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 20:0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기도 염불 좌선하라 慧命을 구족하리니 / 종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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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범부(凡夫)와 보살(菩薩)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범부라 함은 깨치지 못한 중생을 말하는 것이고 보살이라 함은 깨치고 살아가는 중생을 뜻합니다.
범부는 욕구,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곧 중생의 삶을 말하는데, 항상 불만을 갖고 있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급급한 삶을 사는 이를 말합니다. 범부의 삶은 옷 입고, 밥 먹고, 물 마시고, 호흡하는 것을 끊임없이 연속해 가는 욕구적인 삶입니다. 따라서 그 생명을 연장시키고 보호하기 위해 범부는 끊임없이 재물과 권력, 명예를 탐하게 됩니다. 인간이 구하고자 하는 것을 구분해보아도 이 세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도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나를 어떻게 해 달라, 내가 어디로 가느냐’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들은 모두 마지막까지도 ‘구하는 욕구’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들입니다. 따라서 중생은 생명하나 유지하기 위해 온갖 것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범부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본래, 원성실성(圓成實性)입니다. 원만하게 이루어졌고. 참되게 이루어졌는데 범부는 이것을 원성으로 안보고 죽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영원한 것이 아닌데 영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중에 생명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모두 생명이 있다고 해도 다 같은 생명은 아닙니다. 범부의 생명과 보살의 생명은 같은 생명이라 해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요.
생명이란 본래 취산(聚散)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생겼다가 흩어지는 것,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이슬이 맺혔다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생명은 본래부터 삶과 죽음을 초월한 존재이며 이것을 확실히 알고 나면 공포감이 전혀 없는 무유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곧 구하면 머슴이 되고 드러내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못에 가서 달을 봤는데 지혜가 없는 범부는 달이 연못 속에 있는 줄 알고 그 달을 탐합니다. 그리고 달을 건지기 위해 연못으로 ‘풍덩’ 빠져버리지요. 그런데 달은 연못 속에 없습니다. 그런데 범부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끝없는 욕구.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살의 삶은 무엇을 추구하는 삶일까요. 보살의 삶은 자기 영혼을 그대로 실현시키는 삶입니다. 어디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 자기 힘을 그대로 나타내고 실천하는 삶이 바로 보살의 삶입니다.
영혼을 불성이라고도 하고. 또 마음이라고도 하는데, 불성의 길이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불도입니다. 불도(佛道).
따라서 보살은 불도로 살아갑니다. 불(佛)이 무엇입니까. 깨우침입니다.
깨우침의 길로 살아가려면 우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지혜가 나타나면 자비, 그것이 나타나면 원력(願力)이 되는 것입니다.
자비는 두려움 없는 능력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비가 안 나올까요 ? 그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 없이 자기 영혼의 힘, 그 영혼의 능력을 자꾸 드러내면 그게 자비가 되는 것입니다. 원력은 그 자비를 끊임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력입니다.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범부의 삶과 보살의 삶은 다릅니다. 그렇지만 뒤집어보면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왜 종이 한 장 차이냐. 답은 지혜에 있습니다. 지혜를 얻으면 됩니다. 또 지혜를 얻는 과정이 곧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얻기 위한 과정, 실체를 바로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꾸자꾸, 하루하루 만들어 가면 됩니다. 지혜를 만들어가는 길,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 길에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기도가 점점 깊어지고 안정되면 생명이 활발해지고 기도가 얕아지고 불안정하면 삶이 거기서 그치는 것입니다.
보살은 욕구의 삶이 아니라 영혼의 힘을 그대로 드러내는 삶, 실현의 삶입니다. 구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삶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밀(波羅蜜)이라고 말합니다. 바라밀은 ‘이룬다, 된다’ 라는 뜻이며 근본이 지혜바라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입니다. 이러한 반야반야밀은 자비원력으로 끊임없이 드러낼 때 거기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그게 잘 안됩니다. 그 이유는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혜를 키우는 훈련을 반복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면 탁한 기운이 몸속에서 돌아 눈과 귀를 막고 자신을 나쁘게 변화시킬 것이며 좌선을 많이 하고, 경(經)도 많이 읽고, 기도도 하고, 보시도 많이 하면 내 몸에 있는 두려움 없는 좋은 힘이 선행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 중요하며 마음의 안정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경과 기도, 좌선이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하면 저절로 지혜가 깊어지고 감정이 안정돼 보살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부모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혜명(慧命)을 주셨습니다. 보살의 삶은 생명에 의해 사는 게 아니라 혜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혜명은 지혜의 세계를 말합니다. 곧 생명의 실체를 바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범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보살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혜명을 얻기 위해 정진합시다.
- 법보신문 -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 정호승
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정류장에 머물고 있는
나그네 입니다.
우리는 그 나그네길을 가면서
견딜 수 없는 수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와 절망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와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습니다.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이
다정히 건네주는 차 한 잔을 들고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 세상 여기저기 조약돌처럼 흩어져 있는,
그러나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작은 사랑 이야기들이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길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다이아몬드도 어둠 속에 두면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다이아몬드는 빛을 비춰주지 않으면
그 광채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를 위하여 내가 무엇이 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썰물과 밀물이 한 몸이듯이, 실과 구슬이
한 몸이듯이, 그늘과 햇빛이 한 몸이듯이,
나는 바로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을 위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아니, 이미 무엇이 되어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이 바다가 되므로,
나는 이미 당신을 위하여 바다가 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사랑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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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 5월의 첫날입니다.
가족간의 사랑이 나의 행복과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룹니다.
변덕스런 날씨에 몸관리 잘하시길 빌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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