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2. 00:2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청소년 문화를 이해해야 학생회 발전 한다...4년전 글
나는 오가던 학교 길목에 산이 있고 절이 있어서 학생회에 가게 되었는데
숙연(宿緣)이 있어서인지 음력 섣달 초이렛날 입회하게 되어
눈을 뜨는지 감는지도 모르고 철야 참선을 한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때 다니던 평택의 명법사 불교학생회는 피아노가 절에 없어서
서울에 있는 절에 가서 피아노 반주를 녹음해 와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찬불가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참으로 열심히 찬불가를 배웠고 나는 대략 150여곡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 나였기에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찬불가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즉 법당에서 법회 볼 때만 찬불가를 부르지 않고
사찰 밖에서 다른 행사를 하거나 즐길 때도
찬불가를 소리 높여 부르거나 흥얼거려
다른 아이들이 의아해 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내게 물었었다. ‘뭐가 그리도 좋으냐고...’
그리고 대학입시를 위해 예비고사를 볼 때에도 절에 갔었다.
요즘처럼 수능을 보는 3학년에게
절에 오라는 이야기를 못하는 시절에 비하면 대단히 용감(?)한 것이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열심히 하다가 대학에 가서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았을 때
대학교회가 커다랗게 있던 중앙대학에서
170여명의 신입회원을 포함 3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리는
꽤 큰 학생회를 이끌기도 했는데
요즘 이야기 해 보니 그렇게 하려면 20여개 대학이 모여야 한다고 해서
혀를 내 둘렀던 적도 있다.
그리고 사찰의 불교학생회는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내가 대학을 다니며 불교학생회의 지도교사를 할 때는
수원 용주사에서 10여 개 사찰 250여 불교학생회원이 모여서
연합 수련회도 하고 제법 활발했었는데 이제는 한낱 추억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불교뿐 아니라 천주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단체의 학생회가 쇠퇴의 길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다.
그것은 학생들이 속해있는 청소년기의 특성이 많이 변해버린 것을
교단과 종교학생회를 이끌어가는 성인 성직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학생회가 발전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수준을 유지하는 종교도 있다.
많게는 천여 명의 젊은 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예배가 있는가 하면
몇 십 명에서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예배를 보는 개신교의 경우가
그래도 성공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현재는 그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출가사문의 길을 걷고 있지만
청소년 시절에 불교학생회에 나갔었다.
그 시절 불교학생회는 이성간의 간접적인 접촉도 있었고
새로운 문화와 정보를 접할 기회도 있는
그야말로 해방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변화와 청소년들의 심리 및 문화변화가 그리 급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학생회를 통해서 오히려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것을
불교지도자들이 애써 외면하고 그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근대 우리 승단의 왜곡시기에
불교 기본교육에 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신도 교화를 담당하는 주지 등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그렇다.
설법도 어렵게 하는데다가
청소년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다가
무엇을 물어도 오히려 그것을 나무라던 이들이
질풍노도보다도 더 급격하게 변해버린 폭발성의 시대를 맞이하면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경제적 구조가 왜곡되면서
출가사문이 가장 경계해야할 속된 소유에 관한 지나친 관심이
재화를 없애는 것으로만 인식되는 학생회의 육성에는
고개를 돌리게 된 것도 커다란 이유이다.
또 법회를 하려면
교화의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럿이서 역할을 나누어 하는 전문화의 시대가 된 것인데도
학생법회를 하려면 학생언어나 사고에 익숙하고
레크리에이션 등 방편에 익숙해야한다는 것에 너무 기울어서
나는 못한다는 생각을 미리 해 버린 것도 한 이유이다.
하지만 삼층 누각을 멋지게 짓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튼튼히 하고 1층을 지어야만 차례대로 2층과 3층을 지을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학생회의 발전을 통해 배출된 학생이 많아야만
절에 오는 어른 신도들도 많아진다는 필연적인 귀결을 이해한다면
학생회의 침체상태를 그대로 두어서는 한국불교의 미래가 결코 밝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시대의 부처님을 새로 모셔서라도 선교방편(善巧方便)을 찾아서
학생회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종단을 중심으로
모든 사찰에서 학생법회를 개설해야 한다.
그것을 종법으로 묶어서 의무화해야 하며,
잘 하는 곳은 표창하고 인사고과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심리 상담소 및 심리연구소와 포교방편 연구소
그리고 지도자 연수원을 설립해서 지속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학생들을 가장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대학생들을 양성해야 한다.
장학금도 주고,연수의 기회도 주고 해서
그들이 입시 방법 지도도 하고 문화활동 지도도 하는
써클을 많이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불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스님들부터 청소년을 이해해야 한다.
2004년도에 광주지역 청소년(중,고등학생) 532명에게
방과 후 여가에 무엇을 하면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무려 60.5%가 온라인게임을 하고,13.5%가 영화를 보았으며
8.6%가 노래방을 가고,7.7%가 스포츠를 했다고 한 대답이
문제의 해답을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답답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미래가 어찌되려고 이러는지....’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청소년을 이해하고 그들이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불교학생회의 재건이 이루어지고
불교의 발전과 불국정토의 건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문화공간을 사찰에 확보하고 시설과 프로그램의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서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일이 중요하다.
도심지에 있는 백화점에 가보면 대부분이 학생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스포츠시설, 음악 미술 등 예능시설, 게임과 놀이 등 오락시설,
토론과 세미나 등을 위한 공간 등 학생들을 위한 문화공간을
가장 좋은 곳에 어른들의 여가시설보다 더 멋있고
좋게 만들어서 학생들의 사랑을 이끌어내야 한다.
교회에서는 게임기와 밴드와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는데
우리 사찰에서는 가능한가?
일찍이 대승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이미 바뀌어버린 소소한 계율의 조항을 잘못 적용해
좋은 방법론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보아야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불교의 정체성을 충분히 살리는
가능성의 교육방법론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교육은
요즈음 세계인의 화두가 되어 있는 생태교육과도 밀접한 것임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법현(法顯):스님,태고종 사회부장,열린선원 원장,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응용불교학 전공),
어린이법회교사,학생회지도교사,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 회장,고문으로 20여년 이상 봉직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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