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에서 챙기는 화두의 효능/송담스님

2010. 4. 11. 20: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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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서 챙기는 화두의 효능/송담스님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생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육근(六根)을 통해서 알음알이가 움직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화두를 드는 것 뿐이여. 망상이 일어난다고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어. 망상 일어나는 그 찰나에 그대로 놔둔 체 턱 "이뭣고...?" 화두만 거각하면 되는 것이여. 학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똑똑하고 안똑똑한 것도 없고, 남자니 여자니 따질 것도 없고, 출가 재가도 상관이 없어.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슬픈 생각이 일어날 때는 슬픈 생각에 오래 잠겨있지 말고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 상한 생각에 왜 오래 머물러 있냐 그 말이여. 속 상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면서 '이뭣고'...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하고 쉬운 법이 어디가 있냔 말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이기고 없애는 방법이 이보다 더 좋은게 어디가 있냐 말여.

그렇게 해서 자꾸 거각(擧覺)하고 또 거각하고. "망상 때문에 잘 안들린다, 화두가 타성일편이 안된다"고 걱정할 시간이 어디있냐 말야. 안되면 다시 들면 그만이고, 망상이 일어난 줄 알면 이뭣고. 이뭣고 이 공안, 무자(無字) 화두하는 이는 무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하는 분은 정전백수자.


알 수 없는 의단만을 자꾸 거각해서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해라. 거기에 무슨 망상이 붙으며 붙어봤자, 그거 그냥 놔둔 체 화두만 들면 망상은 자취가 없어지는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거기에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를 하는 것이다 그 말이야.

이 도리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몸으로써 경험을 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에게 증명을 해주신 것이야. 이 세상에 이것 밖에는 믿을 것이 없고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 낳기를 원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재산 갖기를 원하고, 명예나 권리가 없는 사람은 갖은 수단을 써서 그런 것을 구하지만, 마음 먹은 데로 구해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사 구해졌다고 해도 그건 영원성이 없고, 잠시 그러다가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거여.


그런데 이 일대사 문제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면 아무 맛 없고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분심이 나고, 해갈수록 더 발심이 되는거여.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까 내가 이 법을 안만났으면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를 거듭할 수록 이렇게 신심이 굳건해져가고.

그렇다고 해서 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어. 급한 생각을 낸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이 아녀. 초발심해서 참선을 시작한 사람은 초발심에 강렬한 신심으로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일라 그러거든. 초발심자가 그만한 분심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열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여법하게 해나가다 보면, 그런 만용적인 우격다짐식의 그런 신심이 차츰 순화가 되고, 그래서 이 몸뚱이와 생각을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들볶고,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막 몰아대고 하는 그런 것이 차츰차츰 순화가 되어서 정신을 올바르게 가다듬고 나가는 묘한 관(觀)을 스스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는 정말 참 열심히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럭저럭 허다말다 해가지고선 안되는 것입니다.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여

-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한 이래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라

- 몇번이나 삼악도에 들어갔더냐.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 오늘 번뇌에 물든 번뇌염을 씻어버리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니라

- 인연따라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남북 이산가족들이 가족상봉, 그 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친지를 이별하고, 한 나라의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질 못하고 참 기가 막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었는데, 그 왕을 등져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서 삼악도로 육도윤회를 돌고돌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에도 무량겁을 두고 거듭될 신세가, 다행이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참 50억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 할까, 참 행복한 삶을 받아낳다고 할 것입니다.


이 정법, 최상승법,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이 한 생각 한 생각,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화두를 잘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를 함으로써 우리의 본 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고향을 모를 때는 갈 곳도 없고 가봤자 별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잘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보자, 좋은 차도 가져보자 하지만 고향이 있는 곳을 알고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해.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떻게라도 한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 밖에는 어디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지만 실지로 가보면 많은 장애가 있어.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려고 하는데 못돌아가게 하는 장애가 얼마든지 있단 말야. 물이 맥힐 수도 있고, 산이 맥힐 수도 있고, 다리가 끊어질 수도 있고. 또 가는 길에는 도둑놈도 있고, 사기꾼도 있을 수 있더라.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많은 마구니들이 우리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를 친다. 그럴 때 어떻게 그 마장을 극복하고 나가느냐? 그건 참 대단히 중요할 일입니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마왕파순이다 하고 나오는 경우는 없어. 방해친 사람이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법이 없어. 반드시 나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 직접 간접으로 나를 해치게 되는 것이야. 6.25 때 인민군 몰려올 때 그 집 덕을 본 사람이 원한을 품고 사람을 죽이고. 알게 되면 친하게 되고, 친하게 되면 원수가 되는 것이여. 그래서 옛 조사도 원수를 만들고 싶지 않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말아라. 사람을 알고 지내면 정(情)이 들고 친하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 원수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 누구던지 원수처럼 봐야겠다 그런 분은 안계시겠지.

(대중웃음)


인간은 다 정으로 살아간다. 이 정이라 하는 것이 부모자식간의 정, 부부간의 정. 정이라 하는 것이 정이 없을 수가 없지만, 정이라 하는 것이 참 고약한 거요.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면치 못하고, 그런 정 때문에 많은 신세를 망치고 큰 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정이라하는 것은 너무 깊이 관여하고 깊이 관여하다 보면 거기 얽매이기 되는 거에요. 얽매였다 하면 헤어날 수가 없어.


그래서 자식이나 부부를 원수로 볼 필요는 없지만, 죽고 못살고 그러지 말고 반만 덜어서 참선하는데다 정열을 쏟고. 그저 세속적인 정은 담박(淡薄)하게 사는 것이 좋다. 담박하게 살고. 피차 인생은 만나면 헤어지게 돼. 생이별 아니면 사이별하게 되는 것이거든. 그러니 너무 정을 붙일 것이 못돼. 숙세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으니 정법을 믿고 정심으로 담박하게 살아갈지언정, 거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도도 못닦고 결국 육도윤회의 근본 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연으로 만난 것이 남편이고 자식이고 아내야. 업연으로 만났기 때문에 좋은 일보다는 근심걱정 속상한 일 더 많아. 내가 지어서 만났고 내가 지은 업연으로 받게 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고, 대번에 끊을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끊는다고 하면 가정이 파탄나고 큰일나는 것이니까.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해나가면 자연히 모든 것이 다 풀려가는 거에요.


속상한 일이 생겨도 속상한 마음을 함부로 노출시키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하루도 가정이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니, 속상하고 언짢하더라도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스스로 그 마음을 안정해나가면 자연히 다 해결될 것이다. 억지로 참고 또 참는다고 하는 것이 능사가 아녀. 참고 참다가 쌓이고 쌓여서 터질 때는 자기도 감내를 못하고 막 일통을 저지르고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이니까. 참는다기보다는 그 생각을 돌이켜. 숨을 깊이 들어마셔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몇번만 그렇게 하면 그 치밀어 오르던게 스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모든 사람과의 관계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자연히 거기서 스스로 하심(下心)을 하게 되고, 스스로 하심을 하게 되면 만복이 다 돌아오는 거고. 하심을 못하고 그놈을 진심(嗔心)으로 해결하려 하면 백 가지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야.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사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러고 이 세상이 전부 생사의 바다요, 우리의 마음 속도 생사심의 바다 속이여.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그 생사대해인데, 그 생사대해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면 죽는거여.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지 몰라. 정신만 탁 차리면 반드시 살아갈 길이 있는거여.


그래서 저 호숫가에서 버스가 뒤집어져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 중에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이 턱 화두를 들고 차가 뒤집어져가지고 물에 빠진 그 속에서 화두를 들었단말여. 그러니까 환하니 문이 보여 헤쳐나와 보니까, 애기가 물 속에 떠서 허우적하고 있어 그래서 애기를 건지고 두 사람 딱 살아났거든. 지금 그 비구니 스님이 살아있거든. 그래서 용궁에 갔다왔다 해서 별명이 '용궁스님'인데... (대중웃음)


화두를 들면 그런 경우에도 살아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납니다. 왜 그러냐? 호랑이가 12번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말이 있거든, 틀림없거든. 생사 속에서 정념(正念)을 잃지 아니하면 바로 그사람을 대력(大力)보살이라 했어. 정념이라 하는 것이 뭣이냐. 턱 화두를 드는 거여. 지금 우리는 뭣이 정(正)이고 사(邪)고 따질 겨를이 없거든, 화두 하나만 챙겨버리면 사심이 거길 붙지 못해.


그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순일무잡한 타성일편 경지에 들어가면 거기 망념이 붙들 못하니까 무념경지에 들어가서 탁 의단을 타파해버리면 자기 본래면목을 보는 것이 아니냐. 따로 정진을 할려고 마음을 내지 말고 자꾸 화두만 들어. 화두만 들면 저절로 망념은 거길 붙지 못하고 거기에 무슨 삿된 생각이 붙을 것이냐.


아까 조실스님(故전강스님) 법문 가운데 "의리선(義理禪)을 하지 마라. 사량분별로 따지고 하지 마라." 아무 소용이 없어. 1,700 공안을 따져서 자기나름대로 결론을 얻어서 이 공안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 공안을 물으면 저렇게 대답하고, 제법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법담을 척척하고... 어디다 쓰는 것이냐 그 말이여. 아무 소용 없거든.


물론 금생에 어린 나이로 선방에 나오셔서 정말 생명을 바쳐서 하기도 했지만, 어떤 스님은 조실스님 보고 전생공부라고 하신 것을 듣기도 했지만, 하여튼 금생에 여법하게 해놓은 공부는 금생에 설사 깨닫지 못했어도 전혀 헛 것이 아니고 내생에 일찍 툭 터지는 것이여. 여법하게 하는 것 뿐이여.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기다릴 것도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어.


설사 일생동안 참선해서 공안 하나를 대답 못해도 상관이 없어. 여법하게 정진해나가면 반드시 금생에 타파하고,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해도 금생에 숨 거둘 때에도 턱 화두를 들고 의단 하나로써 숨을 거두어보라 말이여. 도솔천 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거나 설사 사람 몸을 받더라도 또 정법 문중을 만나서 내생에는 조실스님처럼 어린 나이에 툭 터저버려.


게으른 사람이 항상 뒤로 미뤄. 지금은 자식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만 여의어 버리면 선방에 가리라, 밤낮 뒤로 미루고 핑계를 대거든. 그것이 게으른 사람이 하는 짓이야. 발심을 철저히 깨닫지 못하고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 것이야. 누구 탓 할 필요 없어.


아직 시집, 장가도 안간 처지라면 출가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 저질렀으면 어쩔 수가 없어. 부처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들도 낳으셨고, 왕이 될 처지에서도 일도양단으로 끊으셨고 그런 모범도 보이시긴 했으나, 내가 만약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라 하면 당장 나한테 빗발치듯 전화가 와서 야단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권고는 안합니다. (대중 웃음)


본인이 발심해서 출가한거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고.... 뒤로 미루지 말라 이겁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 밥 지으면서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시장보러 가면서 이뭣고, 오면서 이뭣고, 누워서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이렇게 해서 생사의 바다 속에서 생각생각 돌이켜 이뭣고를 하면, 그 속에서 한 공부는 정말 생사를 이길 수 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익혀놓은 공부는 좀 어렵지만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되고 정말 힘있는 공부를 하게 될 뿐 아니라, 복과 혜를 겸해서 받게 되고 오후보림(悟後保任) 공부까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것이야.

그러니까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턱턱 챙겨나가라. 그렇게 공부를 해놓으면 금생에 출가를 하던지 선방에 나오시면 문제가 없고, 금생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정말 출가해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나의 모든것을 바칠 수 있는 여건하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 1991년 11월 6일, 첫째 일요법회 >


 

출처-조사선>까페에서

 

지란지교( 芝 蘭 之 交)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 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내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 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 많은 아름답게 지니니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은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은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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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 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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