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스님 선생님

2010. 1. 14. 21: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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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스님 선생님

 

법철 스님과 같이 살았던 천중사는 좀 특이한 도량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개화기의 유명한 신여성 중의 한 분이었던

선암 이충실 보살이 징병에 끌려간 아들의 무사귀환을 천지신명께 빌다가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천주교에서 불교로 개종하여 창건한 사찰이 천중사다.

일제 때는 일본 때문에 아들을 빼앗기고,

조금 있으니 6.25전쟁이 일어나 남편과 헤어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은 탓에,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희구하는 남북의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삼천리 방방곡곡에 부처님의 진리가 가득하면 하나가 되어

통일이 되리라는 신념에서 삼천 평의 도량을 마련한 것에서부터 남다르다.

 

보통 사찰에서는 대웅전이나 천불전으로 불렀을,

석가모니 부처님과 천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은 천중전天中殿이라 이름하고,

아미타불을 모신 곳은 자웅전滋雄殿이라 당호를 붙였다.

계시를 받은 이름이라 하는데, 경전의 어느 구절이 굴절되어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법화경』에 나오는 “하늘 가운데 하늘, 성인 가운데 성인” 표현 등이 재료로 쓰인 것이리라고 짐작해본다.

 

천중전에서 다 같이 예불을 모시고 나면

각자의 기도와 참선 및 간경 등의 시간을 갖고 도량 청소 등의 울력을 하게 마련인데,

법철 스님은 항상 자웅전에서 혼자 뭘 중얼거리며 독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방으로 가다가 법철 스님에게 물었다.

“법철 스님, 무슨 기도 하셨나?”

“옛날부터 금강경이 좋아서 매일 아침에 1~2독, 밤에 1~2독 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래요? 금강경 읽어서 뭐, 공 도리空道理라도 얻으려고?”

“뭘요. 그것보다는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래요.”

“그게 무엇인데요?”

“사실은 제가 학교에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는데,

사형님처럼 머리 기르라는 사람이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럴 사람은 교감이나 교장 선생님뿐인데,

그분들이 지나가다가라도 저를 쳐다보지 말라고 원을 하면서 독송하지요. 우습지요?”

 

법철 스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손때가 까맣게 탄 독송용 『금강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침저녁 2~3독씩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아마도 같이 근무하던 김병하 거사의 영향을 받았던 듯하다.

김 거사는 태고종 총무원에 20여 년을 근무하면서 태고종의 산증인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한때 건강을 상실해서 눈이 안 보일 정도여서 인생을 버릴까 생각할 정도로 상실감이 컸다.

그런데 이충실 보살의 지도로 틈만 나면 금강경을 독송하더니 눈이 보이고 건강까지 되찾았다.

그 뒤로는 사무실에서나 버스 안에서나 한 때도 빼놓지 않고 금강경을 독송하는 금강경 거사였다.

 

‘저런 사람이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 어느 날 절에 놀러온 동료 교사들에게 물었더니

하나같이 “저희도 처음에는 느낌이 이상했어요.

옷은 어울리지도 않게 헐렁하지요,

머리는 빡빡 깎아서 어디 갔다온 분 같지요.

그랬는데 하루하루 겪으면서 한 줄기 솔바람이

시원하게 우리 학교로 불어온 느낌이 들었어요.

바로 김 선생님, 아니 법철 스님이 솔바람이에요.

저희 교사들 모두가 순수하게 변하고 있어요.” 하였다.

 

그러면서 살짝 귀띔을 해 주는데,

명절이나 휴가철에 당직, 숙직을 부탁하면

아무 뒷말 없이 대신 맡아주기도 하고,

체육 시간에 축구나 족구, 테니스나 등산을 하면

5척 단구에 못하는 것이 없어서 누구나 친구가 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세상에 나왔으니 곡차(?)를 조금 하시면 좋을 텐데 별로 그 쪽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라고

입을 가리는 것이었다.

하기사 법철 스님이 늘상 암송하는 구절이

『금강경』의 “너니 나니 하는 구분 의식인 상相을 갖지 말라”와 “

늘 자기의 허물을 보고 남의 허물을 보거나 말하지 말라”는

『육조단경』의 가르침이니 세속의 교사들에게 시나브로 가까워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는 어떨까 궁금하였다.

하루는 지방 사찰에 며칠 다녀왔더니 온통 방을 어질러 놓았다가 치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에, 흩트러진 만화책이며 휴지……

마음이 심란해질 지경인데도 아무 표정도 없이

“우리 학교 아이들이 놀러 와서 이 방에 넣어주니까 매우 좋아하네요?

이틀 밤 자면서 잘 놀다가 갔는데…

사형 책이나 뭐 가져 간 것 없나 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길래 물어 보았다.

“너희 선생님 어디가 좋으냐?”

“다 좋아요. 빡빡머리라서 좋아요”

“뭐? 그것은 좀 그렇지 않냐?”

“드물잖아요.”

“간섭을 안 해서… 항상 웃으면서 수업해요.…”

그야말로 요즘 학생들의 의식 구조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다들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주사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원대학에서 교육학,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해

성철性徹 스님의 사상을 주제로 연구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교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어디에 있든지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좋아했으며,

수행 방법 중에서도 간경을 제일가는 수행이라고 하였다.

가만히 앉아서 연필이나 잣대를 가지고 바닥을 톡톡 치면서

경전을 읽다가 문득문득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

뭔가 반푼어치라도 소식을 들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지금 어렵다고 해서
오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기다림뒤에 알게되는
일상의 풍요가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신경쓰지 말자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내가 가진 능력을
잘 나누어서 알맞은 속도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여자이고
아직도 아름다울 수 있고
아직도 내일에 대해
탐구해야만 하는
나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모든 것에 초보자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익히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내 나이를 사랑한다

인생의 어둠과 빛이 녹아들어
내 나이의 빛깔로 떠오르는
내 나이를 사랑한다.

신달자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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