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선사와 호랑이

2011. 4. 8. 18: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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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선사와 호랑이

<가야산·백련암>

살을 에는 듯한 세찬 바람에 나무들이 윙윙 울어대고 눈보라마저 휘몰아치는 몹시 추운 겨울밤.

칠흑 어둠을 헤치고 한 스님이 해인사 큰절에서 백련암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허허, 날씨가 매우 사납구나.』

한 손으로는 바위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를 잡으며 신중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스님의 법명은 백련.

스님은 가야산 깊은 골에 외따로 암자를 세워 자신의 법명을 붙여 백련암이라 칭하고 동자 하나를 데리고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스님이 암자를 비우면 어린 동자가 스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홀로 암자를 지켰다.

오늘도 큰절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스님은 막무가내였다.

사위가 어둠에 사인 산길을 걷는 스님의 발길은 험한 날씨 탓인지 오늘따라 무겁기만 하다.

잠시 서서 숨을 돌리던 백련 스님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님의 눈앞 바위 위에 벌건 불덩이 두 개가 이글이글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주춤 뒤로 물러서며 그 불덩이를 쏘아보았다. 두 개의 불덩이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온 산이 울리도록 쩌렁쩌렁 포효하는 것이었다. 호랑이었다.

스님은 놀란 마음을 가다듬은 후 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엄한 목소리로 호랑이를 꾸짖었다.

『본래 너는 산중의 왕이요, 영물 중의 영물이거늘 어찌 어둔 밤중에 이렇게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고? 어서 물러서지 못할까.』

호통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더 큰 소리로 「어흥」 울부짖었다. 어찌 들으면 하소연 같은 울음소리였다.

『허허, 그렇게 울부짖지만 말고 어서 길을 비키래두.』

그러나 호랑이는 물러서지도 달려들지도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대치할 수만도 없고 해서 스님은 호랑이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호랑이는 어서 업히라는 듯 스님 앞에 자기 등을 갖다 대면서 수그려 앉는 거이 아닌가.

『오호! 참으로 기특한 일이로구나. 그런 뜻이라면 진작 알려줄 것이지… 자, 어서 가자.』

눈 깜짝할 사이에 백련암에 당도하여 스님을 내려준 호랑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호랑이는 다시 돌아와 법당 앞에 꿇어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동자를 시켜 먹을 것을 줘도 호랑이는 고개를 저었고 아프냐고 물어도 고개를 저으며 자꾸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면서 뭔가 애원할 뿐이었다.

점심 때가 기울서서 산에 해가 져도 호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동자는 그만 가엾은 생각이 들어 함께 살자고 스님께 간청했다.

사나운 짐승과 어찌 같이 사느냐고 선뜻 받아들이지 않던 스님은 동자가 하도 졸라대니 호랑이에게 물었다. 호랑이는 기다렸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백련 스님은 뭔가 생각하더니 함께 살기를 허락했다.

『그래, 너도 이제 불제자가 되었으니 절대로 살생을 해서는 안되며 동자와 화목하게 잘 지내야 하느니라.』

『어흥, 어흥』

호랑이는 알았다는 듯 크게 두 번 울고는 동자의 손등을 가볍게 핥아 주었다.

『그리고 비록 짐승이지만 불자가 된 이상 예불에도 꼭꼭 참석하도록 해라.』

백련암 식구가 된 호랑이는 동자와 친형제처럼 정이 들었다.

동자는 산에서 맛있는 열매를 따다 주는가 하면 떡 한 조각이라도 호랑이에게 남겼다가 주었다.

스님이 외출에서 늦으면 둘이 마중 나가 모셔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백련 스님은 마을에 내려갔고 호랑이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저녁밥을 하러 부엌에 들어간 동자는 산나물을 다듬다가 칼로 손을 베고 말았다. 빨간 피가 나왔고 상처는 쓰리고 아팠으나 동자는 붉은 피가 아까웠다.

『옳지 기왕에 흘러나온 피니 호랑이에게 먹여야지.』

동자는 아픈 것을 참고 호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맛있게 익은 머루를 한웅큼 따가지고 돌아온 호랑이를 동자는 반갑게 맞으며 피투성이 손가락을 내밀며 빨아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괜찮아, 이건 살생이 아니니 어서 먹어.』

동자는 자꾸 졸라댔으나 호랑이는 선뜻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이 피를 그냥 버리란 말야. 자 어서 먹어 어서….』

호랑이는 할 수 없이 피를 빨아 먹기 시작했다.

『아이구 아파, 아이구.』

호랑이는 본색을 드러내 동자를 아주 잡아먹고 말았다.

동자를 다 먹고 난 뒤 한잠을 푹 자고 난 호랑이는 그제서야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구슬피 울기 시작했으나 동자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날 밤 뒤늦게 돌아온 백련선사는 이 일을 알고 대노하여 도끼로 호랑이 한쪽 발을 잘라내 쫓았다.

호랑이는 구슬피 울면서 백련암 근방을 배회하다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는 사람 눈에 띄지 말라는 스님의 말에 따라 지금도 호랑이는 산 속 깊이 살며 도끼로 한 발이 잘렸기에 발자국이 외길로 나타난다고 한다.

 

 

 

인생이 한 그루 나무라면

 

 

인생이 한그루 꽃나무라면

미친 듯 사랑하며 살다가 그 사랑이 시들면 우정으로 살고,

그것마저도 시들해지면 연민으로 살라는 말이 있지요.

 

세상에 사랑처럼 좋은 것도 없지만 한떨기 꽃과 같아서

피었다가 이내 시들어 떨어지고 말아요.

사랑보다는 우정이 힘이 강하다고는 해도

우정의 잎새 무성하여 오래 갈듯 해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는 매한가지구요.

 

꽃피고 잎새 무성할땐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이

그제야 삐죽 고개 내미는데

그 가지들의 이름이 바로 연민이 아닌가 싶어요.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잎새처럼 무성하지 않아도

나뭇가지들은 변하지 않고 자라나는 거지요.

 

바람에 흔들리기는 해도쉽게 꺽이지는 않는 거구요.

인생이 한그루 꽃나무라면그래서 무수히 꽃 피고 잎 지며

사계절을 견디는 거라면 가장 말이 없고

가장 오래 가는 것이 연민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이 가고 나면 적막해지고 우정마저 사라지면

한없이 삭막해 지겠지만 그래도 연민이 나뭇가지 사이로

달도 뜨고 별들도 새록새록 반짝이므로

우리인생이 살만한것 아닌가 싶어요.

 

커피처럼 들꽃처럼 향기로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때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혹은 남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듯

미소 지으며 삶에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살아가면서 하루 하루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조금은 모자라도 욕심없이

아무 욕심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속에서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마음속에서

언제나 아름다운 언어가 흘러나오고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가진 것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은 부자가 될 수 있을텐데.. .

 

 

-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