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불자가 되는 길/청화 큰스님

2010. 5. 25. 20: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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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불자가 되는 길

-청화 큰스님-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본래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허공 같이 광대무변해서
그 마음에는 본래 걸리는 것이 없으며,
우리 중생의 마음, 우리 마음의 본심은
바로 불심입니다.

불심이라 하는 것은,
여기에 따로 있고 저기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모두 다 불심 뿐입니다.
내 불심, 네 불심 떠나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비단 식물이나 또는 동물이나
혹은 하나의 돌멩이나 공기나 물이나
불심 차원에서는 모두가 다 하나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품 같고 또는 그림자 같고
아지랑이 같은 허망한 허심에 막히고 사로잡혀서
불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인 것이고,
그 모든 존재의 근본자리,
근본 본체의 불심을 깨닫는 분은
성자이고 바로 부처님입니다.

보살계라 하는 것은 보살이 지키는 계입니다.
보살은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모든 도덕적인 행위를 완전히 다 갖추고,
아울러서 우리 불심을 깨달은 분이
바로 참다운 보살인 거이고,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우리 불심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 불심을 깨닫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를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여태까지 지은 바
여러가지 업장이 많이 있어서,
그러한 업장을 녹이지 않고서는
과거생에 지은 모든 허물을
안일하게 소멸시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과거생에 지은 허물들을
참회하기 위해서,
참회하는 상징적인 증빙으로
우리가 연비를 합니다.

연비를 해서 우리가 삼세제불께
’맹세코 부처가 되겠습니다.
우리 본 마음을 찾겠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이라야
비로소 우리가 불심 수행을 하는,
즉, 마음을 깨닫는
그러한 하나의 참다운 불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우리 불자님들 과거를 참회하시고
연비를 하셔서 참다운 불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보는대로 존재한다 신발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모두 신발 뿐이다. 길 가는 모든 사람들의 신발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전체는 안중에도 없다. 미장원을 다녀오면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 외엔 아무 것도 안보인다. 세상은 내 마음 끌리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때까진 진짜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있다고 또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게 다 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될꺼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중에 몇가지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 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신나게 기분좋은 아침엔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더 넓고 명랑해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땐 슬픈 것들은 아에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만 보인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저녁, 문득 바라다본 수평선에 저녘 달이 뜨는 순간, 아 ∼ 그때서야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느끼질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녘 노을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 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대신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 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울든지, 찼다고 웃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다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대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구름장을 꿰뚫어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이 있다면, 그 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세상은 보는대로 있다. 어떻게 보느냐... 자신의 책임이다. -이 시 형 의 "세상은 보는대로 존재한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