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30. 22:4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첩부된 보리방편문 파일의 일부 장면
아침 커튼을 걷는 7시께면 집앞 풍경은 늘 진한 안개를 머금고 있다.
밀밸리 동네 끝이 옆동네 소살리토, 티뷰론과 함께 바닷물이 들어오는 물가라서 그럴 것이다. 공기를 쐬러 베란다 문을 열면, 참았다가 와락 밀려오는 듯 우웅하는 길 건너편 쇼핑몰의 준비소리, 삐익삐익 청소차 후진소리가 함께 터져들어져 온다. 새벽부터 그 시간께까지 미어우드에서인지 타말파이스 산에서인지 산내음이 참 상큼한데, 사람들이 활동하는 8시 정도면 어느덧 향기가 흩어져 같은 곳에서 같은 향을 맡을 수가 없다.
언뜻보이는 상가 뒤편 풍경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데, 원래 황금색을 입어본 적없이 사는 푸른 나무들이 그 모습을 용케 감추어주고 있다. 저 건너아래에 씨잉 하고 차도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고, 그 윗길 트레일에서 개를 끌고 운동하는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관광삼아 하는 듯하는 본격적인 자전거 운동파는 한 두시간 이후인 8시, 9시에 쏟아질 것이다.
작년에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사시던 목사(정확히는 부목사)님은 새벽 5시 반이면 늘 캄캄한 이 트레일 길 산책을 나서시곤 했다. 우린 바로 위층에 살았는데, 염불선 1차기도에 들어 연신 108배를 올리고 시원한 공기를 마신다고 베란다로 나올 때, 때때로 아랫편 길위에 그림자가 보였다. 사색에 가득찬 그 느릿한 경행에 방해될까봐 베란다 난간아래 훅 깊게 앉아 없는 듯이 앉아있기도 했다.
종교는 달라도 그들과는 늘 도반이었다.
나 혼자 이름까지 붙였었다. ‘수도관 도반’.
새벽 다섯시에 안방 간이수도에서 세수를 하시는 듯 물을 틀면 함께 연결된 윗층 우리집 수도관에서도 치이익 하고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천수경 보리방편문을 읽다가 정확한 그 시간에 그 소리를 들으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었다. 이제 아래층 사모님의 기도방에도 불이 켜지겠지 예상을 한다. 지금의 작은녀석 방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독거노인을 돌보는 기독교 대학생 봉사를 하다가, 평생 자신이 하는(사는) 행동으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해달라고 서원을 시작했다는 보현보살이었다. 목사님도 ‘하나님의 소리가 귀에 들렸다’ 하지 않고 ‘내 안에서 그런 생각이 났다’고 표현하는 불자였다. 그 분들은 영주권문제가 해결이 되질 않아 공부를 하던 중에 할 수 없이 귀국하셨다. 대학생 자녀들이 칼리지를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귀국해야만 해서 안타까웠다.
어쨌든 그 후 내가 바톤을 받아 내려왔으니 그들의 기도를 여여히 잘 이어야 할텐데, 게으름으로 이거 여간 낭패가 아니다... 새로이 인연된 다른 윗층, 아래층 아파트에 수도관 도반으로서의 연을 솔선수범하여 잘 심어야 할텐데...
창문 앞 나무들이 진한 황금옷을 두텁게 입더니만 어느새 훌훌 벗어 햇빛이 더 들어 아파트가 훨씬 밝아졌다. 우리집, 애들은 빵파. 어른은 밥파다. 보리방편문 모임같이 애들을 놔두고 외출하는 날은 애들이 늘상 찾는 밀가루로 만든 이런저런 것들을 그 밝은 식탁 위에 늘어놓는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작은녀석 소리가 힘차다. 으윽 벌써 게임기를 들고 있다.
이번 보리방편문 공부모임날은 여러 스케줄이 걸려있었다. 그럴때면 혜국스님 법문테잎이 연상된다. ‘불자들에게 사는걸 물으면 ‘스님, 바쁩니다, 아주 바빠요’ 늘 그러는데 뭐가 그리도 바쁜지, 몸은 바빠도 마음일랑 늘 한가하여라~’ 대목인데, 이날의 경험으로 그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보리방편문 공부모임시간이 부동으로 마음에 정해지니 그 외의 돌발상황은 그 앞뒤에 맞추어지게 되고 다만 그 상황에서 생각을 조금 빠르게 했을뿐 마음이 그리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 날은 산타바바라에 공부하러 와있는 동생이 짧은 틈을 내어 어렵게 와 있어 친정엄마 대행을 하고싶은 날이었고, 갑작스런 전화를 통해 LA에서 하루 묵어가실 손님들이 오신다는 연락도 있었다. 그 분들 저녁준비와 다음날 아침준비를 해야하는 상황. 어? 그럼 프리웨이타고 한국장도 봐야하는데! 그래서 모임의 공부가 끝나자마자 다행이 같은 동선의 마켓도 들리면서 부랴부랴 돌아오느라 도반님들과 공부 후 자유로운 담소를 나누지 못했다.
올해 마지막 모임.
온전히 참가하신 도반님들은 다섯 분. 이날 북가주 불자산행팀 송년회가 겹쳐 그 곳 회원이시기도 한 4분이 준비관계로 부득이 빠지셨는데 그 중 두 분은 기어이 들러 미안하고 아쉽다고 30분 남짓의 강의를 듣고 떠나셨다.
사찰들은 다음날인 일요일에 동지법회를 하고 팥죽공양을 한다는데, 오늘 모임의 자리를 내어주신 S보살님께서도 따님과 정성들여 동지팥죽을 만들어주셔서 먹을 수 있었다.
그런 팥죽이다. 찹쌀과 멥쌀을 방앗간에 가져가서 (놀랐다. 산호세 지역만도 4군데 떡집-방앗간이 있다고 한다) 찧어와 호박을 삶아 으깨고 계피를 좀 넣고 대추삶은 물을 부어 이겨 새알을 만들고, 곱게 거른 팥물에 잘게 썰은 밤을 또 넣고, 새알이 다른 냄비에서 뜨거운 물에 동동 뜰 때 건져 팥죽 냄비에 넣은다음, 큰 냄비 아래 밤이나 팥이 눌어붙지않게 긴 주걱을 계속 저어가며 다시 익혀야 한다.
샐러드 채소인 아르겔라를 정원에서 뽑아 올리브유 소금 식초를 넣어 만든 드레싱으로 즉석 무친 야채가 아주 일품이었는데, 이것이 사철 나는 채소이긴 해도 여름철에 갔을 때 해주셨을 땐 향이 너무 독해 비위가 틀려 나는 먹지 못했는데, 초겨울(사실 집에선 반팔을 입는 날씨지만)이라고 이제 향이 적고 은은해서 참으로 좋았다.
점심식사 끝.
도현거사님은 서둘러 전기코드에 프로젝트를 연결하시고 노트북에 저장된 엄청나게 많은 파일 제목중에서 오늘분을 클릭하여 흰벽에 쏘아 화면 크기를 조정하신다. ‘이렇게 호사스럽게 공부하면 안되는데에~...’ 하면서 전기장판위에 둥글게 쓰윽 앉아 따듯한 담요까지 무릎에 덮었다.
오늘은 이렇게 하지요.
심은 허공과 등할새 편운척영이 무한 광대무변한 허공적심계를 관하면서...(쉬지않고 열 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108번)
오손도손 둥글게 앉아 호흡을 맞추어 외웠다.
눈을 뜨니 머리도 정연해지고 무엇보다도 눈이 확연히 맑아졌다고 느껴진다.
스트레치를 하고, 다시 눈을 감고,
머리부터 차근차근 아래쪽으로 바람에 날려 몸이 없어지도록 서서히...
그 다음 눈부신 광명이 내 머리 위부터 타고 속으로 내려가 이윽고
지금 앉아있는 온 몸의 빛으로 우주를 비추는, 그런 짧은 관을 하여 몸을 가볍게 하였다.
한 분씩 읽어보시지요.
그 말씀에 아차하고 보살님들께서 안경가지러 가신다고 서둘러 드나드시다가,
본격적으로 정통선의 향훈 6강인 마음의 성품을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윤독을 하고 나서,
각자 기억에 남거나 골자로 여겨지는 부문을 돌아가며 나름대로 짧게 얘기를 했다.
도현 거사님은 오늘의 챕터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하셨는데,
우리 생이 어디에서 오고가는가 하는 청화스님 말씀과 곧 심즉시불의 내용이 잘 풀이되었기 때문이리라.
도현거사님의 정리말씀 후 다시 도표로 정리된 슬라이드 강의를 듣고, 다시 책으로 돌아와 7강으로 넘어간다. 내심 기다리던 7강 무아의 수행편!
천태지의 선사 지관법문 대목(정향 p206), 즉 ‘위무지혜고 계언유아....‘
그 다섯줄 한문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다 읽으라고 하셨다 (헤헤 겁나지 않아요. 왜냐면 그 앞에 한글이 먼저 씌여있으니깐두루). 그런데 아래에 더 큰 글씨로 한글 법문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윤독하지 않았다. 시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혹 아니면 우리 수준을 (너무 높게 보시는 거 아녀요?)....
그러다 보니 생각이 난다. 몇년전 샌프란시스코 여래사에 들렀을 때, 당시 주지스님 수원 스님께서 경을 한자로 보는 것이 좋다고 하시던 것을. ‘어윽. 어떻게 모두 한자로...’ 한글이 너무너무너무 편한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한자로 자꾸 보다보면 새록새록 다르게 알아지는 것이 있으니 직접 그리 공부해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고 하셨는데, 왠지 그 진심이 깊게 전해지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경전에 나타나는 ‘법‘이라는 단어가 매번 뜻을 달리하는 바람에 무척 고생을 하셨다는 도현 거사님의 지독했을 외로움을 유추해보기는 커녕,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듯이 강조하시는 말씀도 쉬이 잊어버리고 오늘도 슬라이드가 새롭게 보여지고 있으니...
오늘 모임이 다른 때와 조금 달랐던 것은, 책의 진도보다 직접 같이 하는 윤독이나 보리방편문 함께 외움 등으로 회원들의 참여시간이 훨씬 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년의 방향을 모두가 알고 있다. 올해보다 좀 더 함께하는 수행의 시간을 늘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1월의 정기모임 전에 신년 모임을 갖기로 했다.
아니, 곧 카멜 삼보사에서 ‘행법을 같이하는 도반들과 앉게 되는 시간’을 맞게 되다니!
그렇다. 작년 이맘께를 돌아보니 이건 내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도반님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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