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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맨처음 찾아오는 입춘(立春)은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날이다. 해마다 입춘이면 전국 사찰에서는 민간 세시풍속에 맞춰 삼재(三災: 홍수, 태풍, 화재 혹은 질병, 기근, 도적)부적을 쓰고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방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어왔다. 중생구제의 방편으로 쓰였던 부적 등은 부처님 가르침과는 다르다는 일반 신도들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찰에서도 부적을 나눠주는 풍속이 점차 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입춘을 맞아 불상의 먼지를 터는 이색법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살벌한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4일 입춘. 서울 역촌시장 내에 위치한 저잣거리 포교원 열린선원(선원장 법현)에서는 ‘부처님 씻어드리기(浴佛)법회’가 봉행됐다.
법현 스님을 비롯한 30여 신도들은 흰 장갑을 끼고 삼존불 뒤에 모셔진 원불(願佛) 300여 좌를 조심스레 내렸다. 불상을 직접 만져본 신도들이 살짝 들떠 흥분하자 법현 스님은 “천천~히 내리세요. 절대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라며 신도들을 진정시켰다. 불단에 모셔진 부처님을 옮기는 신도들의 손길은 막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를 품은 듯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40여 분 시간이 걸려 내려진 불상을 순서와 줄에 맞춰 일렬로 가지런히 모시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수행이었다. 원불이 모두 내려지자 신도들은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솔을 들고 지난 1년 동안 불상에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부처님 머리 부분의 나발(螺髮), 육계(肉髻)까지 구석구석 말끔하게 닦여진 불상을 원래 위치로 옮기는 데는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다. ‘부처님 씻어드리기 법회’는 부적보다는 불상을 옮기고 닦을 때와 같은 조심스러운 마음, 정성스러운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3재 마장을 없애 준다는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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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로운 의지를 다지고자 근무시간을 쪼개 법회에 참석한 임영래(50ㆍ서울 우이동)씨는 바쁜 업무가 있지만 마음 닦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냈다. 그는 “마치 몸과 마음에 쌓인 묵은 때를 털어내는 것처럼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라며 곳곳의 먼지를 털어냈다.
지난해에 이어 참석한 정서 보살님(52ㆍ경기 산본)은 “부적을 받고 기도를 하는 것 이상으로 부처님에 대한 예경심이 들고 내 마음도 개운하다. 기복적인 행위가 아닌 실천을 통한 신행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큰 것 같다”며 능숙한 움직임으로 스님과 함께 의식 진행에 앞장섰다.
법현 스님은 신도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 몸에 먼지를 털며 새봄을 맞아 마음을 가다듬고 수행과 생활의 조화를 꾀한다는 의미에서 2006년부터 부처님 씻어드리기 법회를 열어왔다. 스님은 “입춘이면 문화적 이유를 들어 업장소멸, 삼재풀이 법회가 열리지만 불교적인 의미가 담긴 새로운 입춘 법회가 필요했다”며 “불제자로 평생 닮아야할 부처님 몸에 쌓인 먼지를 털어드리는 것은 우리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터는 것을 상징한다. 또 부처님께 먼지를 털어드리 듯 누구나 마음의 때를 닦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