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상대하지 말고, 나를 태워나가라!-고난을 이기는 방법]
고난을 이기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현재 어려움이 내 눈에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반드시 이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나의 무한한 능력, 나의 정성, 그리고 이 세상의 은혜로 나는 반드시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는 반드시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세상은 절대 자비, 절대 우리 편이다! 나를 그냥 놔 둘 리가 없다! 내가 절망하고 여기서 좌절하면 모르지만, 내가 노력하는 한 반드시 세상은 변하고 내 뜻과 같이 된다!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둘째, 나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어려움도' 상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움이 올 때 어려움을 그냥 내 버려 두라는 것이며 그것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어둠을 보지 말고, 절망에서 절망을 보지 말고, 아픔에서 아픔을 보지 말고, 고통에서 고통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아픔이 물밀 듯 밀려올 때에도, 아픔을 보지 말고 어둠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희망, 절대 긍정, 그것만 보고 그것만 상대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밀려오면 밀려올수록 어둠을 보지 말고, 어둠과 상대하지 말고, 더 밝은 미래, 더 밝은 내일만 보는 것입니다.
셋째, '나를 태우는 것'입니다.
나를 태운다는 것-그것은 열심히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더 열심히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하면 변할수록 우리는 나의 삶과 나의 정성으로 더욱 더 스스로를 태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 세상아, 온통 잿빛으로 변해라! 나는 그럴수록 더 나를 태우겠다! 내 스스로 타 올라 나를 덮어오는 이 어둠, 나를 통곡케 하는 이 절망을 온 몸으로 헤쳐나겠다! 나를 태우고 또 태워 나의 빛으로 모두 환히 밝히겠다! 너는 그렇게 오고, 나는 그렇게 간다! 얼마든지 오너라! 나를 태움으로 너를 맞으리라!
이렇게 마음먹고 더 열심히 밥 먹고 더 열심히 잠자고 더 열심히 일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종교적 가르침은 큰 힘이 됩니다.
가령 불자라면 더 많은 절을 하고 더 많은 경을 읽고 더 많은 서원을 바치면 될 것입니다. 또한 불자 아닌 분들은 당신의 종교에서 가르치시는 대로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정성을 알지 못할 분에게 바치면 되겠습니다. 일상은 일상대로 열심히 살며, 종교적 가르침을 더 깊은 믿음으로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희망만 보며 그렇게 나를 태워나가면 이 세상은 반드시 보답이 옵니다. 우선 숨막힐 듯 죄어오던 일들이 어느 순간 여유롭게 변하며, 높이 모를 거친 모습으로 달려오던 물결들이 모두 부드럽게 우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합니다.
삼킬 듯 달려들던 매서운 눈보라 역시 어느덧 따스한 훈풍으로 바뀌며, 그와 함께 웅크리고 잠자던 우리 생명이 새롭게 돋아납니다. 그리하여 무너져만 가던 내 가슴이 희망으로 차오르기 시작하며, 날은 어느새 점점 밝아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사실입니다.
내가 나약하고 내가 더 크게 용기를 내지 못해 그렇지,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며 그렇게 살아가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침내 나타나는 엄연한 현실인 것입니다.
따라서 정녕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내 가슴에 회의가 오고 불안이 오며 걱정이 태산같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삶을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이 칠흑같은 어둠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普賢合掌
*덧글
이러한 방법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입니다. 혹시 내 주위에 가까운 분들이 좌절과 절망, 우울, 집착 속에 빠져 있으면 이렇게 해 보십시오.
먼저 저 분은 반드시 좋아진다! 이 어려움을 저이는 극복할 수 있다!-이런 메시지를 내 스스로와 상대에게 강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어두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 모습에 속지 않고 어두운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결코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어나갑니다.
다만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속의 일이 아니라 세속 밖의 일입니다. 세속 일은 한계가 있고 결코 마음의 밝음을 어두운 분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 외에, 세상 밖의 도움을 우리가 대신 청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만이 참으로 어둠을 거두어 줍니다.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아도 가까운 분들이 대신 해 주는 기도가 당사자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울림(緣起)'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근본 자리가 '울림'이기에, 우리가 세상에 바치는 정성은 세상의 근본 자리를 '울리게' 합니다. 공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기도가 다른 이의 아픔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우울증, 집착증(의처증, 의부증, 알콜중독, 도박 등) 등이 있는 분들의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녀들이 능히 한번 시도해 볼 일입니다.
아픈 당사자 보고 자꾸 뭘 원하지 마시고, 그 아픈 이들의 아픔만 보시지 말고, 그래서 함께 괴로워만 하시지 말고, 그 아픈 이들을 위해 당신 자신이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며 그렇게 기도해 나가 보십시오! 반드시 당사자가 변합니다...*^*^*_()_
*덧글 하나 더.
광덕큰스님이 걸어 가신 길도 그러합니다. 큰스님은 60년대 그 어두운 한국 불교계의 풍토에, 우리 생명이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고, 이웃의 어둠을 결코 보시지 않으시며 당신 스스로를 태워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큰스님의 몸에서는 중생의 탁한 빛이 아니라 부처님의 밝고 찬란한 빛(佛光)이 솟아 났으며, 그리고 그러한 울림은 이웃에 퍼져 마침내 잠자던 한국 불교계가 잠을 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불교계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내 생명 부처님 생명임을 믿으시고 이웃과 시비하지 않으시며 암흑 속에 오직 당신을 태워 나가신 큰스님의 밝은 가르침 덕분도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大屯山 구름다리 ↓
대둔산 암벽 철계단 ↓
마니산 기암 ↓
월출산.남근석 ↓
아름다운 세상 /조수미
내가 단 하루 동안만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한 순간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나는 슬픔의 장막을 걷어내고,
웃음과 사랑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싶어요.
내가 단 하루 동안만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슬픔에 빠진 죄수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들이 거리에서 노래할 수 있고,
절대로 슬픔에 젖어 그들이 뒤돌아 보지 않고
오직 사랑에 빠져 있을 수 있도록 말이예요.
아름다운 세상이여!
사랑의 빛이여!
생명의 빛이여!
우리를 낙원으로 알려진 어느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도록 운명지워진 어떤 별같은,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것은 한낱 아름다운 꿈에 불과하네.
아름다운 꿈...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상심한 사람들을 끌어안아줄거에요.
그들이 느꼈던 고통을 맡아
웃음과 사랑으로 포효하는 강물에다
그 고통들을 모두 녹여버리고 싶어요.
내가 단 하루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삼성산 여궁석 ↓
도봉산.여성봉 ↓
설악산.여심폭포 ↓
진해.시루봉 ↓
설악산 남근석.↓
북한산.족두리봉 ↓
부산.가득도.물개바위 ↓
제천 동산 남근석
낙가산.보문사.눈썹바위 ↓
인왕산.해골바위 ↓
인왕산.달팽이 바위 ↓
모산재.강아지 바위 ↓
수락산.기차 바위 ↓
사패산.범골능선 선바위 ㅁ
황매산.돛대 바위 ↓
금수산.독수리 바위 ↓
월출산.베틀굴 ↓
월출산.기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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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형제봉.통천문 ↓
수락산.철모바위 ↓
도봉산.주봉 ↓
양주.불국산.악어바위 ↓
관악산.거북바위 ↓
남해 설흘산.기암 ↓
삼장능선 기암 ↓
북한산 사모바위 ↓
금정산.남근석 ↓
관악산 왕관바위 ↓
경기.가평군.운악산 미륵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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