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屠漢亦得成道)
물음이라
[전다라는 살생으로 업을 삼거늘 어떻게 부처를 이루리요?]
대답이라.
[성품을 보라고만 말했을 뿐,
업 짓는 것은 말하지 않았나니
설사 업을 짓더라도 미혹한 사람과는 달라서
온갖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 하나니라.]
끝없는 옛날부터 오직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는지라
그 까닭에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하거니와
근본 성품을 깨달으면 끝내 업을 짓지 않으리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염불을 하더라도 과보를 면할 수
없나니 살생이 문제가 아니니라.
성품을 보아 의혹을 활짝 제하면
생명을 살해하더라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서천(西天)의 二十八祖들도 오직 마음을 전하셨고,
내가 이제 이 땅에 온 것도
오직 돈교(頓敎:당장 성불하는 법을 보인 교법)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을 보였을 뿐이요.
계행 지키기와 정진과 고행과 나아가서는
불이나 물에 드는 법과 칼산에 오르는 것과
한 끼니 먹고 오래 앉아 눕지 않는 법을 말하지 않나니
모두가 외도 유위의 법이니라.
만일에 분별하고 운동하는 신령스럽게 깨닫는 성품을 알면
그대의 마음이 곧 부처님들의 마음이니라.
전의 부처님과 뒤의 부처님이 오직 마음을 전하는 법을 말씀
하셨고 다시 딴 법이 없으시니
만일 이 마음을 알면 한 글자도 몰라도 부처를 이루느니라.
만일 자기의 신령스럽게 깨닫는 성품을 알지 못하면
설사 몸이 부서져 먼지 같이되더라도 성불은 끝내 어려우니라.
부처란 법신(法身)이라고도 하며, 마음 깨달은 이라고도
하나니, 이 마음은 형상도 없고 인과도 없으며,
힘줄도 뼈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잡을 수 없나니,
물질의 세계와 같지 않으며 외도와 같지도 않느니라.
이 마음은 여래 한 사람만이 아시고 그 밖의 중생, 미혹한 사람
은 똑똑히 알지 못하느니라.
이 마음은 四대의 색신을 여의지 않았나니
만일 이 마음을 여의면 운동할 이도 없느니라.
이 몸은 알음(知)이 없어 초목이나 기왓쪽 같은지라
몸은 감정이 없거늘 어떻게 운동하리요.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분별하고 운동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며 작용(用)의 움직임이니라.
움직임이란 마음의 움직임이요
움직임 그대로가 작용이니
움직임과 작용이외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밖(心外)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니라.
움직인다면 마음이 아니요
마음이라면 움직이지 않나니
움직임이란 본래 마음이 없고
마음이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니라.
움직임은 마음을 여의지 않았고
마음은 움직임을 여의지 않았으나
마음에는 여윈다는 것도 여의 였다는 것도 없으며
마음에는 움직인다는 것도 움직였다는 것도 없느니라.
이는 마음의 작용과 작용한 것이며,
마음의 움직임과 움직인 것이니,
마음 그대로가 작용과 작용한 것이며,
마음 그대로의 움직임과 움직인 것이기 때문이니라.
[마음은] 움직임도 아니요 작용함도 아니니
작용의 바탕이 본래 공한지라
공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니라.
움직임과 작용이 다 같이 마음이나
마음의 근본은 움직임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움직이되 움직인바가 없다" 하시니,
종일토록 가고 오되 가고 온 적이 없고,
종일토록 보되 본 적이 없고,
종일토록 웃되 웃은 적이 없고,
종일토록 듣되 들은 적이 없고,
종일토록 알되 안 적이 없고,
종일토록 기뻐하되 기뻐한 적이 없고,
종일토록 다니되 다닌 적이 없고,
종일토록 멈추었으되 멈춘 적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말로써 표현할 길이 끊였고 마음으로 따질 자리가 없어졌다"
하시니 보고 듣고 아는 것이 본래가 원적(圓寂)한지라,
성나고 기쁘고 가렵고 아픔이 어찌 본래의 사람과 다르리요?
더욱더욱 미루어 찾건대 아픔과 가려움을 찾을 수 없도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쁜 업은 곧 괴로운 과보를 받고, 착한 업은 곧 좋은 과보를
받는다] 하시니 성내면 지옥에 빠지고
기뻐하면 하늘에 태어날 뿐 아니라,
성냄과 기뻐함의 성품이 공한 줄 알아서
집착하지만 않으면 업력(業力)을 벗어나리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경론을 강설하더라도
결코 아무런 힘이 되지못하리라.
설명하자면 끝이 없기에 간략히 삿됨과 바름을
이렇게 간략히 표방하였거니와 모두가 미치지 못하노라.
게송으로 말하리라.
마음, 마음, 마음이라지만
찾을 길 없어라
퍼지면 법계에 두루하고
움츠리면 바늘 끝도 용납치 못한다.
나는 본래 마음을 찾을 뿐
부처를 구한 적 없나니
三界의 모든 것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히 아노라.
부처를 구하려거든
마음만을 구할지니
이 마음이란 마음 그대로가
마음 그대로의 부처로다.
내 본래 마음을 구하지만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나니
마음을 구하려면
마음을 알기를 바라지 마라.
부처의 성품이란
마음 밖에서 얻는 것 아니니
마음이 생길 때가
곧 죄가 생기는 때니라.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중생을 건지려 함이니
한 송이 꽃에 다섯 잎이 피어
열매가 저절로 맺어지리라.
- 선문촬요 -
여기는 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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