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자가 없다/현정선원

2010. 5. 4. 20:5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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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자가 없다/현정선원

 < 질문 >

 법정님 말씀을 듣다보면 알음알이가· · · · · ·



< 답변 >

 내 말을 들었다고 말하지 마시오. 모든 빛깔과 소리는 빈 거요. 모든 작용은 인연
으로 말미암을 뿐 주재자가 없소. 말을 하는 자가 말을 하고, 말을 듣는 자가 말을
듣는다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거요. 여기 앉은 노인이 말을 하고, 그 말하는 바를
거기에 앉은 사람이 들어서 그 말한 바 내용을 따지고 분석해서 알아듣고 있다면,
그건 전혀 법문들을 줄도 모르는 거요. 능·소(能所), 주체와 객체는 전부 인간이 머리
속으로 만들어낸 환상이오.

 물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물결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인연에 감응해서 물결칠
뿐이니, 그 스스로는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는 거요.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기 때문에
그저 순히 인연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니, 따라서 그렇게 인연 따라 출렁이는 물결은
전부 빈 것으로 보라 소리요.· · · · · ·

 

부처는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라고 했소. 부처도 그렇거늘 하물며 육신을 뒤집어쓰고

있는 범부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 참으로 말을 하는 자도 없고, 말을 듣는 자도 없는 거요.
 이 법은 본래 말이 없소. 하지만 말을 안 하고 처닫고 있으면 도무지 소통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방편으로 말을 하는 거요. 말이 전부 비었다는 사실도
말을 통하지 않으면 전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어서 말하는 거라 소리요.

 

그런데 '말이 전부 비었으니 집착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그 말을 알아듣고 전부 그 말을
외워서 머리에 이고 다니니, 그쯤 되면 스승은 전혀 헛고생 한 거 아니겠소?· · · · · ·
말이 전부 빈 거라는 사실을 참으로 알아듣는다면, 말을 하건 말을 안 하건, 또 그 말이
옳건 그르건 무슨 상관이 있겠소?· · · · · · 이 말을 또 알아들을까 걱정이오.

 

 

< 질문 >

 이 몸이 '나'라는 생각에서 전혀 벗어날 수가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 답변 >

 그동안 온갖 비유와 심지어 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된 사실까지 들어가며,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토록 드러내 보였으면, 그래서 부처님 말씀이 참으로 진실임을
알았으면 그 다음은 각자의 몫이오.· · · · · · 그래도 그냥 지금껏 해온 대로 그럭저럭
그 속에서 살겠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 · · · ·

그래서 장부(丈夫)의 기상(氣像)을 말하는 거요. 한 평생을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오인해서 속아 살아오다가,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 성인들이 그렇게 갈파하셨던

진실이 무언가를 알았다면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일이 있겠소?

숱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깨닫는 것이라면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쉽고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건 전혀 그런 것이 아니오.

마디만 참으로 알아들으면 앉은 그 자리에서 다리 쭉 뻗고 두 손 훌훌 터는 거요.

 '있다'고 하면 있는 줄만 알고, '없다'고 하면 없는 줄만 아는, 계속 그런 존재론적인
있고, 없음으로만 알아듣기 때문에 늘 같은 자리에서 맴만 돌고 있는 거요.

이 세상에는 존재론적으로 이렇다고 혹은 이렇지 않다고 지칭할 만한 그런 실체가 없소.

안과 밖,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통틀어 하나요. 관찰자가 관찰대상을 본다는 생각

자체가 전혀 잘못된 거라 소리요.
 온통 통틀어 '나' 하나뿐이니, 지금 질문이 나온 그곳에는 '나'도 없고 '너'도 다 없소.

없다는 것도 없소. 그런데 한 생각 퍼뜩 났다하면 요런 몸뚱아리를 '나'라고
짓고, '나'와 '너'를 나누고 이것과 저것을 가르면서 천태만상을 짓는 거요.

하지만 그 한 생각으로 그려낸, 실재처럼 보이는 모든 천태만상이 몽땅 그 신령한

성품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그 다음은 어떻겠소?· · · · · ·

'그렇다면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면 여전히 그 자리요.

 

 

- 현정선원에서 발췌한 법정님의 질의 답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