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6. 10:1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 법정스님과 최인호님의 대담
최인호 : 한때 저도 진심을 출가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스님의 글 중에 계를 받은 후 승복을 입고 걸어갈 때 환희심이 넘쳤다는
구절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지요.
그래서 저도 어느 스님의 승복을 빌려 입고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압구정동 거리를 걸어 보았는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승복을 입기 전의 내가 아니었어요.
법정 : 나도 출가하여 전에 친구와 함께 축성암이라는 절에 간적이 있는데
스님은 없고 가사 장삼이 걸려 있기에 한번 입어봤어요.
옷을 입는다는것도 업인데, 뭔가 정답고 그 전부터 입었던 옷 같더군요.
그때 친구도 나를 보고 곡 스님 같다고 그랬어요. 내가 처음 절에 들어가서
스님들 바리때 공양를 봤을 때도 정말 환희심이 일었습니다.
그때 어떤 스님은 내게 삭발을 부탁하기도 했어요.
한국전쟁 직후라 미군용 나이프를 갈아 삭도로 쓰던 때인데,
나는 생전 처음이었지만 스님의 머리를 아주 잘 깎았어요.
스님도 아프지 않다고 하고 그래서 아 전생에 나는 중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금생의 출가 수행자들은 몇 생을 두고 그 길에서 지내다가 때가 되니
제 발로 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신학 대학에서는 정기적으로 학생을 모집하지만 옛날부터
스님 모집한다는 광고는 없잖아요.
승가대학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이미 승려가 된 이들이 다니는 곳이고
절에는 다들 제 발로 걸어들어옵니다.
다 인연 때문이지요 최 선생도 승복을 입었을 때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최인호 : 네. 걸음걸이도 아주 반듯해지고 진짜 자유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출가는 못했지만요
법정 : 전생에 한 번은 거쳤을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 소설도 쓰게 되었지요.
소재가 있다고 해서 아무 작가나 관심을 갖고 쓰는 것은 아니니까요.
최인호 저는 (길 없는 길) 을 쓸 때 행복했어요.
경허 스님이라는 인물에 3년 동안 몰두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길"이라고 지어 놓고 있었는데 사실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러던 중 수덕사에서 방을 하나 내주어 거기 누워 있는데 갑자기
'길 없는 길' 이라는 제목이 떠 올랐지요.
마침 다음날 아침 社苦가 나가기로 했었어요.
그래서 급히 전화해서 제목을 바궈 달라고 했죠. 그때 참 행복했었습니다.
법정 : 길 없는 길 제목이 참 좋습니다.
소리없는 소리가 있듯이 불국사에는 옛 설법전인 무설전이 있습니다.
법문을 설함이 없이 설하고 들음이 없이 듣는다는 유마경의 내용처럼
길 없는 길 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이겠지요.
형상이 없는 길. 길이란 집착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요.
최인호 : 문득 든 생각인데요.
스님께서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법정 : 그 어떤 틀에도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오래 익혀온 업이라 이 다음 생에도 다시 수도승 쪽에 서게 되겠지요.
최 선생은 어떠신가요?
최인호 : 도를 이루거나 성인이 되면 윤회가 긑나니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가장 좋은 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죠.
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며 살고 싶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싶어요.
저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행복하고 한 사람을 진정을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스피노자가 그랬던가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요.
저는 죽는 그날까지 붓을 놓지 않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 붓은 어제 쓰던 낡은 팬이거나 봄날의 김장 김치처럼 군내나는 것이 아니라
뾰족하게 깎은 향기로운 새연필이어야 하겠지요.
법정 : 소설 쓰는 일이 힘들어 울기도 다면서요. 그래도 다시 소설가로 태어나고 싶은가요?
최인호 : 저는 작가로서 인정을 받은 부분도 있고 못 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무서운 것은 작품이 일급 독자는 작가자신이라는 점이에요.
자이언트란 영화 를 보면 가난한 제임스 딘이 유전을 발견하잖아요.
그때 상대역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하죠.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요."
그러자 제임스 딘이 대꾸합니다.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겠지요."
숨이 막히게 멋진 대사 아닙니까.
상도는 백만 부쯤 팔렸는데 독자들의 사랑도 받고 돈도 생기고 다 좋은 일이지요.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고 행복에 겨워서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로 살겠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명예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 한다면
누군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겠지요" 하고 말할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스님 카프카라는 그 위대한 작가가 세상의 인정도 못 받고
아주 외롭게 죽었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 수만의 , 수천의 아니 수백 명의 사람이 인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카프카는 천만 군보다 더 무서운 자기 마움속의 무시무시한 독자 자기 자신이라는
일급 독자의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평가란 게 사실은 별 거 아니잖아요. 그건 흘러가는 것이죠
자기 자신한테 엄격한 게 더 무서워요.
나이가 들면 체력도 떨어지고 꾀도 생기게 마련인데 .
저는 정면 승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 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도 문학이라 무엇인가를 가억하는 사람도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일 저는 창작이 제 남은 삶을 채우길 바랍니다.
법정 : 중한꿈 입니다.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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