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문제 그리고 대자비심(봉정암 삼보일배 수행기)

2009. 12. 29. 21: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728x90

고도가 높아지면서 이미 눈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고 바람도 세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예상된 상황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본격적으로 눈보라와 함께 계곡바람이 세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좀 더 악화되었다. 시간을 보니 5시를 조금 넘겼다. 이미 절하고 올라온 지 11시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족히 3~4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물론 가장 힘든 시간이다. 그래도 여유를 갖고 가기로 했다.

 

<니가 고생이 많다!^^>

 

나의 목적지는 봉정암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봉정암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내 마음을 지켜보고 있고, 일념아미타불과 일체중생의 온전한 기도의 마음을 놓지 않느냐 달려 있으니!...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날씨는 더욱 어두워지고, 빙판길이라 라이트를 켜고 절을 해야 했다. 이제는 다리를 통해서 계곡을 자주 건너야 한다. 눈보라는 내가 그토록 산을 많이 다녔지만 처음 경험할 정도로 세졌다. 다리위에서는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더구나 내리는 눈과 잔설의 눈들이 바람에 쓸려오는 눈보라는 매서웠다.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내려가는 사람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깜깜한 산 속에 오로지 혼자다!

여러 가지 장애 때문에 가는 길은 더욱 더뎌졌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절을 접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래도 이런 경계들에 흔들리지 말고 절을 하면서 아미타불 염불만 믿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과 더욱 세지는 눈보라. 그러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라이트가 나간 것이다!

신기한 것이 오늘 새것으로 교체한 것이다. 갑자기 나갈 이유가 없었다. 이제 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밤에 눈길을 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깜깜한 산속에서는 눈에 의한 흰색뿐이다.

이제는 절을 그만두고 걸어서 올라가는데 눈으로는 길을 전혀 구분할 수 없으니 오로지 발에 닿는 느낌만 믿으며 길을 찾아야 했다. 문득 문득 다가오는 길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는 산속에서 불 켤 아무런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이 연상된다.

 

이때 내 마음은 냉정해진다. 아직도 뚜렷이 기억되는 이때 순간의 마음은

"그래, 아미타불만 믿자. 죽음도 인연법으로 받아들이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이런 경험은 사실 만들래야 만들 수 없다. 그저 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부닥치는 경계의 현상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철저한 자신의 문제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이 탑은 홀로 많은 이에게 깊은 감며을 주었던가!>

 

이번 삼보일배의 가장 큰 화두는 '혼자'였다. 그리고 마음공부의 마지막에 남을 '대자비심(大慈悲心)'에 대한 참구였다.

그래서인지 백담사에서 방에 묵을 때도 운이 좋게 혼자서 잤다. 좋은 묵언의 기회였다. 24일부터 봉정암에 도달할 때까지는 절대 필요한 말 외에는 할 사람이 없었다. 방에 혼자서 참선을 하는데 참 오랜만에 깊이 들어갔다.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고통의 실체를 여실히 보았다. 얼마나 헛된 망상으로 스스로 고통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이런 것을 직시하면 그동안 아파오던 몸에서 오는 고통의 현상은 서서히 사라진다!

다음날 새벽 예불을 보고 바로 삼보일배를 시작했으면 예상대로 큰 문제없이 봉정암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너무 여유롭게 올라가서 이번에는 아침공양을 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6시 40분에 삼보일배의 첫 걸음은 시작되었다. 이번 천일기도의 주 발원문이 '일체중생의 온전한 행복을 간절히 발원하며 온 우주가 대자비의 불성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觀하게 하소서!'이다. 염불 속에서 자비심에 대한 참구를 많이 하게 되었다.

 

동국대에서 만난 수많은 스님 중에서 참 스님같은 분을 만났다. 출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 청화큰스님이시고 당신이 출가 전부터 큰 스님과의 인연이 많았다고 하신다. 계율도 철저하시고 학문적 깊이도 상당히 인정을 받으신다. 이것은 주위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그분과 식사를 하고 동국대 뒷산인 남산 산책로를 거닐 때가 많다. 조용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 마음이 무척이나 편안해진다. 특히, 수행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눈다.

그 중 얼마 전 그 스님께서 나에게 큰 질문을 던지셨다.

"우리가 하는 수행의 마지막에 무엇이 남는 줄 아십니까?"

"무엇입니까?"

"대자비심입니다."

그냥 그렇게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번 천일기도에서 깊이 참구해야 할 부분이 '대자비심'이 되었다. 누구나 아는 아주 쉬운 부분일 수도 있지만 참으로 깊이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얘기가 잠깐 빗나갔지만 어째든 염불은 잘되었고, 마음도 참 행복했다. 다만 몸이 생각보다 많이 무거워서인지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무릎이 초반부터 아파서 고생을 많이했다^^.

처음으로 앉아서 쉬는 시간은 출발한지 3시간이 흘렀고, 그담부터는 힘이 드니 2시간, 1시간 반 정도로 줄어든다. 물론 쉬어봐야 5분 정도이다. 그러니 거의 절만하면서 올라간다. 절하는 순간이 가장 좋다^^.

처음에는 소리로 염불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소리 낼 힘도 없다.

걸어가면서 나무아미타불을 하면서 空 ․ 性 ․ 相을 떠올리고 절하면서 일체중생을 위한 기도의 마음과 자비심을 떠올린다.

물론 힘이 지나치게 들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은 그저 힘든 상황일 뿐이다! 그것이 망상으로 가기 전에 아미타불을 잡으면 되는 것이다!

 

<봉정암 오르는 동안 나의 체력을 지탱해줬던 식량. 참 간단하죠?^^>

 

어째든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고 봉정암 빛을 보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얼마나 간사한 이 마음인가! 나중에 보니 신발에 잘 맞지도 않던 새로 샀던 아이젠 한 쪽은 없어진 줄 도 몰랐고, 내려갈 때보니 내가 정신없이 기어 올라왔던 깔딱고개는 너무 미끄러워 잘못하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는데...정신없이 올라오느라 그런 위험에 대한 인지를 전혀 못하고 너무 강한 바람만 기억나니 말이다^^.

7시 반 정도에 봉정암에 도착했으니 생각보다 빨리 왔다. 총 11km 중 마지막 1km를 걸어서 온 듯하다. 그런데 그 1km가 제대로 큰 가르침을 주었다^^.

 

어둠 속에서 엉뚱한 길을 가고 있다는 상황을 알아차린 후의 두려움 그리고 그 뒤에 엄습해오는 낮에 유독 구슬프게 울던 까마귀 소리의 느낌과 절하고 있을 때 유독 매섭게 몰아치던 눈보라의 매서운 느낌 그리고 이유 없이 갑자기 빛을 잃은 라이트(봉정암에 오니 다시 작동되었다^^) 때문에 오는 이상한 느낌은 참으로 본능적인 공포심이다. 그 뒤에 다시 잡은 아미타불 염불 속에서 바라보는 그러한 감정들의 空함의 실체!

사실 이 때 큰 도움이 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위법망구(爲法忘軀)'이다. 원통불법의 요체 중의 글을 인용해보면, '도를 위해서는 몸을 바치겠다는 위법망구의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전혀 있을 수가 없을 때에는 마구니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이러한 경험을 한 번 겪고 나면 얼마나 인연법이 쉽고도 어려운 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고, 모든 문제의 해결은 결국 인연법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확신이 배가된다.

살고 죽는 것도 인연법에 맡겨 두고 이 마음이 오로지 얼마나 진리에 가까워있는지를 보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염불을 해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진리의 자리에서 염불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염불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염불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이것과 관련해 청화선사의 말씀 중에서 감명 깊은 부분이 있어서 인용해보면, '우리 자성공덕 자체가 조금도 막힘이 없는 것인데 그 자리에 무슨 생사가 있겠습니까!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금생이 되었든 과거가 되었든 마음 잘못 썼기에 병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병을 빨리 나을려고 생각 할 때는 마음 자세가 본래의 자리, 병도 없고 생사도 없고, 남을 미워할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는 자리에다 마음을 둔다면 웬만한 병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귀신같은 것은 절대로 못 짚이는 것입니다.'-이상 원통불법의 요체 중.

 

실상염불(實相念佛)에 대한 청화선사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쓸데없이 길어진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이 늘 평온하고 위없는 진리의 행복이 충만하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늘 중생심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桐沁합장_()_

 

'실상염불이이란 현상적인 가유(假有)나 허무에 집착하는 무(無)를 떠나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진여불성자리 이른바 법신(法身)자리를 생각하는 염불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실상관에 대한 말씀을 인용하면 '나라는 이 몸뚱이나 너라는 몸뚱이나 천지 우주에 있는 모두 두두물물이 다 비어 있다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자리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만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무량무변한 자리에 무량공덕을 갖춘 청적적광이 충만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마음을 내는 것이 실상관(實相觀)입니다.'

-이상 원통불법의 요체 중. 실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큰 스님의 모든 법문에서 가장 강조하시는 말씀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을 대자비심이 바로 실상관이 아닐까 합니다만 아직 공부가 미흡합니다.

 

<사리탑에서 바라본 봉정암 아침. 얼마나 추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