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란 무엇인가?

2010. 4. 14. 19: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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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연기(緣起)를 빨리어주해1)로 빠띠짜사무빠다(Paiccasamuppāda)라고 하는데, 이는 세 가지 단어의 합성어이다. 빠띠짜(Paicca)는 ‘~로 인하여’, ‘~을 원인으로 하여’이며, 삼(Sam)은 ‘잘(well)’을, 우빠다(Uppāda)는 ‘발생’이란 의미이다. 즉, 원인에 의존하여 결과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이것을 의존적 발생의 법칙(Law of Dependent Origination) 혹은 윤회주해2)의 법칙이라고 한다.


연기법 안에 있는 12개의 연결고리(Link)는 끝없는 윤회의 사슬 속에 하나의 현상에서 또 다른 현상으로 의식체(sentient being)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연기가 무명(無明. Avijjā)주해3)에서부터 시작될지라도 무명이 존재의 시원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회를 거듭하는 존재의 시원은 무명에 가려져 찾을 수가 없다. 연기는 재생의 순환을 가르쳐주며, 원인은 원인이자 한편으로 결과라는 사실, 즉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공의 우주 속에서 원인은 결과가 되고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12개의 연결고리는 다음과 같다.


1. 무명(無明. Avijjā)을 원인으로 하여 행(行. 업의 형성. Sakhāra)주해4)이 일어난다.

2. 행을 원인으로 하여 식(識. 재생연결식. Viññāṇa)이 일어난다.

3. 식을 원인으로 하여 명색(名色. 정신과 물질. Nāmarūpa)이 일어난다.

4. 명색을 원인으로 하여 육입(六入. 六根. 六處. Saḷāyatana)이 일어난다.

5. 육입을 원인으로 하여 촉(觸. 접촉. Phassa)이 일어난다.

6. 촉을 원인으로 하여 수(受. 감각. Vedanā)가 일어난다.

7. 수를 원인으로 하여 갈애(渴愛. 愛. Tahā)가 일어난다.

8. 갈애를 원인으로 하여 집착(執着. 取. Upādāna)이 일어난다.

9. 집착을 원인으로 하여 업의 생성(業의 生成. 業有. Kamma bhava)주해5)이 일어난다.

10.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하여 생(生. 태어남. Jāti)주해6)이 일어난다.

11. 생을 원인으로 하여 노사(老死. Jarāmaraa)가 일어난다.

이로 인하여 슬픔[愁. Soka], 비탄[悲. Parideya], 육체적 괴로움[苦. Dukkha], 정신적 괴로움[憂. Domanassa], 고뇌[惱. Upāyāsa]가 일어난다.


수행자는 12연기를 외워야 한다. 아직 암기하지 못한 이들은 가능한 한 빨리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연기법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예불을 드릴 때 연기를 암송하기도 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만 연기법의 요지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암송하는 것만으로는 사악도에 떨어지는 원인이 되는 모든 종류의 사견(邪見)을 제거할 수 없다.


연기법은 바로 자기 자신, 즉 자신의 온(蘊. Khandha)주해7)으로, 이는 정신과 물질현상이며 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연기는 소위 나라고 불리는 인과적 연속체인 정신과 물질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이다. 달리 말하자면, 끝없이 반복되는 슬픔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실제로 연기는 그 자체로 법(法. dhamma), 즉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순환의 질서이다. 하나의 현상이 사라져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과정의 끝없는 연속이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러한 현상을 연기 또는 연생(緣生. paccasamuppanna)주해8)이라 하며, 그 작용은 어떠한 창조주나 신이라고 할지라도 시작하거나 멈출 수가 없다. 이러한 작용이 연기의 재연결이다. 도과(道果)는 연기의 연결고리를 부술 수 있는 유일한 법이며, 더 이상 재연결이 없을 때 이를 열반(涅槃. Nibbāna)이라 부른다.


이 과정은 오로지 오온인 정신과 물질의 일어나고 사라짐일 뿐이다. 이러한 인과법의 과정에 있어 나, 나의 것, 자신 혹은 자아라고 여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오온, 정신과 물질, 처(處. Āayatana)주해9) 영역, 자리, 6내처, 6외처 혹은 인지작용의 일어남과 사라짐이 있을 뿐이다.


연기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세속적 진리[俗諦. Sammuti sacca]주해10)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 사람, 존재 등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 진리에 있어서는 인간, 사람, 존재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다. 다만 무명과 갈애가 윤회의 시작이라고 하는 법으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연기법은 무명과 갈애가 윤회의 시작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 또는 인습의 시초 혹은 제1원인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2. 연기는 세속의 진리로서 남자, 여자 등으로 알고 있는 소위 지각(知覺)이 있는 존재의 오온이 연속적으로 끝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3. 궁극적 진리[眞諦. Paramattha sacca]주해11)에서는 남자, 여자 혹은 존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실제로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법은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이 존재한다. 이것의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저것이 존재하지 않는다”주해12)는 것을 보여준다.


4. 행(行. 業의 形成)과 식(識. 意識) 그리고 업의 생성(業의 生成. 業有)과 생(生)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5. 연기법에서는 태어남, 늙음, 병듦 그리고 죽음의 끝없는 순환을 보여준다. 즉 열매를 맺고, 열매가 다시 씨앗이 되고, 씨앗이 또 열매를 맺는 동일한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나무와 같이 재생, 병듦, 늙음, 죽음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6.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슬픔과 고통이 연속되는 과정일 뿐임을 보여준다.


7. 이것은 마치 한 무더기의 불과 연료와 같아서 연료가 들어가면 불꽃이 일어난다. 연료가 다시 들어가면 불은 계속하여 타올라 끝없이 지속된다.


8. 성제(聖諦)로 보면 집제(集諦. Samudaya-sacca)와 고제(苦諦. Dukkha-

sacca)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9. 끝없이 반복되는 세 가지의 굴레(Vaṭṭa)주해13)가 있다. 즉, 번뇌의 굴레(Kilesa vaṭṭa), 업의 굴레(Kamma vaṭṭa) 그리고 과보의 굴레(Vipāka vaṭṭa)이다. 번뇌의 굴레로 인하여 업의 굴레가 일어나며 업의 굴레로 인하여 과보의 굴레가 일어난다.


10.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과 공간의 순환적인 질서가 있을 뿐이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가 되며 미래는 다시 현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리하여 윤회의 과정은 끝없이 지속된다.

주해(註解)

<주해 1> 빨리어(Pāli語) : 빨리어는 붓다 시대에 인도 마가다국의 서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알려져 있다. 붓다께서는 빨리어로 전법을 펴셨으며, 제자들에게도 빨리어를 사용할 것을 권하셨다. 그 시대에 귀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는 문자가 있었으나 빨리어는 문자가 없이 구전으로 전해진다. 현재 전해지는 빨리어 경전은 각 국에서 자국어로 기록한 것이다.


<주해 2> 윤회(輪廻. Samsāra) : 윤회는 원인과 결과에 의한 순환․유전(流轉)․생사(生死)․상속․흐름․지속을 뜻한다. 윤회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생의 윤회가 있고 매순간 흐름이 지속되는 윤회가 있다.


<주해 3> 무명(無明. Avijjā) : 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말로 모른다는 것이다. 무명을 조건 짓는 원인은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를 모르는 것이다.

첫째, 사성제의 고(苦)를 모르는 것으로, 괴로움 또는 불만족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둘째, 사성제의 집(集)을 모르는 것으로, 괴로움의 원인이 집착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셋째, 사성제의 멸(滅)을 모르는 것으로, 괴로움의 소멸인 열반을 모르는 것이다.

넷째, 도(道)를 모르는 것으로,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길인 팔정도를 모르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출생 이전의 과거 생을 모르는 것이다.

여섯째, 죽음 이후의 미래 생을 모르는 것이다.

일곱째, 과거와 미래를 같이 모르는 것이다.

여덟째, 12연기의 바른 성품을 모르는 것이다. 12연기를 모르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모르고 원인과 결과로 인한 과보를 모르는 것이다.


<주해 4> (行. Saṅkhāra) : 형성력, 의도, 조건 지어진 행위 등을 통틀어서 사용하는 말이다. 12연기에서 행(行)은 과거에 형성된 업을 말한다.


<주해 5> 업의 생성(業의 生成. Kamma bhava) : 업의 생성은 유(有) 또는 업유(業有), 업을 통한 존재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서는 모곡 사야도께서 만드신 12연기 도표에 준하여 표기하므로 유(有)라고 하지 않고 업의 생성으로 표기한다. 12연기에서 말하는 업의 생성은 현재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루어지는 신구의(身口意) 3업(三業)을 말한다. 그러므로 행(行)은 이미 과거에 형성된 업이고, 업의 생성은 현재 새로 만들어지는 업을 의미한다.

12연기에서 업은 두 가지가 있는데, 행(行)이라고 하는 과거에 형성된 업과 유(有)라고 하는 현재 새로 생성된 업이 있다.

또 유(有. bhava)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새로운 업을 생성하는 유(有. 業有. 業의 生成. Kamma bhava)가 있는데, 이는 앞서 밝힌 것처럼 신구의 3업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기유(起有. 生有. upapattibhava)가 있는데, 태(胎)에 들어가는 순간의 존재이다.

유는 업이 생성되는 과정이고, 기유는 생성된 업으로 인해 태어남의 원인이 되는 오온을 조건 짓는다. 그래서 유는 원인이고, 기유는 결과가 되어 다음 단계의 태어남이 있다.


<주해 6> (生. Jāti) : 태어남을 의미한다. 태어남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일생의 태어남이 있고, 매순간의 마음이나 행위들이 연속되는 태어남이 있다. 한 일생이 시작되는 태어남에는 태(胎)에 들어가는 존재인 기유(起有)가 있고, 다시 이것을 원인으로 한 오온의 태어남[]이 있다.


<주해 7>(蘊. Khandha) : 빨리어 칸다(Khandha)는 무더기, 덩어리, 모임 등을 말하며, 한문으로는 온(蘊), 음(陰)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오온(五蘊)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온은 색(色. Rūpa)․수(受. Vedanā)․상(想. Saññā) ․행(行. Saṅkhārā)․식(識. Viññaṇa)을 말하며 이것들은 다시 하나하나가 무더기로 모여서 무리를 이루기 때문에 온(蘊)이라고 한다.

12연기에서 네 부분으로 나눌 때 과거의 원인으로 인해 현재의 결과가 있는데, 이때 과거는 무명과 행이고 현재의 결과는 차례대로 식․명색․육입․촉․수라는 다섯 가지 결과로 이어진다. 연기법에서는 이때의 다섯 가지를 오온(五蘊)이라고 말한다.


<주해 8> 연생(緣生. Paticcasamuppanna) : 연기(緣起)는 원인이 되는 법이고, 연생(緣生)은 원인에 의해 발생된 결과의 법이다. 무명은 행의 연기이며 행은 무명에 의해 발생된 연생이다. 행은 식의 연기이며 식은 행에 의해 발생된 연생이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의 법을 연기와 연생이라고 한다.


<주해 9>(處. Āyatana) : 빨리어 아야따나(Āyatana)는 영역, 자리, 처(處), 또는 입처(入處)라고도 한다. 사람은 정신과 물질이란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다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육처(六處), 육근(六根), 육입(六入)이라고 다양하게 부른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 또는 감각영역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를 말한다.


<주해 10> 세속적 진리[俗諦. Sammuti Sacca] : 진리를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세속적 진리와 궁극적 진리로 구별한다. 세속적 진리를 빨리어로 빤냐띠(Paññatti. 개념)라고 말한다. 빤냐띠는 개념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표명(表名), 명칭, 서술, 가정 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의 방편적 설정이라는 뜻으로 시설(施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속제는 인간, 사람, 남자, 여자 등등의 개념적 명칭으로 사마타 수행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자면 인간이란 표현은 몸과 마음의 실재하는 현상을 부르기 위한 명칭으로 관념적 진리라고 한다.


<주해 11> 궁극적 진리[眞諦. Paramattha Sacca] : 명칭, 개념이 아닌 실재하는 진리를 말한다. 궁극적 진리를 빠라마타 담마(Paramattha Dhamma)라고 하는데 최승의법(最勝義法), 최상의법(最上義法), 최고의 의미를 가진 법을 말한다. 궁극적 진리는 마음․마음의 작용․물질․열반이라고 하는 네 가지가 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의 손은 명칭으로 모양, 개념으로 세속적 진리라 불리며 손의 따뜻함, 축축함, 무거움, 진동 등등 실재하는 현상과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궁극적 진리라고 불린다. 궁극적 진리는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이 된다.


<주해 12>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12연기는 이상과 같은 순관이 있고, 역으로 보는 역관이 있다.


<주해 13> 굴레(循環. Vaṭṭa) : 굴레를 빨리어로 와따(Vaṭṭa)라고 하는데 순환하는 일주의, 원, 전개, 윤회 또는 상속법(相續法)을 말한다.






Another world on the Korea     Photographed by Rim Dae Sik
 
 
 
   
 
실크로드(11).....








































실크가 있는 상점을 들어갔다



























우루무치 바자르(자유시장)에서... 


여행을 하면서
많이 부딪치고 많이 보고 느끼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