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을 때 연기의 윤회는 계속된다

2010. 4. 25. 21: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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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을 때 연기의 윤회는 계속된다


연기는 계속 돌고 있다. 잠자는 시간(잠재의식주해1)이 지배적인)을 제외하고는 좋거나 싫은 대상을 대함에 있어, 때로는 탐욕[]으로, 때로는 성냄[]으로, 때로는 어리석음[]으로 함께 연기는 돌고 있다.


연기가 이들 탐욕성냄어리석음과 함께 회전할 때 불선심(不善心)이 일어나고, 이를 일러 ‘공덕이 되지 않는 행[非福德行]주해2)의 상태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 아내 또는 소유물이나 즐거운 일과 함께할 때, 연기는 탐욕과 함께 회전한다.


때로는 이와 반대로 사업의 실패나 자녀의 반항에 접할 때는 성냄과 함께 연기가 회전한다.


무의식적으로나 알지 못한 채 잘못된 행위를 한 경우는 어리석음과 함께 연기가 회전한다.


선한 행[善行] 혹은 공덕을 짓는 행[德行]주해3)은 다음과 같다. 내생에서 보다 나은 곳에 태어나고자 하는 염원으로 공덕을 짓는 행을 했을 경우에는 윤회를 계속하게 하는 선한 행위라고 한다. 고제(苦諦)의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한 선한 행위는 공덕을 짓는 행이다.


빨리어 경전인 ������상윳따니까야(Saṁyutta-Nikāya)������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지혜가 없고 무명이 가득한 이는

‘공덕을 짓는 행’과 ‘공덕이 없는 행’을 하고,

높은 경지인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고자 ‘부동행(不動行)주해4)을 행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이 물러가고 지혜가 밝았다.

무명에서 해방되어 지혜가 밝은 자는 다시는 공덕을 짓는 행을 하지 않는다.”

이렇듯 위의 경전 구절에 따라 무명을 멀리하고 무명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자가 바로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공덕을 짓는 행을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공덕을 짓더라도 이는 어떤 부수적인 결과가 따르지 않는 단순한 행위[kiriya]1)일 뿐이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의 경우에는 보시(普施)와 지계(持戒)를 더욱 많이 쌓아야만 한다.주해5) 범부의 경우에는 물론 보시와 지계를 더욱더 많이 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보시와 갈애, 그리고 보시와 사견이 뒤섞이지 않아야 하고 무명에 지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시가 선(善)한 행위인지 선하지 않은[不善] 행위인지를 묻는다면, 보시는 선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보시를 하려는 의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선한 행위이다. 그러나 내생에 보다 나은 곳에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 것은 갈애이므로 선하지 않다. 이것은 선과 불선이 뒤섞인 것이다.

다음 생에 이익을 얻고자 보시를 행한다면 그 행동은 선하지 못한 사견에 지배되고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보시를 행할 때는 갈애와 사견에 흔들리지 말고, 무명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적합한 보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지혜가 부족하거나, 바른 결과로서의 이익을 선택할 능력이 없이 보시를 한다면, 이는 윤회로 이끄는 보시이며 덕을 짓는 행이다. 이는 결국 윤회의 순환 과정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윤회의 과정이 연장되는 것은 보시 때문이 아니라 보시가 행해질 때 가져야 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른 보시는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는 보시이다.

주해(註解)

<주해 1> 잠재의식(Bhavaṅga Citta) : 잠재의식은 존재의 조건을 형성하는 의식을 말하며 유분심(有分心), 존재 지속심이라고도 한다. 잠재의식을 빨리어로는 바왕가찌따(Bhavaṅga Citta)라고 한다. 바왕가(bhavahga)는 생성의 요소, 존재의 기능을 말하는데, 존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일생에 한 번뿐인 죽을 때의 마지막 마음인 사몰심(死沒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즉시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이때 재생연결식도 일생에 한번 일어났다가 사라진 뒤에 다음 마음인 잠재의식[有分心]이 지속된다. 그 뒤 잠재의식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개인의 연속성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제외하고 잠재의식은 매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며 주로 잠을 잘 때 꿈을 꾸지 않는 상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잠재의식이 한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질 때 빠르게 열일곱 가지의 마음을 형성한다. 인식은 잠재의식과 잠재의식 사이에 일어난다. 그 인식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지나간 잠재의식(bhavaṅga)

(2) 잠재의식의 동요

(3) 잠재의식의 끊어짐

(4) 오문전향(五門轉向)

(5) 오식

(6) 받아들임

(7) 조사

(8) 결정

(9) 속행(速行)

(10) 속행

(11) 속행

(12) 속행

(13) 속행

(14) 속행

(15) 속행

(16) 등록

(17) 등록


<주해 2> 공덕이 되지 않는 행[非德行. Apuññābhisaṅkhāra] : 공덕이 되지 않는 행은 탐진치를 가진 자가 하는 행위를 말하며, 죽으면 그 과보로 사악도인 지옥․축생․아귀․아수라에 태어난다.


<주해 3> 공덕이 되는 행[福行. 德行. Puññābhisaṅkhāra] : 선한 업을 짓는 것을 말한다. 공덕이 되는 행에는 욕계 공덕행과 색계 공덕행과 부동행이 있다. 욕계 공덕행을 지으면 죽어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욕계 천상에 태어난다. 색계 공덕행을 지으면 천상의 색계천에 태어난다.


<주해 4> 부동행(不動行. Ānañjābhisaṅkhāra) : 안정되고 움직이지 않는 행을 말한다. 사마타 수행을 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근본삼매에 이른다. 이와 같이 사마타 수행의 움직임이 없는 선정 수행을 하면 무색계에 태어나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해 5> 보시와 지계를 많이 쌓아야만 한다 : 수행자가 도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하는 것과 함께 반드시 보시를 해야 하고 계율을 지켜야 한다. 선(善)하다고 하는 것은 관용과 지계와 수행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것을 말한다.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용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베푸는 보시가 뒤따르는 관용이 되어야 한다. 보시에는 재물을 보시하는 것과 법을 설하는 법보시가 있다.

둘째, 비구는 227계를 지켜야 하고, 일반 수행자들은 5계 내지 8계를 지켜야 한다.

  (1)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2) 주지 않는 물건을 갖지 않는다.

  (3) 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4)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5)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6) 정오 이후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

  (7) 춤추고 노래하며 향수,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지 않는다.

  (8) 사치스러운 침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수행은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이상 관용과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은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기본이다. 만약 수행의 발전이 없다면 더 많은 보시를 행하고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행은 일정 수준까지 노력으로 될 수 있으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선한 과보가 뒤따르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시가 선한 것이라고 해도 공덕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면 완전한 선이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