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품 4장 '나' 또한 '나'가 아니거니

2011. 2. 5. 11: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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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또한 '나'가 아니거니 무엇을 자식이라 재물이라 근심하리.

     

    법구경 우암품

     

    제4장

    유자유재  우유급급  아차비아  하우자재

    有子有財  愚惟汲汲  我且非我  何憂子財

    내 아들이다, 내 재물이다 하여 그들은 괴로이 허덕이지만

    이 '나' 또한 '나'가 아니거니 무엇을 자식이라 재물이라 근심하리.


    ==================== 해=====================

     

     

     

    무명 중생들이 사바세계에 나툼은 다 四相(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

    상)을 집착하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사방을 구분할 수 없는 허허벌판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면 그 나무를 기준으로 좌우 앞뒤 상중하의 경계가 구분된다.

    이렇게 사방이 성립되면 그 나무를 기준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시간적인 삼세가 성립되고 이렇게 사방의 경계와

    삼세의 시간이 짜인 것을 그 나무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해가 뜨면 그림자를 나타내고 바람이 불면 가지가 흔들

    리게 된다. 만약 나무가 없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한 세계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며 그림자도 없고 바람에 움직일 가지도

    없을 것이다. 


    여래장묘진여성에서 무명으로 비롯한 존재 즉, 나를 집착하고

    세워 나를 중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성립되고 또한

    나를 기준으로 사방의 경계가 성립되니 각각 전도된 육근

    육진에 오온이 작용하여 생,노,병,사, 우비고뇌의 중생계가 나타

    나게 된 것이다. 


    그 무명 중생 중에서도 진보한 자아를 인식하여 스스로 사고

    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데까지 진화해온 사람들이

    한 번도 자아인식이 전도된 현상인지를 알아 체리지 못한

    것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만 믿어 의심치 못한 미개함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전도된(뒤바뀐) 인식으로 나를 위주로 내 몸

    내 자식 내 가족 내 이웃 내 나라 내 국토를 집착게 하고 그

    탐욕의 집착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고 분노하고 투쟁하며 끝

    내는 몽둥이, 창, 칼 무기를 만들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그

    무기들을 이용해 싸우고 죽이고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대로 이룬 몸과 마음을 나라고 고집하고 나라는

    아상에 집착하여 탐.진.치 삼독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고로 나고

    죽는 윤회 고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진리 앞엔 나랄 것도 없다."라고 하신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위에서 비유를 든 것처럼 나의 근원을

    파악하고 이해하여 수긍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상이 무명으로 비롯했다면 무명은 어디서 시작

    했는가 의심해볼 만하다. 인이 없는 결과는 철학적, 논리적,

    모순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능엄경에서는 “성각은 묘명하고 본각은 명묘한데

    각명이 위구여서 명리가 불유 함으로 청불출성 하고 견불출색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연하면 성각은 묘하게 밝고 본래의 깨달

    음에는 밝고 묘한데 그 본래 밝고 묘한 여래장묘진여성에서

     

    다시 밝히려고 하는 각이 허물이 되어 본래 서로 통하던 밝은

    이치가 서로 칸칸이 벽을 이루어 넘나들지를 못하게 되어 귀로

    듣는 것은 소리를 초월하지 못하게 되고 눈으로 보는 것은 색(물

    질)을 초월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생들의 보고 듣고 하는 성품이 본래는 둘이 아니었는데

    티끌 번뇌들이 모여 벽을 쌓아 막아서 까닥 없이 다른 성품이 돼

    었는데 성품으로는 보는 것도 알고 듣는 것도 서로 아는데 작용

    로는 보는 것은 보기만 하고 듣지를 못하고 듣는 것은 듣기만

    하고 보지를 못해 서로 모르게 되니 한편으로는 알고 한편으로는

    모르니 동과 이과 표준을 잃은 것이 서로 짜여서 허망함이 생기니

    이것을 나요 나의 생명이라고 집착하고 사는 것이 오탁중생

    이랍니다. 


     

     

     

     

    결론은 12 연기의 무명은 어디서부터 그 인을 삼고 나란 존재로

    생.노 병.사.의 결과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과거 물리학자들의 빅뱅이론에서는 무에서 밀도가 높은 한 점으로

    부터 대폭발 하여 우주가 생겼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 이론물리학

    에서는 빅뱅 전도 무가 아닌 반복적인 유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인과

    의 법칙을 따라 모순을 수정해 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무명의 인은 묘명한 여래장 중에서 허망하게 생멸법을 

    복하는 망상이다.

    공한 법 중에서는 물질이 공이고 공이 곧 물질이라고 함과 같고 여래

    장묘진여성이 본래 청정하고 법계에 두루 편만한데 중생의 망상으로

    생.노 병.사.가 마음을 따르고 소지한바 양에 응하며 업을 따라 나타

    나는 것이니, 인이 허망한데 결과 또한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고로 허망한 것에서 시작과 끝의 진실을 찾는 일은 실없는 것이므로

    허망함을 버리면 곧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산같이 물같이 살자 **

 



 

 텅빈 마음엔 한계가 없다
참 성품은 텅빈곳에서 스스로 발현된다

 산은 날보고 산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물같이 살라한다

 빈몸으로 왔으니 빈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집착, 욕심, 아집, 증오 따위를 버리고

 빈그릇이 되어 살라고 한다
그러면 비었기에 무엇이든 담을수 있다고 한다

 수행은 쉼이다
이것은 내가 했고 저것은 네가 안했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항상 마음이 바빠서는 도무지 자유를 맛볼 수 없다

 
내가 내마음을
"이것"에 붙들어 매어놓고
"저것"에 고리를 걸어놓고 있는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항상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

 수행은 비움이다
내가 한다 내가 준다 내가 갖는다

 

하는 생각 또는 잘 해야지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따위의 생각을 버리고
한마음이 되는 것이 수행이다......

 

법정스님
 

비우고 산다는 것 참으로 어렵습니다. 

늘 듣는 말씀인데 실천하려 하면 안 되니 아무래도 

더 수양을 쌓아야 되나 봐요   

막상 정리를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아까운 것들이 

많거든요. 

나누어 주고 나면 다시 감사로 채워짐을

알면서도 조금씩 밖에 실천을 못합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