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3. 22: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양천보현사 무공스님의 말씀입니다.
법회(法會) 참석을 생활화 합시다.
법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도 지나고
온 만물들이 생동하는 3월 중순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입니다.
음력으로 2월 초하루를 맞이하는 오늘 법문은
“ 법회(法會) 참석을 생활화 합시다.”라는 주제로 시작합니다.
법우 여러분! 며칠 만에 법회 보러 오셨습니까?
다른 종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다 모이는데, 우리불교는 한 달에 한 번도
절에 제대로 나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일 년에 한번 초파일에 큰마음 먹고 절에 연등 밝히려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초파일 연등으로 1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우리나라 전체 불교신도 중에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절에 법회 보러가는
사람들은 20% 정도 밖에 안 되며, 나머지 80%는 일 년에 서너 번 갈까 말까
하는 사람들이라는 통계발표가 있습니다.
불자가 부처님 법을 따르고 익히는 근본 이유는
스스로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면 그 믿음과 실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종교의 본질은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 합니다.
먼저 잡아함경 일체사경(一切事經)에 언급된 경전 말씀을 살펴보시겠습니다.
부처님은 마하나마라는 재가신자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 만일 우바새로서 열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스스로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게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열여섯인가, 마하나마여!
어떤 우바새는 바른 믿음을 완전히 갖추어
그것으로써 남도 세운다.
스스로도 깨끗한 계율을 가지고 그것으로써 남도 세운다.
스스로도 보시를 행하고 남도 보시를 행하게 한다.
스스로도 절에 나아가 사문을 뵙고 남도 사문을 뵙게 한다.
스스로 알뜰히 법을 듣고 남도 또한 듣게 한다.
스스로도 법을 받아 가지고 남도 받아 가지게 한다.
스스로 뜻을 관찰하고 남도 관찰하게 한다.
스스로도 깊은 뜻을 알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닦아 행하고,
남도 깊은 뜻을 알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닦아 행하게 한다.
마하나마여! 이런 열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것을 우바새 스스로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불교를 구성하고 있는 사부대중 중에서 재가신도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승단을 외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입니다.
스님들이 바르게 수행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불자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스님들이 수행한 그 공덕은 고스란히 불자여러분들에게 회향되는 것이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초하루, 약사재일, 아미타재일,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이
사찰 법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달 봉행되는 각 재일 날에 법우님들 각자의 처지에 알맞게
절에서 봉행하는 법회에 참석을 생활화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요즈음 같이 급변하는 사회구조에서는 맞벌이 부부들로 이루어져
직장생활들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평일에 거행되는 사시불공에는
참석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결국 절의 법회에 참석하려고 해도 마음뿐 입니다.
이러한 직장생활로 인하여 정기법회에 참석하시지 못한 법우님들을 위하여
그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 보현사에서 지난 일 년 간 시행을 거치면서
정착시킨 매월 첫째 주 토요일 밤 8시에 봉행하는 참회정진 1000배 실시와
같은 직장생활을 하고 계신 법우님들이 참여하고 정진할 수 있는 법회가
그 대안이 될 수 있겠습니다.
스님! 평일날 직장 때문에 시간 없어서 정기법회에 참석 못하신다고
이제는 푸념들마시고 많은 법우님들께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법우 여러분들에 중지들을 모아 한 달에 최소한 한 번씩이라도
금요 정기법회를 저녁시간에 실시할 계획입니다.
여러분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 또 하나 짚고 넘어 가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사찰에서 실시하는 정기법회나 그 밖의 법회에 참석하였는데
스님들에 염불의식들이 전부 한문으로 구성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식에 대한 많은 공부들을 하신 법우님들께서는
이해하시겠지만 처음 절을 찾아오는 이들은 도무지 무슨 의미인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내다보니 의미도 모르고 그냥 덩달아서 따라하다가
불가의 가르침을 깨닫기도 전에 법회 참석에 대한 흥미를 잃고
불교와 멀어지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글로 된 법회의식도 대안이 될 수가 있겠고,
법우 여러분들께서 오늘 초하루 법회 사용하고 계시는 한문의식집을
한글로 해석해 놓으니 법우 여러분들께서 법회의식에 대한 의미들을
이해하실 수가 있어 더욱더 신심이 나실 것입니다. 쉽게 이해가 되시지요!
이제는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절 집안의 사부대중
모두가 변해야한다고 여겨집니다.
절에 큰마음 먹고 한번 가서 단순히 복을 비는 기복적인 기능에서
이제는 벗어나 불가의 바른 법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만
한국불교의 미래가 밝다고 여겨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님들도 시대정신에 알맞은 불교교리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포교방법들을 접맥시켜 나아가는데
가일층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제가 지난 서울 도심포교 8년간에 걸쳐서 느껴지는
쓴 소리를 한마디 하겠습니다.
지난 8년간 도심포교에서 남는 것은
한마디로 빚만 몽탕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산속 깊은 곳에서 홀로 정진하는 수행이 아닌 법우님들과 함께
수행정진을 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자 했던 출가시절의 원(願)을
실천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도심 속에서 포교를 한다는 것이 규모나 조직면에서나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온갖 어려움 와중에도 도심포교를 전개하셨던
역대 선배스님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심에서의 포교는 하나둘씩 정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것이 현재 도심포교의 현실입니다.
저 역시 그 동안 고향의 부모님들이 물려주셨던 문전옥답들을 팔아서
포교원을 유지하는데 지금까지 사용해 왔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여러 지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심포교 유지에 필요한 자금들을 차용해 와야 하는지
심한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의 저 자신의 포교의 역량과 방향 설정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겠지만 우리나라 큰 사찰들의 도심 포교원들이 과연 어디에 몰려
있는가를 법우 여러분들께서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부자동네로 불리는 강남이나 일산, 분당 등 경제적 여건이
그나마 갖추어진 지역에 밀집되어 있고,
정작 사회소외 계층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상황이 이러할 진데 과연 어떻게 한국불교가
이 시대와 함께하는 대중불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법우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심포교를 하다보면 절에 찾아오신 법우님들께서
하나 같이 나는 무슨 큰 절에 다니고 있다고 자랑들 하십니다.
큰 절에 가면 물론 모든 시설과 시스템이 갖추어져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하니까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큰 절에 다니고 있으니
대단한 불자라고 거들먹거리고 불자로서 모든 것을 다 깨친 것처럼
착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 사찰들과 법우 여러분들에 관심이 이러할 진데 도심 속 곳곳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할 포교 공간들이 어떻게 유지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일 년에 큰마음 먹고 큰절에 한번 갔다는 왔다는 것보다는
부담없이 동네 인근사찰에 가서 정기법회에 참석하고 왔다는 것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도심 특수포교를 담당하고 계신 사찰이나 포교원에
대한 법우 여러분들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일 년에 한두 번 큰 절에 가셔서
정초에 신수 보고, 초파일에 가족 등 달고,
백중에 조상 영가 위패 모시고서는
불자로서 모든 의무를 다하신 것으로 자랑하시지 말고,
날마다 깨달음(佛)과 밝음(法)과 청정함(僧)에 귀의하시여
생활 속에서 몸소 보살행을 실천하시는 당당한 불자님들이 되시길
오늘 2월 초하루 법문을 통하여 법우 여러분들께 당부 드립니다.
(음) 2월 초하루
보현사 무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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