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운명

2010. 7. 16. 19: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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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운명

 

현재의 마음과 행위로 미래가 바뀐다

 
주어져 결정된 운명은 없는 법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행해가야
 
 
운명은 바꿀 수 있는가? 그 답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석존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또한 수보리야,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되 만약 다른 사람에게 가볍고도 천한 대우를 받는다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 삼악도에 떨어져야 할 것이지만, 금생에서 가볍고도 천한 과보를 받는 것으로 전생의 죄업이 소멸하고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금강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는 공덕으로 과거에 지은 막중한 죄업도 가볍게 때우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상의 깨달음도 얻게 된다고 한다. 얼마든지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일화가 있다.

 
옛날 어느 한 비구는 여섯 가지 신통을 얻었는데, 나이 여덟 살이 되는 한 사미와 함께 산중에 있으면서 저마다 한 쪽에 앉아 경전의 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스승은, 사미의 수명이 7일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 있다 죽으면 그의 부모가 ‘돌봄이 허술해서 아이를 죽게 했다’하면서 마음에 원한을 품겠으므로, 이내 사미에게 말하였다.
“너의 부모가 너를 생각하니 너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여드레가 되는 날 아침에 오거라.”
 
그러자 사미는 기뻐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떠나가다가 길에서 큰 비를 만났는데, 길바닥에 물이 괴며 세차게 흘러내렸다. 때마침 그 땅에는 개미구멍이 있었는데, 그 흐르는 물이 들어가려 하므로 사미는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첫째는 인자한 마음을 내야하고, 둘째는 중생을 살려주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였다. 이내 흙으로 막고 물을 터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하고난 후 사미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른 변화가 없이 8일째 새벽에 돌아오자, 스승이 멀리서 그를 보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생각했다. ‘7일 만에 죽었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귀신으로 화현하여 오는 것은 아닐까?’ 이내 삼매에 들어가 그가 개미를 구제하여 현세에서 목숨을 늘리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미가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 쪽에 앉으므로 스승은 말하였다. “너는 큰 공덕을 지었는데, 스스로가 알고 있느냐?” 사미는 말하였다. “7일 동안 집에 있었으며, 다른 공덕은 없었습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너의 수명은 다 했어야 했으나, 엊그제 개미를 구제하였기 때문에 현세에서 수명을 80여 년 늘렸느니라.” 그러자 사미는 기뻐하면서 착한 일에는 과보가 있음을 믿고 더욱 부지런히 닦고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다가 아라한이 되었다.
 
미래의 모든 일이 다만 신(神)의 뜻에 달려 있다거나, 이미 확고히 결정되어있어서 전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자신의 노력이나 수행이 궁극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주어진 운명을 한탄할 일도 아니고, 모든 것을 신의 뜻에만 맡겨 놓을 일도 아니다. 꾸준한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팔자를 고치려면 마음을 고치고 몸의 행위를 고치면 되는 것이다.

 

 

- 월호스님의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신문 -

 

      근심은 알고나면 허수아비다.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 이외수님- ----------------------------------------
      우리는 꿈속에서 재산을 다 잃거나 병이들어 죽을지경에
      처했다가 꿈을 깨면 그렇게 기분이 홀가분 할 수가 없다.
      - 아 꿈이었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이라는 것도 실은 꿈과 같은 것인데 . .
      실체가 없는 것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착각하면서 근심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如夢幻泡影이라 - 부처님은 우리의 삶이 허망하고 실체 없는
      것이어서 꿈과 같고 헛깨비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 같은 것이
      현실이라고 금강경에 설 하지 않았던가 !!
      - 유당
      ♬배경음악:In Loving Mem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