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화상 2

2010. 5. 16. 18: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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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石頭) 화상-3


선사는 곧 남악의 회양 화상에게 가서 편지도 전달하기 전에 먼저 절을 하고 물었다.
"성현들을 흠모하지도 않고 자기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을 때가 어떠합니까?"
회양 화상이 대답했다.
"그대의 물음이 매우 도도하구나. 나중에 사람들을 천제(闡提)로 만들겠도다."
"차라리 영원토록 지옥에 빠질지언정 성현들에게 벗어나기를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선사가 인연도 맺지 않고, 서신도 전하지 않은 채,

바로 스승의 처소로 돌아오니, 화상이 물었다.
"그쪽에서 전하는 편지가 있던가?"
"그쪽에서 아무런 전갈도 없었습니다."
"회답은 있었는가?"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글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물었다.
"제가 떠날 때에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빨리 와서 평상 밑의 큰 도끼를 가지라'

하셨는데, 지금 왔으니 큰 도끼를 주십시오."

화상이 양구(良久)하니 선사가 절을 하고 물러갔다. 이러한 깊은 뜻을 어찌

하열(下劣)한 근기들이 감당할 바이겠는가. 이는 부처님과 부처님들이

마음의 등불을 밝히시던 것이며, 조사와 조사가 비밀하게 전하던 법인(法印)이다.

선사가 이미 계합되어 오랫동안 화상의 장실(丈室)을 모시다가 떠나기에 임하여

세상 밖의 진리를 이어받으니, 장한 일을 다 갖추어 도를 펼 만하게 되었다.
이에 화상이 말하였다.
"나의 법문은 옛 성인들이 차례차례 전하고 받으시던 바이니, 그대는 끊이지 않게 하라.

 조사께서 그대에게 미리 수기(授記)하셨으니 그대는 잘 보존해 가지라. 잘 가거라."

오래지 않아 행사 화상이 입적하니 선사가 초상을 다 치르고, 천보(天寶) 초엽에

이르러서야 형악(衡岳)으로 가서 골짜기들을 두루 살피다가 남대사(南臺寺) 동쪽에

대(臺) 같은 반석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위에 암자를 짓고 머무니, 사람들이 석두 화상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 석대(石臺)는 양(梁)의 해(海) 선사가 도를 얻은 곳이었다.

선사가 처음으로 이 남대에 왔을 때 남대사(南臺寺)의 스님이 새로
온 선사를 발견하고 회양에게 가서 말했다.
"엊그제 화상께 건방지게 불법을 묻던 후생이 와서 동쪽 돌 위에 앉았습니다."
이에 회양이 되물었다.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회양이 곧 시자를 불러 말했다.
"너는 곧 동쪽 대에 가서 자세히 보거라. 돌 위에 앉은 것이 분명 엊그제 왔던

후생이거든 부르되, 만일 대답을 하거든 그에게 '돌 위에 앉은 믿음직한 이

이리로 옮겨 심을 만하다'고 전하라."

시자가 이 게송을 선사에게 전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통곡 소리, 아무리 슬퍼도 끝내 저 산을 넘어오지는 못하리."
시자가 다시 이 게송을 회양 화상에게 전하니, 회양이 말했다.
"그 스님의 자손들이 뒷날 천하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릴 것이니라."

또 시자에게 가서 법을 물어보라 했더니, 시자가 가서 물었다.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선사(석두)가 대답했다.
"누가 너를 속박했더냐?"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너를 더럽히더냐?"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누가 너에게 생사를 주었더냐?"
시자가 이 말을 화상에게 전하니, 화상이 곧 합장하고 받들었다.
이 때 견고(堅固)라는 선사와 난(蘭)과 양(讓), 세 사람이 세상의 추앙을 받고

있었는데, 모두가 똑같이 말했다.
"저 돌 위에서 진짜 사자후(師子吼)가 난다."

이에 화상이 주사승(主事僧)을 불러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니 주사승이 말했다.
"스님께서 이 일을 처리해 주십시오."
이에 화상이 대중을 거느리고 동쪽 대(臺)로 가서 석두 선사를 보니,
선사 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일어나 영접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회양 화상이 선사를 위해 절을 짓고는 맡아보게 하였다.

 

석두(石頭) 화상-4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기둥[露柱]에게 가서 물어봐라."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더 모른다."

태전(太顚)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있다고 말하는 것과 없다고 말하는 것이

두 가지 비방이라' 하였으니, 스님께서 없애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바야흐로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없애 달라는 것이냐?"
이어 선사가 태전에게 다그쳐 되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통하지 말고 속히 말하라." 스님이 대답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만약 정녕 그렇다면 그대는 문(門)에 들어섰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내게 와서 찾는가?"
"스님께 찾지 않으면 어찌해야 됩니까?"
"언제 잃었기에 그러느냐?"

약산(藥山)이 앉았는데 선사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약산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가히 앉은 것이로구나."
"한가히 앉았다면 그 역시 하는 것이 됩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 하는데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냐?"
"천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이에 선사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전부터 함께 지내도 이름조차 모르지만
마음대로 서로 잡고 그러는구나.
예부터의 높은 현인도 알지 못했거늘
경솔한 예사 무리야 어찌 밝힐 수 있으랴.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作摩行
自古上賢猶不識 造次常流豈可明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장남(漳南)에게 물었다.
"천 성인이라면서 어찌 알지 못합니까?" 장남이 대답했다.
"천 성인이라니, 그 무슨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냐?"

 

      감동을 안겨준 제자 5월 15일 스승의 날.
      올해도 어김없이 교문 앞에 제자가 꽃바구니와 선물을 들고 서있었다. 교직생활 30년 동안 유일하게 나를 찾는 제자다. 제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전화로 내 안부를 묻고 한다. 제자가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를 기억하면 아직도 가슴이 찡하다. 나를 찾기 위해 새벽 7시에 집을 나선 그는 그동안 내가 거쳐 온 수많은 학교를 그대로 뒤밟아 왔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그 큰 걸 들고 어떻게 왔냐는 말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제자의 대답. 그의 손엔 커다란 액자가 들려있었다. 첫 부임학교에서 만났던 제자. 남들보다 조금 뒤쳐졌던 그를 퇴근시간까지 가르치고 어느 땐 집에 데리고 가서 가르쳤다. 가끔은 몸이 약했던 제자를 업고 병원에 가거나 집에 데려다 주었다. 지금도 나를 찾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30년이 지난 지금, 내 모습은 어떨까. 관리직에 있기는 하지만 제자에 대한 열정과 사랑보다 업무를 더 중시하지 않았나 반성을 한다. 제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심을 잊지 말자. - 장성자 선생님의 글 - ------------------------------- 무거운 액자를 들고 물어 물어서라도 은사를 찾아갈 수 있게 만들었던 힘은 '사랑' 이었습니다. 이젠 학교가 마치 대학을 가기 위한 관문처럼 돼버리고,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점차 사라져갑니다. 지식을 배우기 위한 학교가 아니라 사랑을 배우고 존경을 배우는 학교가 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인가요?
      군사부일체란 말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법우님들도
        진정한 나의 스승님이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함께 하지는 못한다면 안부인사라도 전해 올리는 것도 행복한 날이 되리라 믿습니다 ♬배경음악:스승의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