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를 위한 팔정도2 정견(2)

2010. 8. 15. 17: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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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를 위한 팔정도(八正道)

 

 

                                 - 잭 콘필드(Jack Kornfield) -

 

 

 

<2>정견(2)

 

 

‐“일상 생활 속에서 ‘법칙’을 찾자”‐

‐ 삶의 본질은 무소유 고통은 일시적 ‐

 

 

사원 정원을 자주 산책했던 아잔 차 스님(Achann Chah)은 만나는 사람마다 “오늘 고통을 많이 겪었나?”고 물었다고 한다. 만약 사람들이 “예”라고 대답하면 “집착을 버려!”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상의 사물들은 일상의 주변에 잠깐 머물며 우리에게 경의와 즐거움을 줄 뿐, 우리가 완전히 소유한 것은 아니다. 삶의 본질은 무소유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의 역할은 단순한 회계사이다. 우리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물들의 가치를 계산하고 취하는게 전부인 회계사일 뿐이다.

 

명상은 우리 삶의 일상에서 일련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우리는 이 과정에서 현자(賢者)로 일어선다. 명상이 몸과 마음을 열고 깨달음을 얻는 한 방편이게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법칙’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특별하고 육중한 어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상 법칙이란 우리의 일상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에도, 말에도, 먹는 것에도, 걷는 중에서도 ‘법칙’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 어떤 부분에서건 어김없이 ‘법칙’이 있으며, 이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 행동과 생각 등을 일으키는 근본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가장 힘겹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들 중에 고(苦)가 있다. 고를 법칙에 투영해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일시적이라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웬만한 연륜과 공부가 쌓인 사람들조차 삶과 고통이 맞물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고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고통의 속성인 일시성을 모를 때, 결국 우리는 고통의 인과(因果)를 계속 떠올리는 망상(생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삶이 고의 법칙을 떨칠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미국 뉴욕시에서 티벳 유람을 꿈꾸는 한 중년 여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여행사를 방문해 티벳 여행 상품을 물었다. 여행사 직원은 티벳보다는 마이애미 해변을 권했지만 그녀는 “티벳에서 구루(Gruru·스승)를 만나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요”라며 티벳 행을 고집했다. 히말라야 산록의 왕국인 시킴(Sikkim), 티벳 고원 라닥크 등을 유람하던 그녀는 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순례자들은 “구루를 만나 특별한 영적 경험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매번 “구루는 단지 세 마디만을 할 것”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드디어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구루를 만났다. 그녀는 공손히 절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구루는 “집으로 돌아가시오”라고 대답할 뿐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에게는 버릴 것은 있지만 떠날 곳은 없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생생한 수행을 해야 한다. 수행이란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운전을 할 때, 걷고 말할 때에도 우리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명상이 인간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명상을 한낱 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명상은 바로 살고 있는 이곳에서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어떤 나라이건 부정과 착취가 있고 전쟁의 위험을 당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고통의 근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가 조금씩 절약하면 이 지구의 에너지와 식량을 충분히 나누어 사용할 수 있는데도 우리의 탐욕, 편견, 증오가 동체대비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조국 가족 종교만을 사랑할 뿐 다른 종교·인종·전통을 거부한다. 수세기 동안 지속된 개혁과 발명으로 사회와 물질은 개선되었지만 우리의 탐욕, 집착, 증오, 무지 등을 근본적으로 개선(치유)하지 못해 고통이 여전히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몸과 마음을 열고 일상을 보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고 우리도 결국 갑절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 현대불교신문 -

 




    






     



    ♧ 내 삶에 휴식이 되어 주는 이야기 ♧
     
     
     

    삶은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
    내가 삶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삶 또한 나에게 긍정적인 선물을 주고,



    내가 삶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삶 또한 나에게 부정적인 선물을 줍니다.



    삶은 우리가 준 것을
    충실하게 되돌려 주는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들 생각, 말, 행동, 표정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삶은 또 벽에다 대고 공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벽에다대고 공을 던지면
    그 공이 어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세상에 불평을 던지면 자신에게 불평이 돌아 오고



    세상에 미소를 던지면
    자신에게 미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삶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주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사람,

     



    자신의 얼굴에 접근 금지라고
    써 놓고서 다른사람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은 아닌지요?






    - 내 삶에 휴식이 되어주는 이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