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풍부하고 윤택하게 성숙시키는 백팔참배

2011. 9. 10. 00: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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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참배

<이 백팔 참배는 수행이 되는, 그래서 매일 백팔 참배만 하면 스스로 자기 인생이 성숙 되어

 세상을 넓고 풍부하게 수확하며 살 수 있습니다. 단점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

 내가 해보니, 처음에는 2시간 걸리더니 점점 능숙해지니까 이제는 1시간 걸립니다.

허나, 앉아서 해도 매일 빠지지 않고 하면 됩니다.>

 

나의 삶을 풍부하고 윤택하게 성숙시키는 백팔참배

 

.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잘 사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며 108배를 시작합니다.

 

 

1.

지난 세월 지은 공덕이 부족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등지고

참다운 나를 망각하며 헛된 환상의 현혹에 휩쓸린 죄를 참회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

참회하고 참회함은

무시겁래로 나에게 물들어진 업의 집념들을 청소하는 것이다.

쓸어내고 쓸어내서 맑고 맑은 그릇을 만들어

청순한 상념들이 걸림 없이 뛰어놀 수 있도록

새로운 공간을 꾸미는 나의 거룩한 용맹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

남이 나에게 사랑을 주고,

기쁨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참회하고 참회해서,

마음을 비워 깨끗한 공간을 만드는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

불교는 잊었던 자기 본래 모습을 되찾기 운동이다.

세상살이에 휘둘리고

신들의 거짓환상에 현혹되고

인간들의 이기심에 허덕이며

상실된 자기

잊었던 자기

포기했던 자기

그러나 나의 어디인가엔

본래 나의 주인공이 간절히 목 터지게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래 나는 나의 그 청정한 자성불에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

자애심으로서 웃으며 받들어

모두에게 상냥한 마음의 공양을 올리는 삶이 되도록

마음을 모으며 정성을 다하는 것은

자애로운 자비의 실천이다. 그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

불교의 멋있는 점은, 합리적이며 자유스러운 데 있다.

부처라고 해서, 보살이라고 해서,

경전이나 전통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복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그 수많은 말씀 중에

<안 믿는 죄>는 한 구절도 없다.

오직 스스로 수행하고 체험해서

자기를 성숙시켜 바른 판단, 바른 이해를 요구하는

그 슬기로운 가르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

우리는 무시겁래로 세파의 탐, , 치에

항상 유혹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내가 유혹할 차례다.

, 과일 떡 등, 공양미를 올리고 부처님에게

아양을 떨면서 유혹을 해보았더니

선심 쓰듯 불성이라는 것을 던져 주었다.

그래 그 수수께끼의 불성이라는 뚜껑을 열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수행하는 그 진솔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

선은 텅-빈 하늘에 불성의 씨를 뿌리는 수행이다.

그 종자는 무와 공이다.

그를 수확하는 놈은 마음이다.

참선하고, 기도하고, 경을 읽는 것은,

그 광활한 허공에 밭을 갈고 땅을 고르는 작업이다.

그래 자기 마음을 허공과 같이하여 그곳에 씨를 뿌리면 된다.

그 씨가 싹이 트고 열매가 영글면 그 마음만 타작하면 되나니,

그를 깨침이라고 한다. 그 거룩한 깨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

세상을 다 이해하면서도 집착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탐심이 원인이다.

그 탐심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을 통찰하여

유유히 세상을 포용하는 거룩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

고뇌하고 고뇌하거라.

부질없이 껴입은 생각들을 베끼는 작업이 고뇌다.

남자와 여자, 명품과 자존심, 부귀와 영화, 사랑 미움들,

이것은 모두 무상의 씨앗이다.

이 씨앗을 나에게 잔뜩 심어 놓았으니

종국엔 무상이 솟아나고 괴로움이 솟아나는 것이다.

고뇌로부터 일어나는 괴로운 병의 처방 약은 고뇌이다.

그 고뇌를 하나로 뭉쳐 화두라는 환약을 만들어 집어삼켜라.

그것이 고뇌를 치료하는 묘약이다. 그 묘약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1.

불교가 말하는 영원해서 불멸이라는 것은,

개체의 존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기법이 가리키듯,

그 연기하는 원리만이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절대라고 할 때

부처님의 생각과는 십만 팔천 리나 멀어진다.

그래 단견을 버리고 원융무애 함에 들어감이니

그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2.

불교의 청정계율은,

참다운 진리의 계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본래 갖추어진 나의 순수한 청정계율에

잘못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과 생활이 바로 잡히기를 바라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3.

깨친다고 해서 망상과 번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망상 번뇌가 실체가 없는 것을 통찰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괴로움을 갖지 않는다.

그래 그곳에서는 사랑하데 온통 나를 바칠 따름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자기라는 자존심에 스스로 고삐를 끼고 끌려다닌다.

담담히 받아주고 보듬어주고 따라주는, 나의 성숙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4.

남편을 고치려 하거나, 마누라를 고치려 하거나,

자식 부모를 고치려거나 타인을 고치려 하지 않고,

내가 기도하고 수행해서 나를 고치니

세상이 다 내 손아귀에 들어 있음이라.

그를 포용하고 감싸주는 그 감사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5.

나는 부모의 인연으로부터 이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태어난 이상.

이 몸은 내가 주인이 될 수밖엔 없다.

부모의 것도, 세상의 것도, 당신이나 자식의 것도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다.

그래 지금부터의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며 꾸며나가야 한다.

그 슬기롭고 당당한 실상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6.

나라는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상이 좁아지어서

손톱 하나 들어갈 틈이 없다.

나 스스로 분열을 일으킴을 자각하며

모두를 이해하고 보살펴 감싸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7.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은,

그 받는 상대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는 내가 순수해지고 자애로워지는 것이다.

귀천이나 지위 나이에 차별함이 없이 공경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8.

바칩니다. 모두를 바칩니다.

속상함도 바치고,

괴로움도 바치고,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 모두 관세음보살님에게 다 바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9.

우리의 세상살이는 착각을 반복할 따름이다.

그것이 윤회가 된다.

불교에서 윤회를 죄인 취급하는 것도

이 착각이 계속 반복하며 돌고 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에서는 공이다. .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영원한 실체가 없다.

그러기에 선은 없는 무에서 영원함을 창조한다.

그 나의 영원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0.

놓아주고 놓아주어라.

이것이 세상을 내 것으로 하는 비방이다.

세상은 본래 내 것인데.

내 것을 내 것으로 하려 하니까.

내 것이라는 소득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놓아 주어야 내 것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놓아주되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라.

그 놓아 주는 게 자비행이고, 관세음보살이 되어 나타난다.

그 거룩한 관세음보살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1.

깨쳤다고 해서 하늘을 날고,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다.

배고플 때 밥 먹고, 잠 올 때 잠자는,

그 평범한 생활 속에 나의 성숙한 모습이 있음이라.

그 성숙한 나의 진여 법신불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2.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마라.

바닷물이 마르면 종국엔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의 끝은 알 수 없다.

불교는 오직 존경하라. 한다.

네 마음과 내 마음은 둘이 아니기에

내가 내 마음을 알면 된다.

그러기에 남의 마음을 간섭하려 말고 존경하거라.

일체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3.

내 마음으로부터 적대감이 사라지고, 악의가 사라지니,

나 스스로 청순해 짐이라.

자연히 외롭고 힘없고 고독한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거룩한 나의 모습이 그곳에 있음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4.

내가 나를 세상의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해방하니,

모든 불순한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청순한 마음이 세상을 장엄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이곳이 나의 왕궁이다.

당당하고 멋있어 구질구질하지 마라.

내 왕궁에는 구질구질함이 없다.

그 높고 고매한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어 주신 거룩한 가르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5.

수행은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하나로 뭉치고,

지금까지 사랑하고 미웠던 것을 하나로 뭉쳐 보아라.

그것을 화두話頭라는 의심 덩어리로 뭉치고 뭉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화두의 의심 덩어리를 깨치면

세상의 삶의 이치가 환하게 보이며

싱그럽고 상쾌한 세상의 맛을 보게 된다. 그 거룩한 가르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6.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고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자기를 깨달으면

우주의 근본 이치와 자기의 근본 이치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자기가 곧 우주의 주인임을 터득하게 하는 거룩한 가르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7.

내 몸뚱이가 수행처이다.

내 몸뚱이가 수행처이면, 내 몸뚱이가 있는 곳 전체가 수행처이다.

그래 내 영혼은 그 속에서 수행함이니

내 몸뚱이와 내 영혼은

내가 그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그러기에 누구를 탓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나의 슬기로운 지혜가 나오도록 한 불보살님께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8.

가히 얻을 것도 없고, 얻어지는 것도 없는

우주의 실체를 불교에서는 법신불이라 한다.

나의 그 법신불을 철저히 터득해 들어가

필경에는 환희의 삶을 다하는 나의 거룩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29.

천지 가득한 나의 생명, 나의 부처님,

가끔은 관음에 빌려주고,

가끔은 문수에게 빌려주고,

가끔은 지장에게 빌려주고, 그래도 남아서

미운 놈에게도 빌려주고, 예쁜 놈에게도 빌려주며

나비와 같이 세상 따라 훨훨 나는 나의 풍요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0.

내 생명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이미 흘러갔다.

오지 않은 미래에 허덕이지 않고,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이 순간밖에 없는 나의 귀하고 귀한 생명을

이끌며 영원히 성숙해 가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1.

나만 최고라는 자만의 부처를 죽이면, 우주 법계가 불국토가 되어 나타나고,

내 마음에 신을 죽이면 세상 이치가 바르게 나타나 현혹됨이 없고,

내 마음에 사랑을 죽이면 곱고 미운 놈도 없이 자비심이 되어 나타나고,

내 마음에 미움을 죽이면, 세상만사가 화평해 평화스럽고 신성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2.

풀을 먹고 나쁜 마음을 품으면

풀이 나에게 환생하여 살인자가 되고

고기를 먹고 자애로운 마음을 품으면,

고기가 나에게 환생하여 자비관음이 되니,

우주 법계에 자애심으로 가득한 나의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3.

사랑이 솟아날 때에는 사랑으로 뚫고 지나가거라.

미움이 솟아날 때에는 미움으로 뚫고 지나가거라.

지나가고 지나가서 머무름이 없이 하여라.

그래 지나가고 지나가면 사랑도 미움도 없나니

평온하고 잔잔한 나의 고요가 그곳에 있음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4.

나에게는 본래 사랑의 실체가 없음을 밝게 비추어보고

나에게는 본래 미움의 실체가 없음을 밝게 비추어보고

나에게는 본래 인과에 걸림이 없는 청정한 주인공이 있음을 밝게 비추어보아

내 것으로 하는 그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5.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나의 생명,

번뇌가 오면, 번뇌 그 속에서 나를 성취하고,

환희가 오면, 환희 그 속에서 나를 성취하며,

동서남북 가득한 나의 주인공이

걸림 없이 자유자재한 나의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6.

수행인은 자기의 생명을 창조하는 자다.

우주의 자연 이치는 우주를 창조하고,

그 창조된 자연은 나의 부모를 창조하고,

부모는 나를 창조하고

나는 나의 생명을 창조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수행하는

나의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7.

나는 우주 속에 단 하나뿐인 나의 생명의 실상이다.

그 실상의 주인공은 나일 뿐,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

그 떳떳하고 걸림이 없는 나라는 주인공은

부모를 섬기고, 남편과 마누라를 공경하고, 자식을 보호하는 데

당당하여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나의 실다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8.

불교는

어렵게 한 세상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서

부처나 신의 노예가 되고

, 권력, 사랑, 미움의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다니는 인생을 제일 싫어함이니,

자기가 반야의 지혜를 터득해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주인공은, 세상에 반항하거나 충돌함이 없이

자비심으로 충만해서

세상에 충실하고 가족에 원만하며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진여법신임을 깨우쳐주는 불보살님께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39.

탐욕이라는 노예에 끌려 다니지 않고

증오심의 지배에도 붙잡혀 얽히고설키며 쫓아다니지 않고

잘나고 못난 어리석은 굴레에도 들어가 허덕이지 않으며

삶과 죽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생 저생을 떠돌며 절망하는 번뇌에

담담히 내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한 슬기로운 지혜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0.

나에게는,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녹지 않고

증오의 번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우뚝 서서 나 홀로 돈독하고 거룩함이 있다.

그게 나의 본래 모습이고,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1.

우주법계가 내가 되면,

산은 산대로 내가 되어 나타나고,

물은 물대로 내가 되어 나타나며,

미운 놈이 오면 미움은 미운 대로 내가 되어 감싸고

고운 놈이 오면 고움은 고운 대로 내가 되어 승화시키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2.

참다운 불성은 출가와 재가를 구별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게 편하면 혼자 있어라.

둘이 있는 게 편하면 둘이 있어라.

그러나 조건이 있다.

혼자 사는 것은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둘이 살려면 상대를 이해하고 감싸며 받드는 희생을 요구한다.

우리가 이 세상 나온 것은 한바탕 멋있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에 멋이 있으려면 집착 없이 세상을 집어삼켜라. 그 충만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3.

모든 생명의 주인인 실체는,

나와 세계가 둘로 나누어지기 이전에 그 본래 청정한 모습이다.

그것이 나의 순수한 생명의 실상이기에,

그 본래 나의 실상을 바르게 찾아서,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세계라는 무대에

숭고하고 성스럽게 활달히 활약하도록 정진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4.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오직 생각에만 남아 활개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면서 생각만 앞서 소용돌이치지만

나의 현실은 내 생각에 따라서 장엄되나니

지나간 과거는 청순한 문수로 장엄하고

오는 미래는 관음의 자애심으로 나타나니

그 찬란한 장엄세계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5.

나는 우주 속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나의 주인이다.

내가 괴로우면 세상이 괴롭고

내가 슬프면 세상이 슬프고

내가 기쁘면 세상이 다 기쁘다.

그래 나에게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기에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이 되어 나타나고

미움이 될 때는 미움이 되어 나타나지만,

그 활달하고 자유스러운 내 주인공에게 자비가 되어 나타나기를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6.

비우고 비워라.

사랑을 비우고

미움을 비우고

집착을 비우고, 사량분별을 비우니

그리움도 녹아내리고 원망도 녹아내려서

그 녹아 흘러내리는 곳에 새로운 생명이 창출함이라,

새롭게 솟아나는 나의 생명의 거룩하고 멋있음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7.

한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은 연기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법칙 이전에 불생불멸의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 있음이라.

수행자는 원인과 결과를 쫓아가지 않고, 오직 이 순간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끊어진, 적나라한 나의 실상에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8.

행복하려면, , 명예, 사랑만 가져서 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 법

마음에서 집착하고 있는

내 것이라고 규정짓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아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놓아주고 다시 걷어 들이는,

마치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고

언제나 그 딸을 사랑하며 보듬어주는 것과 같이

이것이 바로 어머니와 같은 관세음보살이시니, 그 관음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49.

불교는 중앙과 변두리가 없다.

항상 내가 중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중앙의 한 가운데 있어서 일체가 나로부터 시작된다.

사랑도 나로부터 시작 되었고

미움도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번뇌도 내가 주인이고

망상도 내가 주인이다.

꺼들거리고 덜렁거려도

내가 주인일 수밖에 없는 철저한 현실을 통감하고

원망 없이 슬기롭게 살아가는 진실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0.

나에게는 침묵이 있다.

그 침묵이 내 인생의 중심이기에,

슬픔을 받아들이고,

기쁨을 받아들이고,

일체를 다 받아들여도

내 삶의 중심이 항상 그곳에 있어서

잔잔히 미소로 내 삶을 어르러 승화시키는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1.

종교성은 단순한 초자연적인 믿음이나

경험적인 지식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참다운 삶의 진정한 가치는 믿음도 경험도 초월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지어지지 않고,

믿음이나 경험 이전에 나하고 짝한 불변의 실체가 있기에,

그 나의 짝에 지심으로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2.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으면서,

내가 가면 가는 곳에 있고, 내가 오면 오는 곳에 있어서

언제나 나를 구속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며

내가 어리석을 때에는 어리석음이 되어 나타나고

내가 지혜로울 때에는 지혜로움이 되어 나타나서

그 어떠한 세계도 수용하고 감싸며 성스럽게 살아가는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3.

천 년이 흐르고 만 년이 흘러도,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천 년이 흘러가고, 만 년이 흘러가도 내가 지금 여기 있듯이

그곳에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의 주인과,

그렇다고 긍정하는 너의 주인이 서로 만나서

이렇게 한 세상을 장엄하는 나의 실상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4.

나에게는 부처도 신도 간섭할 수 없는 한 물건이 있다.

배고플 때 밥 먹고, 잠 올 때 잠자고,

화날 때 화내고 기쁠 때 기뻐하며,

때로는 부처를 찾고, 때로는 신을 찾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어

가고 오면서 천하에 걸림 없이 담담하고 그러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5.

산과 들, 풀잎 하나하나마다, 진리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으니

괴롭고 속상한 것 하나하나마다, 진리를 벗어난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진솔한 소식을 밝게 증명해 주신 모든 부처님, 모든 조사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6.

내 마음은 찾아도 찾아지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으면서

추울 때에는 추운 것을 알고

더울 때에는 더운 것을 알며,

사랑과 미움으로 인생을 고뇌하면서

그 고뇌하고 허덕임이 집착에서 오는 것임을 터득한 주인공이,

그 집착을 벗어나 지혜 덕성에 나아가는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7.

진리란 어리석음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요.

그 본질만 터득하면 지혜가 되어 나타남이니

어리석다 멀리하지 않고,

영리하다 가까이하지 않고,

번뇌 망상에도 도망치지 않으며,

그 본질을 요달하여 내 생을 윤택하게 하는 진솔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8.

불교의 경전은 깨침에 이르도록 하는 바른 가르침이다.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허덕이는 중생들을 보고,

부처님이 바르게 가도록 가르침을 주신 말씀뿐이요.

아무리 좋은 성인의 문구라 해도

수행하지 않아 성숙한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림 속의 떡과 같음이라.

그 바른 행에 인도해 주는 선지식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59.

수행이라 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덮고 있는 불안의 구름을 걷히게 하는 것이다.

본래 덮일 것 없는 것을 자기 스스로 집착의 구렁텅이 속으로 들어가

막고 가려 암흑세계를 만들어 벌벌 떨고 있는 것뿐이다.

이에 역대 불보살들이

집착의 구름을 헤치고 밝은 태양과 같은 지혜가 비치는

세상으로 이끌고 가르치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0.

불교는 번뇌를 재료로 하여 깨침에 이르는 종교다.

그래 깨치기 위해서는 번뇌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재료로 쓸 줄 알아야 한다.

번뇌를 재료로 하는 기술, 그 기술은 기도나 참선이다.

그 참선의 제일 조건은,

집착의 유혹에 빠져 허덕이며 혼탁해지는 상년들을

하나로 뭉쳐 집어삼키는 것이니

그 집어삼키는 방법은, 화두로써 화두를 뚫고 지나가야 함이라.

그 뚫고 지나가는 고고하고 강한 나의 정진력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1.

모든 것을 부정한다.

부정하고 부정하면 같은 하나가 된다.

그 하나를 긍정하면 나를 긍정하게 되고,

나를 긍정하면 절대의 진리가 나와 한 짝이 되어

내가 세상에 찬란하게 주인이 되어 나타난다. 이 멋있는 순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2.

내가 지금 땀을 뻘뻘 흘리며 절을 한번, 한번 하는 이 순간은

하고 적적寂寂하다.

그건 고요이고 정적의 침묵이다.

그 정적의 침묵 속에서

사랑이 있고 원망이 있고 미움이 있고 소원이 있으나

내 생명의 실상은 고요 속에 선명하고 선명해서 광활한 우주에

나 홀로 우뚝 서, 장대하고 숭고함만 있을 뿐이다. 이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3.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고요히 하니,

맑고 밝아서

사람을 만남에 사람이 진실해지고,

일하고 사업을 함에 무리한 욕심이 나오지 않아 현혹됨이 없어,

하루하루가 성실하고 근면해지는 정토세계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4.

마음을 허공과 같이하니

사랑과 미움이 모두 그 안에 있다.

한갓, 분별하는 인간의 앎과 모름만 가지고 잣대질해서

세상을 어찌 평가하겠는가.

내 손바닥 안에 세상사가 모두 들어 있으니

맑은 유리알 보듯 꿰뚫어 봄이라,

대담하고 활달하여 활발발하게 걸림 없는 그 영성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5.

내 마음에 청정심을 갖는 것이 불심이다.

불심을 갖는 것은 어리석고 미혹한 마음을 바로잡기 위함이니

이 참다움을 소유하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6.

수행은 부수고 부수는 것이다.

무엇을 부수냐. 생각을 부수는 것이다.

마치 금을 얻기 위해서

바위나 돌덩이를 부수고 부숴서 금을 추려내는 것과 같다.

부처를 부수고, 신을 부수고, 조사를 부수고, 성인을 부수고, 진리를 부숴서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보아라.

너의 숭고한 영성이 그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리니, 그 빛나는 영성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7.

지극한 사랑은 침묵이다.

침묵 속에는 진실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거짓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깊고 높고, 무한하여 자기의 생명을 다 바치는 사랑은 언어 이전에 있다.

이 거룩한 침묵의 사랑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8.

나나 너는, 본래 청정하다.

그 맑고 맑은 것은,

더럽고 깨끗한 분별을 벗어난 본래 맑음이다.

그래 그 맑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여

걸림 없이 자유자재 해져서, 고뇌가 오면 고뇌하고,

기쁨이 오면 기뻐하며 걸림이 없다.

그 당당하게 우뚝 선 나의 거룩한 모습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69.

맞추어 주고, 맞추어 주어라.

어머니가 갓난아기에게 맞추어 주듯이,

사랑하는 연이끼리 서로를 감싸고 맞추어 주듯이,

맞추어 주고, 맞추어 주는 곳에서 한 번 더 맞추어주면 관음이 되나니,

그 거룩한 관음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0.

불교는 사색하는 것이 아니다.

사색에서 사색을 뚫고 지나가는 사색을 해야 한다.

그게 참선으로서

생각에서 생각을 뚫고 지나가고

사랑에서 사랑을 뚫고 지나가고

미움에서 미움을 뚫고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간 그곳에서

그대를 감싸고 사랑하는 나의 슬기로운 영성이 나타남이니

그 슬기로운 영성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1.

나의 성품은 언제나 그 자리다.

보낸 적도, 떠난 적도, 온 적도 없다.

없는 그곳에서 내가 있으니, 보낼 것도 맞이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을 휘어잡고 놓아다 당겼다 하며 영겁을 흐르며 쌓아놓지 않았는가.

그 쌓아놓은 업을 오늘 내가 다 회향하여

참다운 불법에 지심으로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2.

진여 불성은, 크고 커서 광활하다.

이것은 짧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다.

또한, 검거나 흰 것도 아니면서

곳에 따라 때에 따라 검고 희게 나타나

사랑이 되었다가 미움이 되었다가

내 자유대로 쓰고 써도 다함이 없는 그 무한한 영성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3.

침묵은 모든 생각을 지배한다.

침묵은 모든 소리를 지배한다.

그 말 없는 침묵 속에 무엇인가 태동함이 있다.

그 태동은 우주의 움직이는 소리,

나의 심장이며, 나의 영성이다.

그래 그 소리는 향기로운 진리의 노래다.

그 향기를 맡으면 누구나 행복해지는 침묵의 소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4.

나의 생명 속에는 본래 성스러운 나의 진면목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영로靈露한 나의 영성을 저버리고 망령되이 나쁨과 좋음의 분별심으로

이리 쫓고 저리 쫓아 허덕이며 지금까지 왔다.

한 생각 놓아 버리니

끈끈하게 붙어 있던 속박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나의 성스러운 용기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5.

불교는 인간의 근본을 말하는 종교다.

그 근본만 바로 알아 자기 것으로 하면,

얽히고설키었던 만 가지 세상 인연들이,

햇빛이 비치면 한순간에 어둠이 사라지듯,

모든 이치가 화통하게 알아진다.

이 신기한 이치가 있음을 가르쳐주신 조사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6.

마음과 몸뚱이는 둘이 아니다.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산란함과 고요함은

오직 내 마음의 파동에 의해 몸 따로 마음 따로 논다.

그 따로따로 노는 그놈을

본질에 이르러 허덕이지 않도록 일깨워 주시는 선지식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7.

참다운 지혜는 업이 되는 모든 인식을 소멸시키어

가 되는 곳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본래 인식이 본래 청정함이고,

업이 본래 청정한 것이니,

그 청정한 세상을 공이라 말할 뿐이다.

그 청정한 세상에 내가 있게 하여 주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8.

인생의 본질은 허공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본질이

가지고 온 것 없고 가지고 갈 것 없듯이.

그의 참 실상을 바로가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 본질의 실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의 지혜가 아니면 들어 갈수 없다.

그 진실 됨을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역대 조사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79.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다.

없는 무로서 재산을 삼으니

쓰고 써도 바닥이 안 보인다.

사랑하고 사랑해도 그 사랑을 다 쓰지 못하고 남는다.

용서하고 용서해도 또한 용서할 게 남아있다.

주고 주어도 남고 남아 철철 넘쳐 손해 본 것이 없다.

이렇게 풍부한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시는 제불보살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0.

우리는 허공을 장엄하는 것이다.

그 허공 속에

청정한 법신불을 장엄하고

원만한 보신불을 장엄하고

우리 중생이 원하는 곳엔 언제나 나타나시는 부처님으로 장엄하고

아미타불이 우리 중생들에게 극락세계를 장엄해 주시니

그 장엄세계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1.

태어난 자는 언젠간 죽는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부처님이 장엄해 주신, 나의 극락세계로 간다.

내가 살아생전에 꾸미고 가꾼 나의 부처님 세계로,

그러나 지옥을 꾸미면 지옥세계로 가게 된다.

내가 꾸미면 꾸민 세계로 가게 마련이다.

나는 그 찬란한 부처님의 극락세계를 짓고 꾸미고 장엄해서 감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2.

모양으로 형성되는 세계는 사바세계이다.

그 사바세계를 초원한 세계가 공의 세계이다.

참으로의 영성은 초월이라고 해서 환상에 복종하는 세계도 아니다.

공도 초월하고 현상도 초월해서

버려도 있고 차지해도 그만치 있어

그곳에 항상 존재하는 게 나의 영성의 세계이다.

그 참다운 나의 영성의 세계에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3.

역사를 헤아림도 없고

그리움에 사무칠 일도 없고

오는 사람 오는 대로 받아주고,

가는 사람 가는 대로 보내주고

나는 몇 만 년 동안

추위에도 더위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후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소멸한 뒤에도 찬란하게 우뚝 선 나의 숭고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4.

하늘은 내 그림자다.

그래 하늘이 텅 비어있는 것은

본래 비어있는 내 마음의 그림자가 비추어진 것이다.

그 비어있는 공간에 사랑도 쑤셔 넣고, 미움도 쑤셔 넣어

무겁게 인생의 짐만 쌓고 쌓아 힘들고 지친 내 욕망의 수레를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주신 선지식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5.

인생살이의 괴로움은 내 스스로 자제 못하는 욕망에 의해서이다.

그 욕망을 항복시키는 방법은 수행이다.

그래 마음이 산란하면,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잘 다듬는다.

그게 화두나 염불로서, 그를 승화시켜 주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6.

내 마음의 제일 높은 곳,

그 곳에 오르고 올라서 힘껏 우주를 집어삼켜 보아라.

내 부족한 상대라도 하늘과 땅 사이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몸

받들고 보살피고 존중 해 주니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잘났어라.

이는 우주를 집어삼키는 능력이 없이는 안 되느니,

그 사실을 귀띔해 준 선지식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7.

한사람은 칼날같이 뾰족한 산꼭대기에 있어

올라 갈 수도 내려 올 수도 없고

한사람은 번잡한 네거리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활로가 없다.

내가 그곳에서 생명의 활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의 집착에 걸리지 말고 그냥 쑥- 나가면 된다.

이러한 생명의 실상을 터득한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8.

달릴 땐 질풍과 같고,

느슨할 땐 코끼리와 같고,

쳐들어갈 때에는 성난 사자와 같고,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바위와 같으며,

때로는 밤을 새워 고뇌하지만

생각이 정리된 후에는 폭풍 후 맑은 하늘과 같이

상쾌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나의 슬기롭고 용맹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89.

크고 큰 진실한 법의 성품

말을 벗어난 곳에 있어 생각으로는 가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말 없는 곳에 찾는 것도 아니며

생각 밖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자존심 버리고 땀 흘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자기 집에 돌아와 편안히 목욕하고 난 상쾌함,

그 감사함 속에 진리의 법을 성취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0.

불교의 선, 생활 윤리와 종교 윤리가 둘이 아닌 데 있다.

불교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신비적 환상에 귀의가 아니라 경험적 지식의 성숙이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의 성숙한 의지는

차별과 차별 속에 살면서 차별을 뛰어넘는 의지의 형성이다.

이 거룩한 진여불성에의 승화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1.

일체를 공경하라.

공경하고 공경하는 곳에 자기의 번뇌 망상을 항복시킬 수 있다.

첫째는 나를 공경해야 한다. 내가 공경스러울 때 모두가 공경스럽다.

그리하여 나와 인연 된 사람들을 공경하고

스승과 불보살님을 공경하며

삼라만상에 펼쳐지는 자연을 공경하면

산란하게 분열하는 마음을 항복 받게 되나니, 이 거룩한 법칙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2.

찬탄하고 찬탄합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찬탄합니다.

나를 맞이해 이해하고 감싸주며 헌신하는 당신에게 찬탄합니다.

이 세상을 각자 각자가 환경과 모양과 성품이 다르게 태어났으면서도

서로 이해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친구와 이웃에게도 찬탄합니다.

불만에 가득한 세상을 찬탄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신 부처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4.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내 인생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 · , 나는 그를 끊으려 하지 않는다.

끊어도 끊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생사열반의 본래 평등함을 깊이 통찰하고

대자비의 지혜로

욕망과 집착을 함께 거두어 자비심이 되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4.

사람은 본래 만 가지 생각을 하도록 꾸며져 나왔다.

괴로움도 나의 작용이며

기쁨도 나의 작용이다.

자비만 최고라고 하여도 반쪽이요.

지혜만 최고라고 하여도 반쪽 인생밖엔 안 된다.

본래 평등한 근원에 서면,

자비와 지혜가 둘이 아님을 통찰하게 되나니,

거룩하게 성숙된 나의 진여법신불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5.

사랑이 있어 사랑에 온 일생을 바치고

미움이 있어 미움에 온 일생을 소비하고

그곳에 다 바치고, 다 소비하니,

이제 나는 사랑에도 미움에도 우뚝 서서

사랑은 보배의 구술이 되어 나를 장엄하고

미움은 보배의 구술을 도와 나를 장엄하니

빛나고 황홀하여라,

진여의 꽃방석 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6.

사람의 마음은, 자기 마음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뛰고 싶은 대로 뛰고 나르고 싶은 대로 나른다.

그러며 사랑에 붙으면 사랑꽃이 되어 나타나고

미움에 붙이면 미움 꽃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서

남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가 난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없는 법, 마음노름에 허덕이지 말고

바른 마음, 바른 행위로 그 근본 이치를 터득하라. 하는 가르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7.

불교의 가르침은 쉽고 간단하다.

본래 영원한 실체가 없는 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여 집착하므로 괴로움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 집착을 버린 곳에서 열심히 사랑하고,

그곳에서 돈도 열심히 모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다 버린 곳에서 다 거둬들이고,

그것을 다 거둬들인 나를 세상에 바치는 것이 자비심이다.

그 거룩한 나의 자비심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8.

반야 지혜의 실체인 진여로 근본을 삼으니

세상살이의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만 가지 형상들도

영로靈露한 빛을 내며 신령스러운 자비로 나타나네.

그 묘하고 묘함이어, 내 그 속에서 같이하는 성스러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99.

참선에서는 의심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의심을 끊으라, 한다.

이는 근본 자체가 의심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공()이다. (). 아니다(). 하고 말하지만

그러나 우리들 눈앞에 있는 현실은

나라는 존재가 염연히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래 자기스스로 한번은 의심을 품고,

그 의심에서 자기 스스로 해소가 될 때,

본래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이 묘한 법을 가르치고 이끌어주시는 선지식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본래, 모양 없는데 있는 게 산이요.

본래, 모양 없는데 있는 게 물이다.

마치 너와 나의 모습도 그와 같아서

나의 모습도 태어나면서 부터 형체를 갖춘 나라는 그림자다.

너도 또한 그러하니,

이 그림자가 삿된 견해와 교만에만 물들지 않으면

그 그림자가 청정한 내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그 나타난 게 진여의 법신불이다. 그 진여의 법신불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1.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절대 가치를 나타낸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에 절대 가치를 두지 않는다.

하나 이전의 본질에 절대 가치를 둔다.

생각으로 꾸며진 절대는 영원한 절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꾸며지기 이전, 가 갈라지기 이전의 절대 가치를 요구한다.

그 불변의 가치에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2.

인간들은

스스로 마음에 창살 없는 감옥을 지어놓고 그 속에 갇혀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 중생이다.

스스로 지었으니 스스로 허물어야 한다.

마음으로 지었으니 마음으로 허물 수밖엔 없다.

불법은 곧 마음으로 지은 감옥을 마음으로써 허물어가는 길이니

그래서 집착을 버려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자재한 관세음보살이 되나니,

그 자유자재한 관세음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3.

참고 참는 것은 비굴함이 아닌 자신 있는 인생의 증표다.

어찌 세상이 나에게만 맞추어서 꾸며져 있겠는가.

남편은 남편의 세계가 있고

부인은 부인의 세계가 있고

자식은 자식의 세계가 있고

부모는 부모의 세계가 있고

태어난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세계를 짊어지고 나왔다.

그뿐인가, 서양 사람인들, 동양 사람인들,

그리고 국가와 민족 간의 생각이 다름이여.

넓고 크게 보면 참을 것도 없나니,

그 모두를 포용하고 존중하는 나의 거룩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4.

반야의 지혜는 수행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지식과 분별력은 세상의 경험과 논리적 추구력에 의해서 쌓아지는 철학이다.

그래 두루두루 경험하고 아는 지식을

반야의 근본 지혜를 기준으로 해서 합리적 이성으로 성숙시키는

바른 이해, 바른 판단이 요구된다.

이 바름에 귀의하는 나의 슬기로움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5.

자기가 자기를 모를 때에는

자기를 비추어주는 거울에 비추어보아라.

그 거울은 사회 일반이다.

첫째는 배우자.

둘째는 가족들

셋째는 사회다.

그 반응이 자기의 모습에 의해서 나타나는 거울이지만,

불교에서는

자기의 본래 모습은 거울에 비추기 이전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 순수 모습에 귀의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6.

에서의 무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는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 있다.

무는 없어질 것이 없기에 항상 그 자리이다.

그래서 부동不動이고 영원불멸이다.

그곳에서 움직이면 창조다.

세계가 창조되고

내가 창조되고,

행복이 창조되고,

불행이 창조된다.

그래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는 내가 주인이 되며,

주인공이 될 수밖엔 없다.

그 거룩한 주인공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7.

진리를 별도로 세우지 않으니

진리 아닌 것이 없다.

진리는 사실 그대로의 실상이 진리다.

그 참다운 실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별도로 수행을 못 하면

자기를 바르게 길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 저절로 기쁘고 행복해 지는 법이 백팔참배이다.

참배하고 참배하는 나의 거룩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합장 공경하옵니다.

108.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거듭 참회하고 발원 하옵나니,

저의 진솔한 마음에 보리종자가 심어져

참된 불성이 나타날 수 있도록

자비심으로 거두어 주시옵고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청하오며

지극한 정성으로 백팔 참배를 마치옵니다.

 

관세음보살님에게 귀의해 의지합니다.

관세음보살님에게 귀의해 의지합니다.

대자대비하시어 모든 중생의 고난을 다 건지어주시는 관세음보살님에게

귀의해 의지하옵니다.

 

<합장 공경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또한 이때 절을 한다..>

 

 

 

 

내 안에 짐승이 산다


 

내 안에 사는 짐승과 만나야 한다.
고요한 때를 가려 조용히 만나 잘 타일러야 한다.
누구를 원망도 말고, 불현듯 성내지도 말고,
타인을 부러워하지도 말며, 네 것이 아닌 것은
욕심내지 말라고 간절히 타일러야 한다.


내 안에 사는 짐승을 달래야 한다.
네 능력과 네가 가진 것과 네가 아는 만큼 만
그 이상은 탐심이며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교만하지 말고 단아함을 지녀 낮추어
겸손하라고...

 

내 안에 사는 짐승을 조용히 만나 윽박지르며
협박이라도 해야 한다. 구름처럼 소슬바람처럼
강물처럼 고요히 흐르라고...
 


- 최다원 님의 '내안에 짐승이 산다' 중에서*

 

사랑할 수 있다면 -  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