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품11장지극하고 이치가 이치에 맞는 말은 도에 이르게 한다

2010. 2. 5. 21: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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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하고 이치가 이치에 맞는 말은 도에 이르게 한다.

     

    법구경 언어품

     

    제11장

    지성감로설 여법이무과 제여의여법 시위근도립

    至誠甘露說 如法而無過 諦如義如法 是爲近道立

    지성스러운 단 이슬 말은 법다워 아무 허물이 없고

    이치가 이치답고 법과 같으면 그것을 도에 가까이

    서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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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수행은 지극했고 여러 가지 수행을 거치면서

    정법이 이닌 외도 수행으로는 모든 의심을 해결 할 수

    없다는 허물도 깨달았으며 그렇게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결국에는 무상의 정각을 성취하였으니 그것은 사바국토

    중생들로서는 매우 희유한 일이며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이 한 수행자의 성불에 의해 온갖 신화와 미신과 외도들이 

    난무한 세상에 길잃은 미망한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게 

    하였으며, 부처님의 정각은 지극히 이치에 맞고 법답게 설하여

    저셨다. 또한 중생들이 미개한 시대의 신화나 미신에 억매이

    거나 외도에 빠지지 않도록 온각 비유와 방편으로 이끌어 주시고

    궁극에는 해탈 열반의 도에 이르도록 자비를 베푸셨다. 부처님의

    설법은 늘 자비하시고 평등하여 맹신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지위고

    하를 떠나 어떠한 경우에서도 불법을 설함에 있어서 신분적인

    차별을 두지 않아 섰다.

     

    부처님은 어느 때 제자들에게 바른 가르침과 진리에 대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가르침이 있고

    나 이외의 또 다른 스승들에 의한

    경전이나 가르침이 한량없이 많지만

    이 모든 가르침이 진리의 가르침인지

    아니면 잘못된 가르침인지 알아보는 척도는

    바로 “사성제 팔정도”의 내용이

    그 안에 담겨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또 取轉經(취전경)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고.집.멸.도의 네 단계(사성제)란 어떤 것인가, 나는

    색(수.상.행.식)의 정체를 잘 알았고, 색(물질)의 집기를

    잘 알았고, 색의 소멸을 잘 알았고,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잘 알며,~

    그리고 색(수.상.행.식)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팔정도이니,

    곧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언어, 바른 직업,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집중이다.~]라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불법을 설파하기 위해 공포심으로 협박

    하거나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고 이치에 맞게 보편타당하며 법

    답게 설하셨다.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아란존의 마음을 묻자 아난존는 이것

    저의 마음입니다 하고 자기의 소견을 말씀드리자

    부처님이 듣고 그것은 진짜 네 마음이 아니다 라고 하시자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왜 이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하시는가 하고 의심을 하며 묻자 부처님이 아난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

    我非敕汝 執爲非心 但汝於心 微細揣擪

    "내가 네게 명령하여 (그것이)마음이 아니라고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만 네가 마음으로 (그것이 진짜 네 마음인지)자세히

    헤아려 보라고". 부드럽게 타이르신다. 이것이 중생을 안타깝게

    여기는 부처님의 자비심이고 평등심이다. 우리같은 범부가 감히 

    부처님 처럼 완벽할 수야 없겠지만 항상 말을 이치에 맞고 법답게 

    할려고 노력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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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알면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어느 봄날 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바구니에 돈이 별로 없었다. 바구니에 붙은 글귀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습니다" 였다.

    나는 글귀를 바꾸어

    "나는 봄이 와도 꽃을 보지 못합니다" 고 고쳐주었다.

    지나가든 사람이 발을 멈추고 돈은 넣기 시작했다.

     

    직접적 호소가 아니라 은유로 된 시가 사람을 움직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시를 알면 고객 마음을 열 수 있다.

    시의 은유가 많을 수록 사회가 부드럽고 따뜻해진다.

    서울역 화장실에 "남자들이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고 적어 붙이라고 충고하였다.

    "소변을 흘리지 마라. 정조준하라"고 직설적으로

    씌여 있으면 불쾌할 뿐더러 사회가 거칠어 진다.

     

    시는 인간을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준다.

    인생의 눈물과 그늘, 고통, 외로움, 절망도 시를 통해

    승화하고 극복할 수 있다.

    시를 알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사물을

    새롭게 해주어 삶이 깊어진다.

     

    '장미꽃에 가시가 없다면 존재 이유가 없어요' 라든가

    '아름다운 꽃에 이런 가시가 달렸다니. .'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시나무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다니. .'라고

    생각하라. 우리 삶도 고통에서 피어나는 꽃이요, 

    내  인생의 향기도 고통에서 피어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수선화> 의 일부인데, 인간은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죽어가는 존재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외로워서

    자살을 한다면 남은 가족에게 고통을 지워주는 것이다.

    나는 상처받고 외로울 때는 사랑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보리새우처럼 허리가 굽은 어머니가 안방에서 흥건하게

    잠자는 모습을 보았다. 언젠가 돌아가시게 될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 계실 때 자주 뵈려고

    작업실을 부모님 집으로 옮겼다.

    사랑의 근원은 모성애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남아 있는 삶을 성실하게 살 수 있다.

     

     

    - 정아영 기자가 정호승 시인과의 대담을 편집

     

      

    나무석가모니불~ ○계○정○혜○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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