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허무주의 /월호스님

2010. 6. 28. 19:2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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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허무주의

 

 

대승적 '발원'으로 삶의 에너지 전환

 
‘불교는 염세적 허무주의’ 오해

수행 통해 역동적인 삶 갈무리


 
 
여러 해 전에 유럽의 벨기에로부터 오신 분들과 함께 우리나라 절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해인사나 운문사를 비롯해 여러 대표적 사찰에서 예불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그들은 한국불교가 상당히 ‘역동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부처님의 중도(中道)사상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라 덧붙였다.

일반인들이 불교에 관해 갖는 오해 가운데 하나가, 불교가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는 관념이다. 이러한 관념은 특히 대승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발원(發願)을 수행의 첫걸음으로 삼고 있다. 발원이란 서원(誓願)을 발(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기존의 탐ㆍ진ㆍ치로 그득했던 삶을 돌이켜 새로운 삶의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탐욕이란, 마음에 드는 것을 자신에게 당겨오는 에너지다. 오랜 세월 동안 익혀온 에너지 패턴이기 때문에 없애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발원을 세워 초점을 바꾸어주기는 비교적 쉽다. 다시 말해서 ‘나’만을 위한 욕심을 ‘중생 모두’를 위한 욕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기도의 가피를 입고자 하는 욕심’ ‘불법을 깨치고자 하는 욕심’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욕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더 이상 욕심이라 부르지 않는다. ‘서원’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성냄이란, 마음에 거슬리는 것을 밀쳐내는 에너지다. 탐욕과는 또 다른 에너지 패턴이다. 성을 잘 내는 사람 가운데는 비교적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분석해서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벌컥 성을 내는 것이다. 머리 회전이 더딘 사람은 그 때 그 때 성을 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성을 잘 내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잘 파악한다고 할 수 있다. 시선을 자신의 허물을 보는 쪽으로 돌이켜야 한다. 본래 허물이 많은 사람이 남의 허물을 잘 본다고 한다. 그러므로 남의 허물이 보이면 자신의 허물로 알면 된다. 스스로의 마음을 닦아나갈지언정 남의 마음 닦아주려 안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리석음이란, 지혜의 부족 내지는 결핍이다. 에너지가 깜박 깜박하는 것이다. 공부가 잘 될 수가 없다.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저만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저 스스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인과법을 100% 확신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잘한 일이 인정받지 못할까 안달하며, 잘못한 일을 피해나갈 수 없을까 초조해하는 것이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덤덤히 받아넘길 수 있는 지혜, 이것은 인과법을 온전히 믿는 데서 오는 것이다. 한편 우둔한 이는 오히려 인내심이 강한 편이다. 오직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황소처럼 옆을 돌아보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하나 장애를 없애 나가면서 통찰을 확립해나가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발원은 존재의 속성인 탐ㆍ진ㆍ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에너지, 즉 끊임없는 향상성들을 공부의 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돌이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탐욕은 대신심(大信心)으로, 성냄은 대분심(大憤心)으로, 어리석음은 대의심(大疑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업생(業生)에서 원생(願生)으로 전환하게 된다.

업생이란 기존의 예금을 털어먹으며 사는 인생이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과거의 지은 바 업에 따라 이끌려 살다 가는 것이다. 원생이란 새로 예금과 적금을 부어나가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갈무리해나가는 것이다. 당연히 역동적인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 월호스님의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신문 -
 





      
      보고 있어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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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워지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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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심하는 때
      스스로를 이겨가는 용기가 느껴지는 때
      그리고 또
      아픔이 무디어지는 때
      세상을 알아가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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