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비추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2011. 6. 11. 10: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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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중생은 비추는 바 때문에 늘 시끄럽습니다만,

성인은 비추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 답변 >

비추지 않게 돼야 '큰 광명'이라 했소.· · ·

비춘다는 것은 인식작용을 말하는 거요.

산을 보고 그것을 산이라고 아는 것,

그걸 일러 비춘다고 하는 거요.· · ·

그러나 참 광명은 비추는 법이 없소.

거울이 사물을 비춘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거울은 '비추는 바'가 없소.

모든 걸 가감 없이 늘 환히 비추지만

거울은 그 비춘 바를 취하는 법이 없다 소리요.

그래서 '비춤 없이 비춘다'는 이상한 표현도 하는 거요.· · ·

그러나 중생은 어떻소?

보고들을 때마다 생각으로 더듬고 헤아려서,

이렇다고 알고 저렇다고 알고, 또 그 안 바를 취해서

자기 것으로 삼아 꾸역꾸역 계속 쌓고 있소.· · ·

그런 건 전부 가짜요. 물 속의 달그림자를 따다가

모셔놓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거요.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가

견문각지 하는 채로 견문각지가 아니오.

다시 말해 모든 지각활동이 허구라 소리요.

몸과 입과 뜻을 굴려서 일으키는 모든 작용은 환상이오.

그러니 중생이 삼업(三業)을 굴리는 이 몸을 끝끝내

'나'인줄 알고, 몸과 입과 뜻을 굴려 뭔가를

알아내는 것을 수행이나 공부인 줄로 안다면,

그건 전혀 가당치도 않은 거요.

모래 쪄서 밥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요.

 

온갖 지각활동의 성품을 밝혀야 하오.

그 성품이 바로 '참 나'요.· · · 그 '성품'은 성품이 없소.

거울의 성품은 밝음도 아니고 어두움도 아니기 때문에,

능히 인연에 감응해서 밝음도 나투고 어두움도 나투는 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성품(心性)' 역시, 기쁠 때에도 기쁨이 아니고

슬플 때에도 슬픔이 아니요, 화날 때에도 화남이 아닌 거요.

그렇게 여러분의 심성은 온갖 것을 여의고 있소.

온갖 것을 여의고 있기 때문에 능히 온갖 것에 감응하는 거요.

눈곱만큼이라도 미리 갖고 있는 게 있으면 그것 때문에 꼬여버리는 거요.

거울이 이미 비춘 바를 갖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모든 걸 비출 수 있겠소?

 

 

 

- 현정선원 법정님 법문

6월의 노래 / 이해인


숲속의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6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 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버린
아카시아 꽃 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 이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