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극락도 내 마음 가운데 있다/정련스님

2011. 4. 8. 18: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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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극락도 내 마음 가운데 있다/정련스님

 

 

오늘은 유정물(有情物)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으로부터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蠢動含靈)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헤아리기 힘든 영지(靈知)의 작용은 모든 것에 공통한다는 것이지요.

 

한번 살펴볼까요?
원앙새는 죽음으로써 정조를 지키고, 닭은 때를 알고 울며,

 개는 주인을 알아보는 영지가 있습니다.
십장생에 드는 거북과 사슴과 학은 불로장생의 영지가 있으며,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 영지가 있습니다.
까치는 천기(天氣)를 보아 집을 짓고 태풍이 어느 쪽으로 올 것인지 아는 영지가 있고,

기러기는 그물에걸릴까봐 입에 갈대를 물고 날아가는 영지가 있습니다.
또한 벌은 군대처럼 엄한 규율을 지키는 영지가 있고,

개미는 공동 작업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영지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
곧 '개유불성(皆有佛性)'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옛날 풍간(豊干)선사와 이통현(李通玄) 장자(長子)는 호랑이를 타고 다녔고,

화림선가(華林善覺) 선사는
대공(大空).소공(小空) 이라는 호랑이 두 마리를 시자로 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통도사 경운원기(擎雲元奇) 선사는 금자(金字)로 <법화경> 사경을 하는데

족제비가 법당에 들어와 꼬리를 흔들자,

그 꼬리털을 뽑아 만든 붓으로 경을 써서 보관하였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사람들과 통하는 재주가 있으니,

이 또한 개유불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출가 전이었던 태자 시절에 부왕(父王) 정반왕을 모시고

 춘경전(春耕田)에 나아가 밭가는 것을 보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침 쟁기 끝에 나오는 굼벵이를 삽시간에 날짐승들이 먹는 것을 보고는,

그날부터 좋아하시던 소고기장조림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령 신찬(古靈神贊) 선사는 원래 계현(戒賢) 선사의 문하에서 경전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부족함을 느껴서 스승을 떠나 백장(百丈) 선사에게로 갔습니다.
신찬 선사는 그곳에서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 계현 선사에게 돌아와 보니 스승은 여전히 경전에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하루는 계현 선사가 경전을 읽고 있는데,

방에 벌이 한 마리 들어와서 열린 창문으로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닫힌 창문으로만 나가려고 하면서 계속 부딪히고 왱왱 거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찬 선사가 말했습니다.

 

공문불긍출 (空門不肯出)
투창야대치 (投窓也大痴)
백년찬고지 (百年鑽古指)
하일출두기 (何日出頭期)

 

열린 문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닫힌 문만 두드리니 어리석구나
백년 동안 옛 글만 본들
어느 때에 벗어날 것인가

 

이 말을 들은 계현 선사는 신찬 선사가 비록 자신의 제자이기는 하나 공부로는

오히려 자신의 스승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신찬 선사는 다시 설법을 하여 스승을 견성(見性) 시켜 주었습니다.
당나라 조주(趙州) 스님은 어느 수좌(首座)가 "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 선사는 무슨 까닭에 없다고 했을까요?
1,700 공안 가운데 이 무(無)자 화두는 천년 이상을 내려오면서 많은 수좌들을

 견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서산(西山) 스님은 21세에 어느 촌락을 지나다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을 지었습니다.

 

발백심비백 (髮白心非白)
고인회루설 (古人會漏洩)
금청일성계 (今聽一聲鷄)
장부능사필 (丈夫能事畢)

 

털이 흰 것이요 마음이 흰 것이 아니란 것을
옛 사람들이 벌써 알렸구나
이제 우는 닭 소리에
장부의 할 일을 마쳤구나

 

이러한 일들에서 보듯 불교에서는 산하대지(山河大地), 일월성신(日月星辰),

금수초목(禽獸草木), 유정무정(有情無情)을 막론한 모든 인연이 수행에 도움을 주고

또 가르침을 준다고 봅니다.
우주의 모든 현상이 인연이라는 법칙 아래에서 성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

12인연의 법칙으로 생멸합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 가득한 모든 것들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작용에 따라 스스로 만들어진, 자업자득(自業自得) 이라는 것이지요.
불교가 추구하는 바는 이렇게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주만유(宇宙萬有)의 근본이기에 마음의 근원을  밝히지 않고는 우주만유의 진리를 깨우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밖으로 만유(萬有)의 진상(眞相)을 알려고 하지 말고

먼저 안으로 내 마음의 근원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것도 이러한 까닭입니다.

 

달마 대사는 ;;

"마음을 마음이라고 부르는 그 마음이 참으로 찾기 어렵다(心心心 難可尋)" 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 마음을 찾겠다는 욕심에 가려서 참 마음을 못 찾는다고 하니,

찾겠다는 그 마음까지도 비워 버리고
빈 허공과 같이 모든 생각을 버린다고 하면 비로소 그때 드러나는 참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약유욕지불경계 (若有欲知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 (當淨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 (遠離妄想及諸取)
영심소향개무득 (令心所向皆無得)

<대방광불화엄경.여래출현품>

 

만일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비워라
모든 망상과 취하려는 욕심만 없애버리면
내 마음 향하는 곳에 무엇이 걸림 있겠는가

 

이 말의 뜻을 잘 새겨,

 부처와 극락까지도 내 마음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수행해야 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다."
 

나는 너무 행복하면 눈을 감는다

너는 모를 것이다.
나는 너무 행복하면 눈을 감게 된다.

 

이 행복이 달아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나는 너무 사랑하면 입을 다문다. 한 번 불러버리면
다시는 그 말과 똑같은 느낌으로는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는 이렇게 아프게 사랑하는
내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 조진국의《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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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하면 눈을 감고, 너무 사랑하면 입을 다무는 그 마음을

저도 이해합니다. 뜬 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큰 행복감,
만 입이 있어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사랑, 그러니 눈을 감고

입을 다물 수 밖에요. 사랑이 클수록 고통을 동반합니다.


때론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지만 그건, 행복한 아픔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애병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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