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관상 바꾸는 법/혜인스님

2010. 5. 6. 19: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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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마음의 종교 / 혜인 스님 (단양 광덕사 회주)

 

불교는 마음을 믿는 종교요, 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보는 종교요, 마음을 깨닫는 종교요,

마음을 장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종교다.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며, 관상이 바뀌면 운명과 팔자도 바뀐다.

 

상호 좋아지는 방법

1)남 기분 나쁜 말/행동 하지 말 것.

2)원력을 세울 것.

 

중국 배유정승의 이야기

보조국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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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페에서> 심상이 변하면 관상도 변해


점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점에 또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에 배유라고 하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습니다. 송대의 탁월한 재상이었는데 배유는 두 형제가 한 몸의 기형아로 나온 인물이었습니다. 형은 배유고 동생은 배탁이에요. 그런데 몸이 붙어서 태어나 절개를 하여 기형아를 떼어내서 하나는 형이고 하나는 동생이 되었습니다. 불교 공부를 해 보신 분들은 배유라는 인물이 얼마나 탁월했던 인물인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승이 배유 집을 지나가다 한 끼 밥을 얻어먹고 배유 아버지에게 “이 녀석은 집안을 망칠 놈이니 내보내세요.” 라는 거 에요.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힌 겁니다. 그 도승의 말이 하나도 빗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안 되겠다 생각하고 아들을 쫓아 내버렸습니다. 집을 쫓겨 나와 한도 끝도 없이 돌아다니다 어느 날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 마시고 있는데 우물가에 아주 아름답게 만든 고귀한 옥 띠 하나가 떨어져 있는 거에요. 주위에 아무도 없고 이걸 어쩔까 하다가 그 옥 띠 주인을 기다리면서 우물가에서 삼일 밤낮을 꼬박 새웠습니다. 삼일쯤 뒤에 어떤 할머니가 무엇인가 막 찾는 거 에요. “할머니 이것입니까?” 하고 내보이며 사연을 들어 보니 아들이 감방에 갇혀서 이 옥 띠를 뇌물로 바치고 아들을 살려내려고 했는데 급히 물을 마시고 가는 바람에 떨어뜨리고 간 거 에요. 그 후 세월이 흘러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배유가 집이 그리워 집을 찾아갔더니 아직까지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 며칠만 유숙했다 떠나겠다며 집안일을 거두고 있었는데 옛날의 그 도승이 또 지나가는 거에요. 그리고 또 밥을 한 끼 얻어먹고 가면서 "허 그 녀석 정승 상인데" 라는 거에요. 그 아버지가 기가 막혔지요. 옛날에는 집안을 망칠 상이라고 하여 쫓아내게 하더니 집에 돌아 온지 며칠 안 되는데 정승 상이라는 거 에요.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심판입니까, 스님." 그랬더니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이 녀석한테 물어 보게." 라는 겁니다. 그 후에 배유는 관직에 나가서 욱일승천의 세로 금방 판서가 되고 정승이 되어 명재상이 됐습니다. 여러분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심상이 변하면 관상도 변한다는 겁니다. 점쟁이들은 어느 한 시점에 딱 고정 점을 두는 거거든요. 올바르지 않습니다. 역시 모든 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겁니다. 점을 너무 믿지 마세요.


<능인선원 카페에서> ▶삼정승을 할까 뱃사공을 할까?


중국 당나라 시대 인품과 학문, 행정능력을 두루 겸비한 宰相 배휴裴休791-870라는 사람이 있었다. 유학자로서도 훌륭한 인물이었으나 후일 禪宗에 귀의하여 고승들과의 숱한 일화들을 남겼다. 배휴에게는 자기와 똑같이 등에 커다란 반점을 갖고 태어난 동생 하나가 있었는데 배휴는 그 지위가 한나라의 정승에 이르렀으나 어릴 때 잃어버린 유일한 피붙이 동생을 생각하며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전국토를 수소문하며 찾아 헤매기도 하였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형이 이렇게 정승노릇을 하고 있으니 좀 도와주면서 함께 살고 싶어 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배휴가 어느 날 나랏일로 황하를 건너게 되었다. 때마침 무더운 여름이라 뱃사공이 웃옷을 벗어부치고 노를 젓는데 아-! 사공의 등에 커다란 반점.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자기 동생이 아닌가 「네가 배탁裴卓이 아니냐?」고 물었다.「예, 그렇습니다. 제가 배탁입니다」. 배휴는 꿈에도 못 잊어했던 혈육을 만난 것이다. 「이제야 널 찾았구나 내가 너 형이다」. 형은 감격했다. 그런데 뱃사공은 「예, 형님! 저는 벌써부터 형님뿐만 아니라 형님이 이 나라 재상 이 된 것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하는 말에 형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정하게도 어찌하여 여태껏 이 형을 찾아오지 않았느냐?」. 「전들 왜 형님을 뵙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형님! 제가 배운 것이라고는 노젓는 일인데 형님을 찾아가면 할 일 없이 저를 놀고 먹여줄 터이니 사람이 그 짓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형님은 전생에 많은 복을 지어 이승에서 대륙 땅의 정승이 되었고 저는 제 분수가 따로 있어 사공이 되었는데 형님 덕을 나누어 얻어먹으며 살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나룻배 하나로 오가는 사람들의 물길을 건네주면서 복도 짓고 제 처지를 따라 떠가는 구름 흘러가는 물길 산천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배휴는 감격했다. 「반듯하게 살아왔구나 고맙다. 일국의 재상인 나보다 네가 낫구나」. 일생 학문을 닦으며 살아온 형보다 뱃사공 동생이 한 수 위였다. 뱃사공이 생각하는 삼정승三政承 지위는 그들의 가치요. 자기 삶의 가치는 뱃사공이라는 것이다. 참 의미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삶의 가치는 평가받는 것이 아니오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라 했던가.


이 땅 근세 선종의 큰 맥을 이루었던 대선사 경봉鏡峰스님 법문에서 배유 형제의 일화를 들어「배휴도 전생에 많은 수행을 쌓은 사람이나 그 동생 배탁이도 세상의 영욕을 초월해서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아는 참으로 고매한 인물이니 세상사는 멋을 아는 사람이다. 정말 한 고비 넘긴 인품이라」고 논평했다. 세상사를 보면 기생충처럼 빌 붙어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생충은 뼈가 없다 그리하여 기생하여 사는 사람을 무골충이라 했고 훌륭한 집안을 뼈대 있는 가문이라 했던가. 동·식물들의 세계에도 기생과 공생과 독살림의 세계가 있으니 하물며 인간세상이겠는가. 기생공생은 일반사이니 논할 일 아니요 배탁이라는 사공이 독야청청한 독獨 살림을 고고히 살고 있다고는 하나 그 역시 숨 쉬는 일을 비롯하여 자연에 의지 하는 것마저 마다하면서 살아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주의 모든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상의상관성이 법칙으로 실존하며 인연을 따라 무상변이하며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세상만사 인연이더라」.  인간사는 인연에 맡겨 두고 무심히 노를 젓는 뱃사공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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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천배씩 이백일 동안 백만배를(혜인스님)■

기도와 가피력이란 무엇인가?
기도는 절 하면 참회기도라 하고 관음보살을 부르면 관음기도, 지장보살을 부르면 지장기도 입니다.
또는 성현의 명호나 경을 쓰면 사경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 무념무상의 상태로 계속 정진하다 보면 탁한 물이 고요해져 삼라만상이 비춰지듯 기도로 인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관되게 계속해야 힘이 생기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피력을 얻게 됩니다.

가피력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몽중가피는 꿈 가운데 어떠한 선몽을 얻는 것이고,
명훈가피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점점 되어가는 것입니다. 
현증가피는 갑작스런 통찰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것으로 저도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습니다.
저는 전생에 술을 많이 마셨나 봅니다. 그 과보로 어려서 학교다닐 때 항상 30등 미만이었습니다.

절에 들어와서도 다른 도반하고 차이가 있었습니다. 천수경을 외워야 하는데 외워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도량송을 하다가도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면 끝이 안 나와요. 비슷한 말이 많다 보니 끝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공이 들어오면 먼저 신도에게 천수경을 할 줄 아냐고 물었습니다.
천수경을 모르는 보살들 앞에서는 경을 서로 모르니 요령껏 불공을 했지만 경을 외우는 보살들은 겁이 난 것이지요.
그래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천수경에보면 …
만월보살 마하살
수월보살 마하살
군다리보살마하살… 이란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보살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
목탁보살 마하살 요령보살마하살….했습니다.
그런데도 보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별탈 없이 불공을 잘했습니다.

제주도 양진사 주지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양진선원을 건립하고 주지로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피력을 얻지 못해 사람 다섯 명만 모여도 가슴이 달달 떨리고 얼굴이 발개져 버리고 앞이 탁막혀 말을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낙성식이 두달 정도 남았는데 인사말은 한 마디 해야 하겠고 걱정이었습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하겠다 하고 문자 하나를 찾아 외운 것이 원근각처였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오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이지요.
이말을 중심으로 말을 풀어야겠다 하고서 낙성식 날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낙성식이 시작되고 사람들 앞에 서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앞이 탁 막혀버려요.
가슴은 떨리는 중에 다행히 미리 외웠던 원근각처라는 말은 생각이 났습니다.

원근각처에서 많이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근각처에서….,
원근각처에서….
법회가 끝나고 어느 비구니스님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원근각처를 8번 했다며 그말밖에는 할 말이 그렇게도 없었냐며 웃었습니다.

이렇게 사람 다섯 사람만 있어도 떨었던 이가 여기에 있는 혜인스님이었습니다.
또한 복이 없고 덕이 없어 출가한지 15년이 되어도 양말 하나 러닝셔츠 하나 사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구에서 해인사를 가는데 차비가 없어 많은 괄세도 받았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원주에서 강릉 보현사를 가는데 차비가 53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130원 밖에 없어 안내양에게 사정을 말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운전기사가 130원 거리만큼만 태워주고 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내려 인근의 비구니스님 절에가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듯 초파일 연등 만드는 비구니 스님 앞에서 초발심 자경문을 외우고 차비를 얻어 보현사를 갔습니다.

해인사 강원에 있을 때도 남들은 신도들이나 도반들이 책을 사주는데 저는 복이 없어 책 한권 사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먼저 출가한 누이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 다른 비구니 스님이 쓰던 책으로 강원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머리가 우둔하고 잠이 많고 가슴이 떨리고 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관세음보살 주력염불을 하고 해인사 장경각에서 부처님전에 하루 5천배씩 이백일 동안 백만배를 하니 구름이 걷히니 달빛이 환하게 비추고 거울의 먼지를 닦으니 환한 모습이 보이듯이 자신이 환하게 보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후로 지금은 수만 명을 앞에 두고 법문을 해도 떨리는 것이 없고 마음 먹었다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하겠다고 마음 먹어서 안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주도 약천사 대웅전을 짓는데 돈이 백억원 이상이 들어갔습니다. 공부하는 승려가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한 후 마음 먹는대로 일이 되기에 부처님 집을 최고로 지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제주도 중문단지에는 동양 최대의 대웅전이 웅장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무사히 불사를 회향한 것입니다. 또한 백만배 절을 했으니 백만이란 숫자와 인연이 있어 백만 평의 땅에 부처님 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충북단양에 철쭉 백만 그루를 심고 있습니다. 현재 80만평을 이루었습니다.

사주와 관상이 나쁘더라도 운명적으로 이렇게밖에 살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상학적 이야기입니다.
길이 아니라도 불도저가 지나가면 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불교는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운명과 팔자는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는 종교요,
마음을 보는 종교요,
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깨달는 종교요,
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한마음이 청정하면 일신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중생이 모두 청정해집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고 관상이 바뀌면 내 운명과 팔자가 바뀝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저는 오늘의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소나무를 의지해 칡넝굴이 소나무를 타고 끝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잔디밭에 깔린 풀은 석자도 올라가지 못합니다.

부처님과 부처님말씀 그리고 가피력에 의지하면 얼마든지 행운과 훌륭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회고해 보면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그리고 남 법문하던 것을 부러워하던 시절,  나도 언젠가는 내생에 가서라도 저런 사람이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기도를 하고 나니 내생까지 갈 것도 없더군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오늘의 법회를 계기로 해서 기도 정진하는데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세음 보살기도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보면

「무진의 보살은 잘 들어라.
관세음 보살을 부르는 자는
물에 들어가도 빠져죽지 않을 것이며,
불에 들어가도 타죽지 않을 것이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악한자에게 밀려
낭떨어지에 떨어 진다해도 다치지 않으리라.
죄가 있거나 없거나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살이를 해도 관세음 보살을 부르는 사람은 해탈을 얻으리라.
악한짐승 나쁜 귀신들이 혹은 태풍에 밀려도 결코 거기서 다치지 않고 살아가리라.

아들을 원하는 자여 관세음 보살을 부르라 귀한 아들을 얻으리라.
딸을 구하는 자여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 보살을 부르라
생각생각에 마음을 항상 관세음 보살에게 두어라.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관세음보살은 그대의 음성 속에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서른두 가지 몸을 나퉈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중생의 고통을 나누고 가지가지 방법으로 의사가 천만가지 약이 있어도 명의가 환자의 아픔아픔을 알아서 치료하듯이 관세음보살은 큰 의사이니 중생의 고통과 모든 근심걱정을 다 해결해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관세음보살 가피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습니다.
일제 때 청일전쟁 당시 만해 한용운스님이 서울 작은 토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학도병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끌려갔었습니다.
어느 보살이 삼대독자인 아들을 전쟁터에 보냈놓고 걱정을 하니 주위에서 만해 큰스님을 찾아보라하여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만해스님은 생각생각 언제든지 관세음보살을 찾으라 했습니다.
좋은일이 있거나 나쁜일이 있거나 자나깨나 관세음보살을 찾으라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아들에게도 편지에 관세음보살을 염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들이 죽었다고 부고가 오고 유골이 왔습니다.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보살은 낙심하여 관세음보살이고 부처님이고 필요없구나 했습니다.
49제를 지내고 자기 팔자를 생각하며 실컷 울고 자기도 죽으리라 식음을 전폐했는데 갑자기 밖에서 어머니 어머니 하며 아들의 목소리가 났습니다.

보살은 귀를 의심하고 혹 귀신이 온 것 아닌가 하며 문을 여니 군복 입은 아들이 서있었습니다.
아니 귀신도 꼭 사람과 같네 하며 나가 보니 귀신이 아닌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중국에 왔었지요 하며 묻는데 사연을 듣고 보니 이러했습니다.
중국으로 끌려가 총알이 콩복듯 하는 중에 하루는 보초를 서는데 산너머에서 재명아 재명아하면서 어머니가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목숨 중국까지 찾아온 어머니나 만나고 죽자라며 개울밑으로 도망쳐 어머니에게 가는데 어머니 목소리는 계속 멀어져 갔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못찾고 날이 새 다시 부대로 돌아와 보니 전우가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전사했습니다. 그래 혼자서 49일간을 걸어서 돌아온 것입니다.

보살과 아들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아났음을 알고 감사의 뜻으로 살던 집을 관음암으로 바꾸어 평생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관세음 보살을 부르던지 지장보살을 염하든지 지극정성을 보이면 이렇듯 가피력은 반드시 옵니다.

한국불교가 제대로 되려면 옛날 신라 고려 이조 때처럼 나무아미타불 실체를 바로 알고 바로 찾고 바로 불러야만이 한국불교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참선을 18살부터 했지만 참선은 불교의 골수요 뿌리요 핵심이기에 참선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참선은 불교의 육바라밀 가운데 하나인 선정입니다. 음식이 아무리 좋아도 밥만 먹을 수 없고 반찬만 먹을 수 없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대들보가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흙도 있어야 하고 못도 있어야 하고 모두 필요합니다.
결코 불교에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참선에만 집착하고 염불을 등한시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