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을 수지한 까닭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2010. 7. 16. 19:4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금강경

728x90

금강경을 수지한 까닭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전

 

금강반야바라밀경은 흔히 금강경으로 약칭한다. 대승불교의 초기경전군에 속하는 경전이다. 현장삼장의 마하반야바라밀다경(곧 대반야경을 가리킨다) 600권 275품이 역출되기 이전에는 한때 금강경과 대반야경이 독립된 경전이다, 금강경이 먼저 출현하였다, 대반야경이 먼저 출현하였다 등의 문제가 제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반야경 계통의 경전이 거의 번역된 이후에는 금강경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는 분명해졌다.

 

대반야경은 4처(處)·6전(轉)·16회(會)의 설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곧 네 장소에서 여섯 차례 옮겨가며 열여섯 차례에 걸쳐 설법을 하였다. 곧 제1회 법회부터 제6회 법회까지는 영취산, 제7회 법회부터 제9회 법회까지는 기원정사, 제10회 법회는 타화자재천궁, 제11회 법회부터 제14회 법회까지는 기원정사, 제15회 법회는 영취산, 제16회 법회는 죽림정사 등이다. 이 가운데 금강경은 대반야경 600권의 순서로는 제577권에 해당하고, 제9회 법회 때 설해졌기 때문에 장소는 기원정사이다.

 

금강경의 텍스트는 범본으로 현전한다. 한역 금강경은 처음 401~402년 무렵에 요진(姚秦)의 구마라집에 의하여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는 경명으로 번역되었다. 이후로 원위(元魏) 보리류지의 금강반야바라밀경, 진(陳) 진제의 금강반야바라밀경, 수(隋) 달마급다의 금강단할반야바라밀경(金剛斷割般若波羅蜜經), 당(唐) 현장의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 당(唐) 의정의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 등 모두 6회에 걸쳐 한역되었다. 현재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는 금강경은 구마라집의 번역본이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에 원효, 경흥, 의적, 도증, 태현, 대비, 현법 등 여러 사람에 의하여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가 출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찍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전으로 자리잡았다.

보살행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1,250명의 대비구와 함께 머물면서 설법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질문한 내용은 어떻게 발심해야 하는가, 어떻게 청정심을 유지해야 하는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번뇌심을 다스려야 하는가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끝 부분까지 비교적 짤막한 대화의 형식을 통하여 보살행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설법이 진행된다.

 

첫째, 발심의 문제는 반야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보살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 청정심의 유지는 어떤 마음으로 발심을 성취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요익중생계(饒益衆生戒)이다. 셋째, 수행은 발심한 이후에 어떻게 수행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말한다. 이것은 일체선법을 닦는 것으로 섭선법계(攝善法戒)이다. 넷째, 번뇌심을 다스린다는 것은 수행을 통하여 아집과 법집의 번뇌장과 소지장을 어떻게 없애야 하는가를 말한다. 이것은 일체의 악을 단절하는 것으로 섭율의계(攝律儀戒)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보살도의 4종심을 겨냥한다.

첫째는 광대심(廣大心)이다. 광대심은 가없는 시방과 세계와 중생을 모두 건지려는 마음이다.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존재하는 일체중생의 부류인 난생·태생·습생·화생·유색·무색·유상·무상·비유상비무상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열반에 들게 하리라.”라고 말한다.

 

둘째는 제일심(第一心)이다. 일체중생을 무여열반에 들도록 하려는 마음이다. 때문에 “내가 다 무여열반에 들도록 그들을 멸도하리라.”라고 말한다.

 

셋째는 상심(常心)이다. 중생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이다. 때문에 “이와 같이 무량하고 무수하며 무변한 중생을 멸도하지만, 실로 멸도된 중생은 없다.”라고 말한다.

 

넷째는 부전도심(不顚倒心)이다. 올바른 지혜를 통하여 선교방편을 구사하는 것이다. 때문에 “만약 보살에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금강경을 설하는 목적

1) 마하반야는 보살을 위하여 보살행을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금강경은 모든 대승인을 위하여 간략하게 대법을 설한 것이다. 그래서 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은 대승에 발취(發趣)하는 자를 위하려 설한 것이다. 그리고 최상승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다.”
곧 모든 대승인을 위하여 이 인연을 설하고자 이 금강경을 설한다.

2) 또한 현재와 미래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진실하게 그 이익과 공덕을 분별하기 때문에 이 금강경을 설한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佛)이 멸도한 후 후오백세 때 반야에서 일념 동안만이라도 청정한 믿음을 낸다면, 밖으로는 제불의 호념을 받고 안으로는 무량한 공덕을 얻는다. 이것은 삼천대천세계에 진보를 가득 채워 보시한 복덕보다 뛰어나고 또한 항사(恒沙: 갠지스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신명을 바쳐 보시한 복덕보다 뛰어나다.”

 

3)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을 설하고자 이 경전을 설한다. 제일의실단이란 소위 제법의 실상으로서, 일체의 희론(戱論)을 멸하고 일체의 언어를 벗어나지만 그것을 무시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다. 비유하면 불꽃과 같아서 그것을 접촉하지 않고는 의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제불의 깨침과 설법에 대하여 불가취(不可取)하고 불가설(不可說)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마음으로 취할 수도 없고 언설로 설할 수도 없는 진리임을 말한 것이다.

 

4) 모든 보살로 하여금 염불삼매를 증진시키게 하려고 이 금강경을 설한다. 일체중생은 비록 염불을 하려고 해도 여래를 모르고 대부분 잘못된 견해에 빠진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상의 색신을 통하여 여래를 보려 하거나 음성을 통하여 여래를 찾으려고 하면, 잘못된 길에 빠져 법신을 보지 못한다.”

 

5) 또한 중도(中道)를 드러내고 양극단에 치우친 견해를 없애고자 이 금강경을 설한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올바른 보리심을 내는 자는 법에 있어서 단멸상을 설하지 않는다.”

 

6) 중생의 지중한 번뇌를 굴려 없애고자 이 금강경을 설한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인데도 금강경을 수지한 까닭에, 삼악도가 소멸되고 당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를 얻을 것이다.”

 

 


- 김호귀 / 월간 불광 -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 이생진
낭송 : 세미 서수옥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그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의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