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법정스님

2010. 3. 21. 22: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728x90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  


산하대지에 초록이 물들고 있다. 살아 있는 무수한 생영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펼쳐 내는 이 눈부신 봄날,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들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이는 하나의 기적이고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생명처럼 존귀한 것은 또 없다. 생명은 개체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친지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그것이 다시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와서 이와 같은 생명의 존엄성이 크게 손상되고 있다. 걸핏하면 어린 생명들을 유괴해다가 폭행을 가하고 살해한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이 무작위로 죽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어울려 산다. 균형과 조화로써 생명의 연결고리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자연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바라봐야 한다. 자연은 인간과 격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크게 보면 우주 자체가 커다란 생명체이며, 자연은 생명체의 본질이다. 우리는 그 자연의 일부분이며, 커다란 우주 생명체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자연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다.

우리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우리의 몸이고 살이고 뼈이다. 이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물류와 관광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몇 푼어치 경제논리에 의해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이다. 삼면이 바다이고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수송을 분담하고 있는 현실로 미루어 그것은 결코 타당한 구상이 아니다.

운하는 이미 세계적으로 사양 산업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운하는 이제 물류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철도에 의존하기 위해 철도망을 확충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하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으로 치솟는 땅값에 관심이 있는 땅 투기꾼들이다. 그리고 건설공사에 관심이 있는 일부 건설업자들뿐이다.

강은, 살아 있는 강은 굽이굽이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이런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깊은 웅덩이를 파서 물을 흐르지 못하도록 채워 놓고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놓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니다. 갈수록 빈번해지는 국지성 호우는 토막 난 각 수로의 범람을 일으켜 홍수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 뻔하다.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으로 지역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

일찍이 없었던 이런 무모한 국책사업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우리 국토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런 무모한 구상과 계획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가 사전에 나서서 막아야 한다. 이는 신성한 우리 의무이다. 이 문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사안임을 깊이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