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기도 입제와 회향법문(잡아함경에 명명경(明冥經)의 삶)

2010. 1. 10. 20:0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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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등은 부처님 전에 개인 등을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개운정사에 있는 인등은 관세음보살님 전 개인 등을 말합니다..

 

개인별로 소원을 적어 인등에 올려 놓고 매일 등불을 밝혀둡니다.

365일 매일 스님이 기도해 드립니다.

 

 

인등을 켜는 이유는 각자의 무명업장을 밝혀서 녹이고

각자의 건강과 수명장원을 빌고 병고나 액난을 피하고

각자의 소원 성취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벌써 12월도 중순에 들어가는 둘째 주입니다.

오늘은 잡아함경에 있는 아내를 넷씩이나 거느리고 살았던 부자남자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 부자는 첫째 부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애착했던지라 자나 깨나 곁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씻어주고 만져보고 쓰다듬고 귀한 장신구에 철 따라 좋은 옷도 사주고 지극 정성으로 간수하며 살아가면서도 왕은 여러 왕비들을 거느리고 사는데 아무래도 부인이 서너 명은 더 있어야 행세라도 할 것 같아서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과 몇 년에 걸쳐 매일을 죽기로 각오하고 싸워 둘째 부인을 아주 힘겹게 얻은지라 남들 앞에 데리고 나가면 뿌듯한 성취감에 자랑스럽기만 한 둘째 아내를 얻고 나서도 세 번째 부인도 맞이했는데 셋째부인은 어찌나 여우같고 애교스러운지 마음도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같이 놀고 즐기다가도 우울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새 곁에 와서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은 셋째부인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넷째부인을 또 맞이하게 됐는데 넷째부인은 성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실하기는 했지만 별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지라 뒤치다꺼리 살림이나 맡기고 별 관심이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런 넷째부인은 늘 하녀 취급을 받으면서도 전혀 싫은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힘든 일은 혼자 도맡아 하면서도 그저 남편 뜻에 순종하기만 하고 살아가던 중, 어느 날 왕처럼 그렇게 호사를 누리며 살던 부자는 먼 여행을 떠나게 되자, 혼자서 그 먼 여행을 간다는 게 힘들 것 같아서 조강지처인 첫째부인에게 함께 가자고 말하자 첫째부인은 냉정하고 차갑게 거절하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러자, 남들에게 자랑을 가장 많이 했던 둘째부인에게 함께 가자고 동행해주기를 바라자, 첫째도 안 가는데 내가 왜 거기를 함께 가냐면서 냉정하게 거절을 해 버리고 맙니다.

자기와 변죽이 가장 잘 맞았던 셋째부인에게 먼 여행길인데 함께 가자고 말하자, 그토록 애교가 많고 언제나 함께 해주겠다던 셋째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이 떠나는 모습에 아쉬움과 슬픔으로 성문 밖까지는 배웅 해줄 수 있지만 같이 갈수는 없다고 투정부리고 울면서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 남자는 꿩 대신 닭이라고 여행 가는 길에 평소에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해주었던 편하게 부려먹을 수 있는 하녀 같은 넷째부인에게 동행해줄 것을 청하자, 넷째부인이 하는 말이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이 가자고 하시거나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말해주자 부자 남자는 평소에 자신이 대했던 것에 비해 넷째부인의 진실함에 고마워하며 돌아오는 길에 먼발치에서 첫째부인과 둘째부인을 바라보자 그 여자들은 벌써 다른 사람에 둘러싸인 채, 눈길도 주질 않았고 그래도 문 밖까지는 나와서 이별을 아쉬워해주는 셋째부인을 뒤로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부자는 머 언 여행길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동안에 그 남자를 죽일 놈으로 여기셨을 것이고 그래도 조강지처가 젤인데 그것도 아니네! 하는 생각도 했을지 모릅니다만, 그 남자의 먼 여행길은 바로 저승길을 말합니다.

 

이야기 속의 네 명의 여자는 아내처럼 중요해서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한 것입니다.

 

첫 번째 부인은 이 몸뚱어리와 네 가지의 相을 비유하고, 둘째 부인은 재물과 온갖 着心을 의미하고 셋째 부인은 필이 통한다는 주변의 친한 친구들을 말합니다만, 넷째 부인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죽을 때, 세 가지는 어쩔 수 없이 다 놓아두고 떠나가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함께 나서는 건 살아생전의 마음뿐입니다.

 

살아 있으니까 마음이라 부르고 생각이라 부르지만, 죽으면 영혼이라 부르고 영가라 하고 귀신이라 합니다.

살아생전에 마음이라 부르던 것이 죽어서는 영혼이 되고 귀신이 되어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일지라도 살아생전에 지은 바 업력대로 앞장서서 자기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저와 더불어 여러분 모두가 살아생전의 생각과 마음은 습관적으로 활보하고 다녔던 대로 길을 찾아갈 것이니 일상에 가졌던 생각들이 어둡고 매사에 부정적이고 생각도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길이었다면 평소의 지향성에 의해 그 영혼을 늘 활보하고 다녔던 대로 어둡고 부정적인 길로 인도할 것이고, 선한 생각을 일으켜 밝은 마음으로 긍정적인 선업과 말 한마디라도 남의 좋은 점만을 입에 올리는 보시덕행을 쌓는 밝고 환한 일상의 길을 다녔다면 마음의 지향성은 생전의 영혼을 늘 다니던 환한 길로 자기를 데려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께서는 입이 닳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일으켜 어떤 업을 짓는가가 죽고 난 뒤에 갈 길을 스스로 만들 뿐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행하기 어려운 “인유이십난” 중에서 열여덟 번째의 수화도인난(隨化度人難)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연중생을 이끌어 주기 위해 온갖 방편을 다 편다 해도 사람들마다 온갖 근기가 다르고 처해진 모든 조건과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중생을 제도하고 교화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하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근기설법을 하시고 대기방편을 하셨던 것이듯,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스승은 제자에게 지혜롭게 교화시킬 수 있는 지혜법이 바로 육방예경이었던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싱갈라” 라고 하는 어느 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생전 유언에 따라 아무런 의미도 모른 채, 매일 아침마다 동서남북상하(六方)를 향해 절을 해왔는데 마침, 세존께서 지나가시다 싱갈라가 예경하는 것을 보고 그 참다운 뜻을 설명해 주셨는데 이 가르침을 육방예경이라고 했고 선생경이라고도 합니다.

싱갈라는 부처님을 뵙기 이전에는 부친의 유언에 따랐을 뿐으로 육방에 예경하는 참뜻은 모르는 체, 아버지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 습관적으로 여섯 방향을 향해 절을 했지만 부처님을 만나 육방에 예경하는 의미와 그때 지녀야 할 지혜로운 마음가짐을 알게 됐듯이, 육방예경을 가슴에 담고 자신의 주변 가까운 이들부터 대한다면 중생제도가 어렵다는 말은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듣고 육방예경을 통해 수화도인난을 실천해 보겠다고 한 마음을 일으키긴 했지만 집에 가서 속 터지게 하는 가족이나 이웃을 만나거들랑, 이제 열아홉 번째의 도경부동난(覩境不動難)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막상 경계에 부딪쳐가지고도 그 마음이 동요되지 않기란 쉽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실존인물로 중국역사상 여자로서 황제의 지위를 가졌던 이가 바로 측천무후(呂太后)였는데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누군가 의논상대를 두고 싶었는데 여자의 몸인지라 그 누구를 정하기가 힘들어 고승을 청해 곁에 모시고 국사를 의논하고자 해서 물망에 오른 스님들이 국사인 충이라는 스님과 신수대사였는데 측천무후가 두 스님에게 묻기를 “스님들도 가끔 여자생각이 납니까?”하고 묻자, 국사인 충스님은 정색을 하고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신수대사는 스님도 몸뚱이를 갖고 있는 중생인지라 어지러운 생각이 없을 수는 없지만 다만 정신을 차릴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측천무후는 두 스님을 황실로 초대하고는 황후를 뵙기 위해서는 먼저 목욕부터 해야 한다는 구실로 벌거벗은 궁녀들이 목욕시중을 들도록 하고는 자기는 구멍 속으로 두 스님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때, 결코 그런 생각이 있을 수 없다던 국사인 충스님은 시중을 들고자 가까이 오는 궁녀들에게 얼굴이 달아오른 체, 냅다 호통을 치면서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데, 신수대사는 궁녀들에게 몸을 내 맡긴 채, 전혀 동요됨이 없이 목욕을 마치는 것을 보고 신수대사를 국사로 모시고 정사를 논했다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색성향미촉의 다섯가지 경계를 대하거나 보거나 듣게 되면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 마음을 가장 잘 흔들어 버린다는 탐진치 삼독의 뿌리가 바로 “색성향미촉”이라는 다섯 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삼독을 경계하고 멸하고자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고 닦아 실천해 갈 때, 도경부동난(覩境不動難)도 능히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활하는 가운데서 마주치는 상황마다 방편을 잘 알아서 쓰기란 쉽지 않은 것이기에 스무 번째로 어려운 것이 바로 선해방편난(善解方便難)인 것입니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천백 억의 방편은 필요한 것이지만, 방편에만 치우치게 되면 정작에 부처님의 진리와는 동떨어져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외도로 빠져나가는 스님들이 종종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걸림이 없고 저기에도 치우침이 없는 지혜로움을 갖기 위해서 그 해답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가장 기초적인 팔정도에 있는 것입니다.

 

일상의 대 소사에 팔정도를 가슴에 새기고 생활할 때, 우리에게는 행하기 어려운 스무 가지는 없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오늘은 다사다난한 한 해의 어두움을 보내는 동지 날입니다.

입춘을 시작으로 보름마다 바뀌는 24절기의 하나인 동지절기로 오늘 밤 9시 04분에 동지(冬至)가 들어오니 오늘은 밤 9시 04분까지가 밤이 가장 길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긴 어둠은 물러가고 밝은 양의 기운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험 삼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 닫고 커튼 내리고 사람 손가락도 움직이지 말고 방 가운데 촛불을 켜놓고 지켜보시면 절기가 바뀌는 시간에 촛불이 팔랑〜하고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천지자연의 흐름은 거대하면서도 미세하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아홉 번째 절기인 하지로부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져 어둠이 극에 달한 동지가 오늘 지나고 나서 보름 지나면 소한(小寒)이 오고 또 보름만 지나면 대한(大寒)이 오겠지만 그 다음에 또 보름을 보내면 입춘이 기다리고 있듯이 온 세상이 지금 어려운 시기라 이 힘들게만 느껴지는 시기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지내고 보면 봄이 찾아오듯 편안함이 품안에 들게 되면 애틋한 추억으로 여겨지실 날이 되는 것입니다.

 

동국세시기에는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작은 설”이라고 해서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고 했는데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으로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죽어서 역귀가 되었는데 생전에 팥을 싫어했다고 해서 역병이 들게 되면 팥죽을 쑤어 대문이나 집안 사방구석에 팥죽을 뿌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 역신이 들지 못하게 한다는 축귀(逐鬼)기능으로 써먹었는팥이 가지고 있는 약효는 각기, 몸이 붓는 부종, 비만, 당뇨, 해독작용, 근육에도 좋다고 하는 등, 모든 현대병에 효과가 있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게 되면 과유불급이라 도리어 해가 됩니다. 그래서 적게 먹되 다양하게 만들어 자주 먹어주고 팥꽃은 당뇨병에 아주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동짓날에는 왕실의 내의원(內醫院)들은 소족에 백강, 정향(丁香), 계심(桂心), 청밀(淸蜜) 등을 넣고 고아서 약을 만들었는데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했지만, 부처님 계신 곳에서는 중생의 다리를 고아먹는 임금님의 비방보다도 더 좋은 처방 한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요즘 감기는 독해서 좀처럼 낫지 않을 때, 막걸리 한 되에 생강 한 톨을 깨끗하게 씻어 잘게 썰어 넣고 붉은 팥을 한 주먹 넣고 폭 삶아서 그 물을 나누어 마시면 소변도 잘나오면서 감기가 낫는다고 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 해 동안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양기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동짓날에만 사용하는 부적으로靑木東方에 西方白金이요 南方赤火에 北方黑水요 黃土中央이라해서 동서남북을 각각 쓰고 오방색을 쓴 다음에 뱀사(蛇)자를 써서 집안의 벽이나 기둥, 마루에 글씨가 거꾸로 가게 붙였다고 합니다.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죽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들 했는데 오늘 날씨가 춥지만 내년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즐겁게 추위를 대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동지기도 회향의 기념으로 “잡아함경에 나오는 명명경”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어느 경전을 대하시던 맨 처음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 해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세존께서 설하셨던 말씀내용을 경전으로 결집할 당시, 가장 가까이서 부처님을 모셨던 사촌동생이었던 다문제일의 아난존자가 들은 대로 대중 앞에 암송했고 요즘 말로 가방끈이 짧았던 이발사 출신의 지계제일의 우바리 존자는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털끝 하나도 틀리지 않게 기억하고 실천하며 살았기에 역시나 계와 율을 대중 앞에 세 번을 암송하고 500명의 장로비구와 아라한들이 인정하고 대중들의 이견이 없으면 그대로 경전으로 결집했기에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을 분명하게 밝혀 佛說임을 증명하고자 했던 공통적인 첫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을 “증신서(證信序)”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라는 한 구절이 증신서인데 경전은 전통적으로 증신서 다음으로 경을 열어 보이시게 된 인연을 밝히는 서분이 나오고 그 다음은 본론해당되는 정종분이 나오고 끝에는 결론에 해당되는 통분이라 해서 세 부문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하는 증신서가 존재하는 이유나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진실하게 사실대로 전하는 것이니 후세의 사람들이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일으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열반경에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아난존자에게 후대를 위해 몇 가지를 부탁하시고 책임을 지우시는 대목이 아난존자의 질문으로 인해 나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려 하자, 아난존자가 슬픔을 억제하면서도 몇가지를 묻습니다.

 

출가 전부터 부처님의 마부였고 부처님의 가출 아닌 출가에 큰 역할을 했던 찬다카는 시도 때도 없이 누구에게든 부처님과의 과거사를 들먹이며 똠방 행세를 하는 통에 다들 싫어하는데 부처님 열반하시면 대중들이 그런 악성비구인 찬다카를 쫓아내버릴 것만 같은지라 아난존자가 찬다카에 대해서 “스승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찬다카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난이여, 내가 가고난 후에 찬다카에게는 최고의 벌을 주어야 한다.” 그 벌은 찬다카 비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더라도 구들은 결코 그에게 잘잘못을 말해서는 안 되고 훈계를 해서도 안 되고, 가르치려 들어서도 안 된다. 찬다카를 위해서는 대중들은 그에게 침묵을 지키고 그를 상대해서는 묵빈대처(默賓對處)하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치게 될 것이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찬다카를 교화시키려는 방법은 소위, 왕따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되돌아보게 하려는 자비심이 근본에 깔려있었던 것입니다. 또, “열반하신 후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섬겨야 합니까? 라고 묻자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 계로써 스승을 삼으라.(以戒爲師)”시고 어떤 법에 의지하여 머물러야 합니까? 하고 묻자, “네 가지 생각에 의지하여 머무르라.(依四念處住)”하시면서 모든 경의 서두에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하라 하시고 “소소한 계(戒)는 버리라.”하셨습니다.

 

사념처에 의지하여 머무르라 했던 네 가지란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관찰법으로 이 몸()은 깨끗하지 않고, 모든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는 감수작용() 또한 근본은 괴로운 것이며, 마음()은 영원하지 않고 항상 변하는(無常)한 것이며, 일체 현상()은 무상한 것이기에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소승불교의 “사념처관법”인 것입니다.

 

서두에 증신서가 나올 때 분명하게 부처님의 말씀임을 아난존자께서 증명하신 것이니 지금 전해드리는 명명경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 나라의 “외로운 이들을 돕는 동산”이라 부르“제타 숲”에 계셨다. 이때에 “푸라세나짓왕”은 부처님께 나아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하나이까. 바라문으로서 죽으면 그는 도로 자기 성인 바라문 집에 태어납니까? 혹은 크샤트리야나 바이샤나 슈우드라 집에 태어납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그렇게 되겠소. 대왕이여, 잘 들으시오.

 

네 가지 사람이 있소. 어떤 것이 넷인가.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며, 어떤 사람은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오.

 

어떤 사람이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들어가는가.

어떤 사람은 비천한 가문 즉, 찬다알라(羅)의 집, 고기잡이 집, 대기구 만드는 집, 수레 만드는 집이나 그 밖의 갖가지 하천한 장인바치 집에 태어나서 빈궁하고 단명하며 모양은 파리한데, 거기다가 천한 업을 익혀 남에게 천하게 불리우면 이것을 어둠이라 하오.

이 어둠 속에 살면서 다시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이 악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세상에 나서 지옥에 떨어지오. 마치 어떤 사람이 밤에서 밤으로 들어가고, 뒷간에서 뒷간으로 들어가며, 피로써 씻고 악을 버렸다가 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도 또한 그와 같소. 그러므로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오.

 

어떤 것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천한 가문에 태어나 남을 위해 온갖 천업을 하면 이것을 어둠이라 하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둠 속에서 몸의 선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선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상에 나서 천상에 화생(化生)하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평상에 올라 말을 타고 말에서 코끼리에 올라타는 것처럼,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것도 또한 그와 같소. 이것을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오.

 

어떤 사람이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가.

어떤 사람은 부귀(富貴)하고 즐거운 집, 크샤트리야나 바라문이나 장자의 가문이나 그 밖의 갖가지 부하고 즐거운 집에 태어나서, 여러 종들과 하인이 많고, 단정하고 총명하며 지혜로운 몸을 받으면 이것을 밝음이라 하오. 그러나 그 밝음 속에서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상에 나서 지옥에 떨어지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높은 다락에서 내려와 큰 코끼리를 타고, 코끼리에서 내려와 말을 타며, 말에서 내려와 가마를 타고, 가마에서 내려와 평상에 앉으며, 평상에서 내려와 땅에 떨어지고, 땅에서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처럼,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소.

 

어떤 사람이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가.

어떤 사람은 부하고 즐거운 집에서 태어나서 형상의 단정하고 엄숙하면 이것을 밝음이라 하오. 이 밝음 속에서 몸의 선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선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상에 나서 천상에 화생하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다락에서 다락으로 가고, 이와 같이 평상에서 평상으로 가는 것처럼,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소. 이것을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오.” 하시면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시길,

 

“가난하고 궁하며 괴로워하는 사람, 믿는 마음은 없이 원한만 많고 아끼고 탐내고 나쁜 삿된 생각으로 어리석고 의혹하여 공경하지 않으며 사문의 도(道)를 닦는 이로서 계율을 지닌 많이들은 사람을 보고서도 헐뜯고 비방하여 칭찬하지 않으며 남

의 보시하는 것이나 받는 것을 방해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가더라도 반드시 지옥 속에 떨어지나니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가난하고 궁한 사람일지라도 믿는 마음이 있어 원한 적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언제나 내고 은혜로 보시하고 아끼는 때[垢]를 여의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계율을 지닌 채, 많이들은 이를 보고 겸손하고 낮추어 안부를 물으며 남도 권하여 보시를 행하게 하고 시주와 받는 이를 찬탄한다면 그러한 착함을 닦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가더라도 착한 세상의 천상에 오르나니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하고 즐거운 사람으로서 믿는 마음은 없이 원한만 많고 아끼고 탐내며 질투하고 나쁜 생각과 삿된 의혹으로 공경하지 않으며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고도 헐뜯고 비방하고 칭찬하지 않으며 남의 보시의 은혜를 방해하고 또 그 보시 받는 이를 끊으면 그런 따위의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가더라도 반드시 괴로운 지옥에 날 것이니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부한 사람으로서 믿는 마음이 있어 성내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언제나 지니고 은혜로이 베풀어 남을 미워하는 때를 여의며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계율을 지니고 많이들은 이를 보고 먼저 받들어 맞아 안부 물으며 그 편리를 따라 쓰임새 대어주고 남을 권하여 공양 하도록 하여 시주와 받는 이를 찬탄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가더라도 저 三十三천에 태어나나니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고 마치시자, 푸라세나짓왕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이렇게 명명경은 끝을 맺습니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라면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요,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라면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하듯, 욕지노년사(欲知 老年事)라면 초년작자시(初年作者是)라 할 것입니.

 

부디, 동지기도 회향을 맞이해서 시작은 어둠일지라도 밝음으로 가시고 나아가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시는 불자로서의 삶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

돌담이 아름다운 삼성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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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지리산 중턱 자락에 위치한 청학동 삼성궁,

    주차장에서 내려 삼성궁까지 가는 길가에도 돌탑과

    돌담으로 이루어저 있습니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돌담, 아기자기한 옛 생활도구와

    소품들이 함께 어우러진 돌담,

     

    차량 통행이 되지않은 곳, 인력으로 만든 아름다운

    돌담이 감동을 가져다 줍니다.

     

    삼성궁을 오르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의 한 일목을 볼수

    있는 곳이다 생각했습니다 .

     

    주차장에서 목적지까지 약 20분이면 오를 수 있습니다.

    인상과 추억의 여행길이 됩니다 한 번 다녀 오십시요.

 


 

  

생명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