때에 옷을 벗으마"
하셨다.
하루는 상좌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 하시고
사람 얼굴을 그린 후에 눈동자는 남겨두며 하시는 말씀이
"사십년 후에 이 그림을 걸개로 하여 중원 천하를 돌아다니며 '자기 영 찾으시오.'
하고 소리를 치고 다니면 내가 나타나 눈동자를 그려줄 것이라"고 하시고는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단정히 하고 좌탈 입망(앉아서 돌아가심)하시니
갑자기 뒷산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사십년 후에 청나라에는 순치(順治) 황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마상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행하여
중원 천하를 통일하여 자금성에 앉아 있는데
성밖에서 문득 “자기 영(靈 ) 찾으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에 이끌린 듯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어느 중이 걸개그림을 들고 있는데 눈이 없어
황제가 붓을 들어 눈동자를 그려주었다.
그 승려는
“사십년 만에 스승님을 뵙습니다.” 하면서
큰 절을 올리고 연유를 말하니 순치는 홀연히 자신의 전생을 깨달았다.
그 길로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산으로 들어가 출가하며 시를 지으니
그것이 유명한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出家詩)이다.
곳곳이 수행처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 天下叢林飯似山(천하총림반사산)
어데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 鉢盂到處任君餐(발우도처임군찬)
황금 백옥이 귀한줄 아지 마소 黃金白璧非爲貴(황금백벽비위귀)
가사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라. 惟有袈裟被最難(유유가사피최난)
내 비록 산하대지의 주인이련만 朕乃大地山河主(짐내대지산하주)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憂國憂民事轉煩(우국우민사전번)
백년 삼만육천날이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육천일)
승가에 한나절 쉼만 못하네 不及僧家半日閒(불급승가반일한)
부질없는 한 순간의 잘못으로 悔恨當初一念差(회한당초일념차)
붉은 가사 벗고 누른 곤룡포 입었네 黃袍換却紫袈裟(황포환각자가사)
내 본디 서천축(西天竺) 스님인데 我本西方一衲子(아본서방일납자)
어찌하여 제왕의 길로 들어섰나? 緣何流落帝王家(연하류락제왕가)
태어나기 전 그 무엇이 내 몸이며 未生之前誰是我(미생지전수시아)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 我生之後我是誰(아생지후아시수)
자라나 사람노릇 잠깐 동안 내라더니 長大成人纔是我(장대성인재시아)
눈 한번 감은 뒤 또한 뉘이런가. 合眼朦朧又是誰(합안몽룡우시수)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 百年世事三更夢(백년세사삼경몽)
만리의 이 강산은 한판 바둑둠이라 萬里江山一局碁(만리강산일국기)
우임금 구주를 나누고 탕임금 걸주를 치며 禹疏九州湯伐桀(우소구주탕벌걸)
진은 여섯 나라 삼키고 한은 기틀을 마련했네 秦呑六國漢登基(진탄육국한등기)
자손들은 제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兒孫自有兒孫福(아손자유아손복)
자손들을 위한다고 마소 노릇 그만 하소 不爲兒孫作馬牛(불위아손작마우)
예로부터 많고 적은 영웅들아 古來多少英雄漢(고래다소영웅한)
푸른 산 저문 날에 한줌 흙이로다 南北東西臥土泥(남북동서와토니)
올적엔 기쁘다고 갈 적엔 슬프다고 來時歡喜去時悲 (내시환희거시비)
속없이 인간에 와 한바퀴를 돌단 말가 空在人間走一回 (공재인간주일회)
애당초 오잖으면 갈 길조차 없으리니 不如不來亦不去( 불여불래역불거)
기쁨이 없었는데 슬픔인들 있을 손가 也無歡喜也無悲 (야무환희야무비)
나날이 한가로움 내 스스로 알 것이라 每日淸閑自己知 (매일청한자기지)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 여일세라 紅塵世界苦相離 (흥진세계고상리)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요 口中吃的淸和味 (구중흘적청화미)
몸위에 입은 것은 누더기 한 벌 원이로다 身上願被白衲衣 (신상원피백납의)
오호(五湖)와 사해(四海)에서 자유로운 손님 되어 四海五湖爲上客(사해오호위상객)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逍遙佛殿任君棲 (소요불전임군서)
세속을 떠나는 일 하기 쉽다 말을 마소 莫道出家容易得( 막도출가용이득)
숙세(宿世)에 쌓아놓은 선근(善根)없이 아니되네 昔年累代重根基 (석년루대중근기)
왕으로 산 十八년 자유라곤 없었노라 十八年來不自由(십팔년래부자유)
뫼들에서 크게 싸워 몇 번이나 쉬었던가 山河大戰幾時休(산하대전기시휴)
내 이제 그만 두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我今撤手歸山去(아금철수귀산거)
천만가지 근심걱정 나하곤 무관하네 那管千愁與萬愁(나관천수여만수)
이 같은 시를 지어면서 절집생활에 익어갈 무렵에
순치의 대를 이어 여덟 살에 등극한 강희황제가
조정의 혼란상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아버지 보고 싶어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그러나 순치의 방에는
짐과차(朕過此) “내가 이곳을 지났노라.” 라는 글귀만 남기고 순치는 없었다.
내가 이곳을 지났노라는 세 글자에 강희는 아버지의 굳은 뜻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순치는 절간의 부목으로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스님들 시봉을 하면서
곤룡포를 입고 지은 업장을 녹였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또한 비슷합니다.
세 끼니 맛있든 없든
네 철 입는 옷이 귀하든 천하든
네 철 사는 집이 좋든 나쁘든
그리 사는 것인데
세속인이나
종교성직자나
모든 것을 버렸다하는 출가자까지도
먹고 입고 사는 것에
미련을 가지고
남에게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딱하지만...
그것이 욕계에 머무는 이들의 삶인것을...
하면서 그것 또한 지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하지요.
그것이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지요.
(다 어렵지만 겨우 재 纔자는 더욱 어려워요..
한 물결 일어나면 만 물결 따른다
一波纔動萬波隨
는 선시에 나오는 글자이지요.)
저자거리에서 2009.11.29일에
온누리 법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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