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결사의 핵심 정신은?

2010. 3. 18. 20:0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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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봉암사결사의 핵심 정신은?-스스로 타오르는 횃불!!!

 

 

해방되고 얼마 되지 않은 혼돈의 시대에, 성철큰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스승들은 ‘부처님처럼 살자’라는 각오로 봉암사 결사를 시도하셨습니다. 당시의 불안한 사회 정세로 불과 2년을 넘기지 못한 결사였지만, 봉암사 결사는 현대 한국 불교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사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한편에 또 있었으니, 그것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대 재앙, 한국 동란을 맞아 절망 속에 우왕좌왕 하는 이 나라를 위한 일부 스님들의 ‘각(覺)운동이었습니다.

 

 

암울하던 일제 시대에 겨레의 스승이셨던  용성조사의 위패상좌(돌아가신 분을 스승으로 모신 상좌)이신 소천선사와 불광 운동의 주역이신 광덕큰스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금강경 독송 운동은, 밝은 금강경의 힘을 빌어 이 땅에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희망을 창조하자는 비원(悲願)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스승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그 후 어린 후손들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살아 있는 사자후가 되어 저희들을 찾아옵니다.


 

지난 10월 19일에 있었던 조계종의 ‘봉암사 결사 60주년 법회’는 신정아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불교의 처절한 몸부림이라 봅니다.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아도 사뭇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만 명 가까이 되는 분들이 비옷,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시며 오늘의 한국 불교를 되돌아보는 모습은, 희미하나마 한국불교의 희망을 갖게 합니다. 남을 탓하기 이전 언제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 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번 봉암사 법회는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보조 지눌스님의 정혜결사 운동으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불교의 결사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과연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불교 자주화? 자기 참회? 순수 불교의 회복? 저는 그러한 정의는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그런 것도 다 맞는 말씀이지만, 우리 배달겨레의 옛 스승들이 저희들에게 이르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곁 가지(?)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볼 때 보조스님 등 옛 스승들이 결사를 통해 저희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신 가르침은, 불광의 광덕큰스님 표현을 빌자면, ‘스스로 타오르는 횃불’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척박하고 거칠어도,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힘들어도, 남탓, 바깥 탓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우리’의 문제로 알아 세상의 허물을 보지 않고 어둠을 탓하지 않고 어둠과 맞서지 않고, 스스로 타 올라 세상의 빛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옛 스승들이 결사를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였던 가르침인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암울해도, 결코 세상을 탓하지 않고 내 안의 등불을 밝혀 스스로 타오르는 횃불이 되는 것!

 

 

그리하여 어리고 겁약하여 타오르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며 그저 남탓, 세상 탓을 하며 어둠만 키워가는 이웃들에게, 스스로 길을 밝히고 스스로 나아갈 바를 보여주시며 저 어두운 이웃들에 희망과 미래가 되는 것!

 

 

원망 대신 참회를, 분노 대신 연민을,

시비, 대립,갈등 있는 곳에 무한한 조화, 영원한 화합을 보여주신 것이 그러한 결사인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불자님들이 한국 불교를 걱정하시고 한국 불교의 대오각성을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불자님들의 그러한 걱정, 우려는 제 견해로는 전혀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정말 고치고 개선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이 ‘스스로 타 오르는 횃불’이 되지 못하는 한, 그리하여 밖을 향한 나의 마음을 내 안의 에너지로 태우지 못하는 한,  바깥을 향한 우리의 바램, 안타까움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 허망한 한 줄기 겨울 바람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희망의 소리 봄 

 

 

겨울이 떠나가는 길목에서 배웠다.

사랑은 침묵 할수 밖에 없음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배웠다.

사랑은 마법의 성안에서 피워가는 비밀스런 나만의 정원임을..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을 보고 알았다.

사랑은 아낌없이 미련없이 주고 보내는것임을..

 

 

 

차갑게 스쳐 지나가는 메몰찬 바람을 보고 알았다

사랑은 따스함과 차가움을 함께 동반한다는것을..

 

 

 

다시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신 햇살이 깨울때 느꼈다.

사랑은 어둠을 벗어나 밝은 빛을 통해가는 희망임을..

 

 

 

한 계절이 떠나갈때 느꼈다.

사랑은 변화스러움이 많은 알송달송한 마음임을..

 

 

 

내 사랑이 그렇게 빛을 향해 피어날때 느꼈다.

사랑은 새록 새록 피어나는 봄날의 생동감임을..

 

 

초록의 향연이 시작될때 속삭여주는 신비로움으로 알았다.

온 세상이 다시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음을..

 

 

 

피어나는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웃었다.

슬픔으로는 사랑을 노래 할수 없음을..

 

 

                                                                                       봄 / 한태주 (오카리나

크다란 웃음소리를 들어며 알았다.

사랑의 오케스트라는 웅장한 봄의 연주임을..

종교강요 처벌법 만들기에 !! 전 국민이 참여합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설명 : 2007년 7월 21일 

독거노인 무료급식소 민들레밥집 운영비 마련 탁발하고 계시는 두타스님의 정수리를 잡고 흔들며
 
 

"회개하라"고 외쳐대고 있는 부산 00교회 전도 특공대)
 

 

 

2007.07.26. 13 :14 현재

 

 

 

아프칸 피랍사태를 보면서 국민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동안의 종교 단체들의 행동에 대해 분노를 같이 표출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신교와 여러 종교 단체들의 무분별한 선교할동방법에 치를 떨게 된

국민들의 분노의 표출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에 종교강요를 선교행위로 인정하고 있는 현행법을 고칠 필요가 있고

종교강요행위를 엄중히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종교강요를 포교활동 선교활동으로 인식하는한 이런사건은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제한이 필요합니다. 종교의 종류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종교라도 그 종교를 강요하는 것을 막자는 겁니다.

종교강요란 가정방문,공공장소에서의 포교(길거리,지하철등),

종교재단의 학교들에서 학생들에게 예배를 강요하거나 법회참석을 강요하는것,

타 종교단체에서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행위를 하는 일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또 기업에서 지위를 이용한 종교모임 참석을 강요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more


more

여러분이 여러 포털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는 글들이 악플로 규정되고 있고 정당한 비판임에도

언론, 정부, 종교단체들은 눈 막고 귀 막고 안 들을려고 합니다.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합시다.

 일 만명 서명받기 7월 25일~10월 25일까지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헌재 판결로 종교의 자유에 포교의 자유도 포함된다고 해석한 이후로
가정방문하고 길거리, 전철역에서 무분별한 포교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대안도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강요는 가정방문, 공공장소에서의 포교를 말합니다.
또 자신의 종교와 다른 종교단체에서의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행위를
하는 것도 종교강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교재단의 학교에서 학생에게
예배나 법회 참석을 강요하는 것도 종교강요에 해당되겠죠.
즉 원하지 않는 곳에서의 포교는 종교강요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가정방문, 지하철 및 거리같은 공공장소에서의 포교는 금지해야
할 것입니다. 비단 개신교 문제만이 아닙니다. 다들 한 번씩 당해본
xx도를 아십니까? 이것도 얼마나 끔찍하게 싫은지 아시는 분은 아실것입니다.

 

하루 속히 선교와 종교강요는 다름을 인식시키고 종교강요를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들 많이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부라고 하지만 거리거리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안해" 하는

천주교나 개신교도,  같은 기독교이기에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습니다..협조바랍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우리라는 행복

      말하고 생각 할 때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 단어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면 나는 왠지 그 사람과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에 푸근해집니다. 난로 같은 훈훈함이 느껴지는 단어. 그 단어는 바로'우리'라는 단어입니다. 나는 나, 너라고 시작되는 말에서 보다 `우리`로 시작되는 말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낍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온전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어깨와 어깨끼리, 가슴과 가슴끼리 맞대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아가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세상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맑고 아름다워지리라 믿어 봅니다.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 너라는 삭막한 말에 비한다면 '우리'라는 말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겨운지를... 『내 삶에 휴식이 되어주는 이야기 중에서』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