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소용돌이치는 이 마음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2011. 8. 20. 10:2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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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어떻게 해야 소용돌이치는 이 마음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 답변 >

주재자(主宰者)가 없소. 마음을 거둬서 누가 무슨 덕을 보려하는 거요?· · ·

밥주머니가 뭔가 일을 도모하고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한

구원받을 길은 없소. 늘 환화공신(幻化空身)이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그 허깨비같은 '나'가 무엇을 어쩌려고 곤대짓 하고 있는 거요.· · ·

이건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오.

몇 십년 전부터 해온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거요.

다만 듣는 이의 지혜가 충분히 열리지 않아서,

무엇보다도 단 한 마디라도 그 말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알아차리려는 진지한 자세가 모자랄 뿐이오.· · ·

계속 상식적인 수준에서 요리조리 분별하고 취사선택하면서

어찌 이 큰 대법을 받아 가질 수 있겠소?

 

인간은 의식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이 없소.· · ·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말이오.

그렇다면 이 한 마디 말 앞에 불법(佛法)이 어떻고

깨달음이 어떻고 하는 모든 이러쿵저러쿵은

아무 쓰잘데 없는 것임을 알아서,

자리에서 툴툴 털면 되는 거요. 그런데 어떻소?· · ·

그래도 계속 '그렇다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 어줍잖은 지식, 지견들을 가지고 의식으로 더듬을 수 없는

자리를 어째보려고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거요.· · ·

그저 쭉 뻗고 다 쉬세요. 쉬려는 생각도, 경전의 말씀도.· · ·

한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용맹정진(勇猛精進)이라 했소.

 

만약 이 공부를 통해서 뭔가 공덕을 입으려고 하는

그런 시커먼 심보가 있다면 절대 이 길 갈 수가 없소.· · ·

공덕을 받아 챙길 '나'가 없기 때문이오. 그 무엇도 주재자(主宰者)는 없소.

도대체 어떤 놈이 무엇을 해서 무슨 공덕을 입을 수가 있겠소?

시종일관 실다운 것이 하나도 없는데.· · ·

한 순간이라도 조작 없는 마음에 맡길 수만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해탈인 거요.

조작하지 마세요. 뭘 어쩌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고 있는 한 점점 멀어질 뿐이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바보의 깨달음 전통적인 승가의 풍숩에 따르면,
    여름철 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음력 7월 15일) 수행승들은 안거중에
    자신이 범한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하면서 요서를 비는 의식을 행한다. 이를 자자自恣 라고 한다.
    그래서 안거나 끝나는 해젯날을 일명 자자일自恣日 이라고도 한다. 각자 자발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서 '만약 제 행동과 말에 비난을 살 만한 점이 있었다면 지적해 주십시요'
    라고 청한다. 대중에서 아무 말이 없이 잠잠하면 허물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어떤 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의 의식으로 희미해졌지만, 이것은 청정한 승가의 아름다운 풍습이다. 아무 탈 없이 안거를 무사히 마치면 법의 나이,
    곧 수행자의 나이가 한 살 보태진다. 수행자에게 육신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이 법의 나이에 의해서 서열이 정해진다. 지나온 석 달을 되돌아보니 이렇다 하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이
    공연히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면서 지낸 것 같다. 거죽은 머리 깎고 먹물 옷 걸치고 부처님의 출가 제자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과연 내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 왔는지 묻지 않를 수 없다. 모든 인간관게가 그렇듯이
    스승과 제자 사이도 신의와 예절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승의 말과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를 때
    그 스승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스승 또한 제자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상호간에 신뢰가 없으면 참다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부처님의 생존시 제자들은 모두가 뛰어난 사람들로 이해되기 쉽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요즘이나 마찬가지로 말썽만 부리던 무리들도 있었고 지능이 수준 이하인 제자도 있었다.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그 바탕이 순박하고 진실해야 한다. 이해타산을 따지는 영리한 사람보다는 우둔하더라도 순박하고 진실한 사람을 수행자가 될 '그릇'으로 여긴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출라판타카周利槃特 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요즘 말로 하자면
    철저한 돌대가리여서 넉 달이 걸려서도 게송 한 구절을 외우지 못햇다. 그의 형인 마하판타카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찍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었다. 그래서 아우를 출가시켯지만
    너무나 우둔한 아우는 형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형은 온 힘을 기울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우를 가르쳤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스님들도 그의 동생을 경멸하고 조롱하면서 놀림감으로 삼았다. 어느날 형은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아우에게 "너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승원 밖으로 내쫓았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형밖에 없던 그가 그 형으로 부터 추방당한 것이다. 쫓겨난 아우는 풀이 죽어 숭원 밖에 있는
    남의 집 처마 밑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부처님이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손을 잡고 승원 안으로 데려가셧다. "출라판타카야, 적정하지 말아라.
    너는 나를 따라 출가 했으니 내 곁에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그에게 수건을 하나 주면서 그것으로 남의 신발을 닦아주라고 일렀다. "너는 이제 머리 아프게 게송 같은 걸 외울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수건으로 남들의 신발을 깨씃이 닦는 일에 전념하여라." 어떤 경전에는 수건 대신 비를 주면서 마당을 쓸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의 수행자들은 신발이 없이 맨발로 다녔기 때문이다. 부처님으로부터
    남의 신발을 깨끗이 닦는 일에 전념하라는 가르침을 들은 후부터 그는 아무 잡념 없이 부지런히 신발만을 닦았다. 여기에서 그는 문득 깨닫게 된다. '사람의 마음처럼 더러워지기 쉬운 것은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맑히는 일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아무 잡념도 없이 정성을
    다해 남의 더러운 신발을 닦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이 정화된 것이다. <테라가타>에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는 스승의 밀씀을 듣고, 이를 깊이 마음속에 간직한 채 최상의 도리를 깨닫기 위해 마음을 한곳으로 모았다. 나는 마침내 전생 일을 깨달았다. 천안天眼 을 얻었다. 세 가지 명지明知 를 체득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현되었다. 그는 깨달음의 환희를 누리면서 망고나무 숲속에 앉아 있었다. 부처님은 시자를 보내어 공양시간이 됐음을 알려주었다. 그에게는 신통력이 생겨 공중으로 뛰어올라 스승 곁에 이르렀다. 스승의 발에 예배 드린 뒤 한쪽에 가서 앉았다.
    스승은 곧 그의 깨달음을 인정하셨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이와 같이 단순하다. 기억력이 모자란 사람은
    경전의 내용을 머리에 담으려고 애쓸 게 아니라, 단순한 일에 일념으로 몰입하면 마침내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영리함은 도리어 장애가 된다. 그 영리함 때문에 그는 한곳에 몰입을 못한다. 깨달음은 수행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일념으로 매진하면 그 일을 통해서 지혜의 눈이 열려 근원에 도달 할 수 있다. '바보돌대가리'인 한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른 그의 순박하고 진실한 성품의 덕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순박하고 진실한 마음이
    곧 도의 터전道場 이라고 한 것이다. -= IMAGE 19 =-

     

    산문집 '오두막 편지'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법정 스님의 산문집입니다.
           

        신심.분심.의심.을 내라.

        부처님을 믿는, 큰 믿음이 중요하다.

        부처가 되려는, 용기"와 용맹심인, 분심"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체험하려는, 의심이 있어야 한다.

         

        싫은일 좋은일에 끄달려 이리저리 허등지둥 쫒아 다니지 마라.

        믿음이 없거나,약하면, 이 풍진세상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목표를  정하면, 일사불란 하게 혼신을 다하여 매진해야 한다.

        좌절하지 않는 용기는, 제불보살이 도와주게 되있다. 믿어라.!

        캄캄한 밤에, 길을 가듯이 조심하며 걸어가야,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가야하는  길을, "부처님의 법".을 쫒아 가면, 성공된 삶의 길을 갈수 있게 된다.

         

        믿음은 도道.의 어머니요. 분심은 도道.를 통하는 수행.용맹심을 말한다.

        "의심의 의정"은, 물흐르는 물처럼, 멈춤없이,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부드러움 을 뜻한다.

        간곡하고, 간결한, 안타까움이 간절 할때, 관세음 보살이 몽훈 가피 하는 것이다.

         

        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면, 비로써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다.

                     얕은 꾀나 ,지식, 속좁은 견해"로는, 관세음 보살을 만날수 없다

        믿음을 향해 목숨을 버리는 용기가 없으면,"현전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혼신의 힘을 다할때, "천백억 화신"이 나타나 가피하는 것이다.

        새로운 창의력 .견해의 지혜가 발심이요,살아있는, "불심이다.

        동"이니.서"니.남"이니.북"이니.알고보면,나를 중심"할때 나타난다.

        모든일에 주인공은 바로 나(我)이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삶은 없다. 거지도 추억속의 거지다.

         

        인간이 짐승같이 추잡하게 사는 인생도 있고,

        고결하고 순결한,아름다움으로,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창조 하며.헌신과 봉사로 칭찬 받으며

        숭고 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한번 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이다.

        나를 대신해 살아주고, 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 고귀하게 살 일이다.

        부처님을 믿으라는 것은,중생의 자기에서 부처로 자기를 "업그레이드, 하라는 것이다.

         

        "웰빙이 부처님의 자비 사상이다.

        너도 이롭고, 나도 이로운 것이, 웰빙이다.

        부처를 닮으려는  마음이, 불심이다

        남여노소.빈부귀천.지위 고하를 막론 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불심이다.

         

        "인간 만이 가지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불심"이다.

                         불심으로 보고 ,불심으로 듣고,"

        불심으로 대 하면 천하에 소통"하지 못할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