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해라 /효봉스님

2010. 3. 26. 21: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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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해라 /효봉스님

 


  어느날 제자 하나가 효봉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다른 스님에 대해서 비난을 퍼부어 댔습니다.

 

“어느 스님이 이러저러한 해동을 하는데 계율을 어기는게 아닙니까?”

 “출가한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무슨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등등

 

그런데 제자가 말하는 동안에 효봉스님은 내내

두눈을 내리감고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의 안색을 살피며 제자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 말씀도 안하십니까?” 제자가 다시 묻자

효봉스님은 정색을 하며 되물었습니다.

 

“그래 다 얘기했느냐?” “예. 한말씀 내려 주십시오.”

제자의 말에 스님은 조용히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너나 잘해라!”

  참으로 따끔하고 통쾌한 한마디 말입니다.

 

요즘처럼 자기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잊은 채 다른 사람의 탓만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한마디 말보다 따끔한 충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남한테 주는 것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남한테 던지는 것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달릴 준비를 하는 마라톤 선수가 옷을 벗어던지듯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잡념을 벗어던져야 한다.
 
남을 좋은 쪽으로 이끄는 사람은 사다리와 같다.
자신의 두 발은 땅에 있지만 머리는 벌써 높은 곳에 있다.
 
 
 행복의 모습은 불행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고,
죽음의 모습은 병든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웃음 소리가 나는 집엔 행복이 와서 들여다보고,
고함 소리가 나는 집엔 불행이 와서 들여다본다.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이는 가난과 싸우고 어떤 이는 재물과 싸운다.
가난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많으나
재물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적다.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넘어졌다 일어나 다시 달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느낌 없는 책 읽으나 마나, 깨달음 없는 종교 믿으나 마나.
진실 없는 친구 사귀나 마나, 자기 희생 없는 사랑 하나 마나.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이는 바보이고,
가진 마음을 버리는 이는 성인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성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돈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낮이 즐겁고,
육체로 결혼한 사람은 밤이 즐겁다.
그러나 마음으로 결혼한 사람은 밤낮이 다 즐겁다
.



 
황금의 빛이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애욕의 불이 마음에 검은 그을음을 만든다.

두 도둑이 죽어 저승에 갔다.
한 도둑은 남의 재물을 훔쳐 지옥엘 갔고,
한 도둑은 남의 슬픔을 훔쳐 천당에 갔다.

먹이가 있는 곳엔 틀림없이 적이 있다.
영광이 있는 곳엔 틀림없이 상처가 있다.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소망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는 작아진다.

남자는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고,
여자는 남자의 용기는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
.


 

 

이연님의 포토기행 25

 

 

1  산 길에서

 

 

 

 

 

아픈 허리가 어느 정도 풀어지니

어느새 좀이 쑤셔 온다.

 

오늘은 일요일.

봄이 오는 산길이라도 좀 걸어야겠다.

 

울주 천전리각석이 있는 뒷산을 오른다.

원체 인적이 없어 내가 즐겨 찾아오는 산길이다.

골이 깊은 산속엔 아직 봄이 이르다.

 

그래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리 빈 숲속에는 물오르는 수런거림이 들리고

가지 끝 움트는 소리가 온산을 간질이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소유한 봄 산.

 

문득 어제 떠나신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스님은 이 아름다운 봄빛을 두고

어떻게 그렇게 가셨을까?

 

스님께선 봄산을 혼자 소유하는 것은 욕심이라

분명 경책을 내리셨을 터이지만

 

욕망을 떨칠 길이 요원한 나는

골바람에 꽃술만 흔들려도

나도 몰래 흔들리는 맘을 어쩔 수가 없다.

 

가슴을 열면 내려오는 하늘

법정은 법정의 깨우친 하늘을 보고

나는 나의 미망한 하늘을 본다.

 

하지만 오늘은

반갑게 마주치는 생강나무의 하늘과

막 봉우리를 터뜨리는 청매의 하늘이

결코 둘이 아니다.

 

살아서 이렇게

마음의 귀를 열고 춘색을 새겨듣는 나는

그저 행복한 중생일 뿐이다.

 

2010. 3. 14

 

2 봄 산에서 귀인을 만나고

 

 

 

 

오늘 날씨가 하도 좋아 봄 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비탈진 산에서 봄나물이라도 찾을 겸 두리번거리는데

놀랍게도 막 꽃 봉우리를 터트리려는 야생 蘭을 발견하였습니다.

 

蘭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봄에 꽃을 피우니

춘란에 속할 것인데 정확한 품종을 모르는 것이 아쉽네요.

 

마치 신비스런 비밀을 간직한 귀인과 같은 모습이랄까요.

골 깊은 산속에서 막 꽃을 피우려는 야생 蘭과의 조우는

제게는 첫 경험이라서 매우 흥분되고 설렜습니다.

 

경사면이 제법 가파른 곳에 피어 있는 터라

올라가기도 힘들고 중심 잡기도 힘들었지만

조심스레 낙엽을 걷어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체 연출 없이 자연 그대로 사진을 찍는 것이

당연지사이겠으나 예쁜 꽃봉오리가 낙엽에 가려서

부득이 하게도 바닥에 깔린 낙엽일부를 걷어냈습니다.

 

이렇게 보금자리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어서

참으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즉시 복구하여 줄 것을 약속하였지요.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몇 커트의 사진을 찍고

처음처럼 蘭 주변으로 낙엽들을 덮었습니다.

조만간 활짝 꽃잎을 열면 골짜기 일대는

그윽한 蘭香으로 다시 덮이겠지요.

 

그 때 다시 한 번 더 와 보아야겠습니다.

 

 

3 報春花

 

얼마 전 울주군 천전리 뒷산에서 만났던 춘란이

지금쯤 꽃을 피웠는지 너무 궁금하여 그곳을 다시 찾았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했던가?

갑자기 춘란을 사랑하게 되어 이곳저곳을 뒤적거려

내가 만난 춘란의 이름이 보춘화(報春花)라는 것과

보춘화는 춘란의 대표격이란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다시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이 나의 위치 지각능력은 아직 쓸 만했다.

이제는 다정히 그 이름을 불러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

반갑게 다가갔는데 뜻밖에도 분명 두 촉이었던 꽃대는

한 촉만 꽃을 피웠고 나머지 한 촉은 고개를 꺾고 말았다.

 

그날 내가 낙엽을 긁어 낸 탓일까? 하는 자책이

순간 가슴을 확 관통하고 지나갔다.

일찍이 한 송이 꺾어진 야생화를 놓고

이렇게 가슴 짠한 울림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안타깝고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게도 꽃을 피워준 나머지 한 촉의 꽃대가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이름 없는 산골짝 한 귀퉁이에서

남몰래 피고 지는 꽃 한 송이에도

분명 무상(無常)의 법문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무상은 결코 허무가 아닌 것임을...

 

스스로를 위로하고 일어서며 고개를 돌릴 때

오~ 세상은 참!

저만치 떨어진 곳에 또 한 포기의 춘란이

우아하게 꽃을 피우고 서있지 않는가.

순간 눈을 의심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이곳저곳에서 많은 춘란들이 동시에

꽃잎을 열며 일어서고 있었다.

 

아, 여기는 보춘화의 고장, 나는 지금 춘란 속에 있다.

 

 

 

 

 

 

 

분명 지난번에 왔을 땐 보여주지 않았던 보춘화를

오늘 이렇게 한꺼번에 내어놓는 것은

요 며칠 춘란을 향한 집착 때문에 일으킨 번뇌를

여기쯤에서 그만 내려놓으라는 뜻이리라.

 

이제 춘란과 나는 서로의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애당초 그러하였듯이

춘란은 그렇게 피고지기를 계속할 것이고

나는 나의 일상을 그렇게 이어갈 것이다.

 

2010년의 봄은

춘란 때문에 너무 좋았다.

  

 

 

 

 4 노루귀

 

오늘은 귀한 손님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노루귀라고요.

 

봄의 전령사입니다.

복수초와 함께 눈속에 꽃을 피우는

만나기 힘든 야생화이지요.

 

저 역시 눈속에 핀 노루귀를 찍고자 소원했지만

아직 단 한번도 눈속에 핀 노루귀를 찍지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울주군 두동 야산에서 찍은

노루귀로써 비록 눈속에 핀 것은 아니지만

무진장 회원님들께 소개합니다.

 

노루귀는 꽃받침이 솜털이 뽀송한 것이

마치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입니다.

꽃의 크기가 엄지 손톱만해서

정말 눈에 띄지 않는 꽃이지요.

 

노루귀 역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입니다.

 

 

 

 

 

5 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