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실천이다/임제록ꡕ을 통한 선 공부

2011. 10. 14. 22: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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ꡔ임제록ꡕ을 통한 선 공부

 

1. 공부는 실천이다

도 닦는 이들이여! 출가한 이라면 모름지기 도를 배워야 한다.

나의 예를 들면, 과거 한 때에는 계율에 마음을 두기도 하고 경과 론을 탐구해 보기도 하였으나, 뒤에 이것들은 세상을 구제하는 약이며 드러내 보이는 말일 뿐임을 알고서, 일시에 이것들을 버리고 도(道)를 묻고 선(禪)을 찾았다. 그 뒤 큰 선지식을 만나보고 나서야 비로소 도를 보는 안목이 분명해져서 천하의 노스님들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바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몸소 찾아보고 갈고 닦아 하루 아침에 문득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공부란 곧 실천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듯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실행하는 것이 공부이지, 머리 속에 관념으로 기억하는 것이 공부는 아니다. 마음공부와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고, 종교와 철학의 차이가 바로 이 점에 있다.

무엇보다도 관념적(觀念的) 지식으로 기억하는 것을 일삼아서는 안된다. 지식은 관념적으로 의식(意識) 위에 그린 그림에 불과하다. 관념적으로 그린 그림이기에 지식은 허망할 뿐, 진실하지 못하다.

우리가 보통 겪는 삶은,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서 관념이라는 그림을 그리고서, 그 그림을 진실하게 여겨 집착하여 애지중지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 위에 그리는 관념의 그림은 마치 허공 속에 불꽃 놀이를 하듯이 물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리고 있는 순간에는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의식 위에 잔상(殘像)으로 남아 있는 기억일 뿐이다. 요컨대 진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의식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마음이다.

마음은 정해진 모양이 없는 재료이어서 어떤 의식의 모양도 만들지 않을 때의 순수한 형태로는 알려지지 않는다. 모양 없는 재료인 마음이 모양으로 나타나는 의식이라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평소 우리는 의식이라는 나타나 보이는 물건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재료가 되는 모양 없는 마음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진실로 실재하는 것은 재료인 마음일 뿐이고, 모양있는 의식은 그 재료인 마음이 순간 순간 연출해내는 허망한 모양일 뿐이다. 마치 물결이 이는 물을 보면 물결만이 드러나 보이지만, 사실은 물결은 순간 순간 지나가는 허망한 것일 뿐이고, 다만 물이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늘 다양하게 나타나는 물결만을 보고 물결에 관심을 가질 뿐인 것처럼, 늘 다양하게 나타나서 경험되는 의식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의식은 허망하게 지나치는 순간들의 잔상일 뿐임을 모르고, 진실로 변함 없이 움직이고 있는 마음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마음공부는 헛된 것에 가리워서 진실한 것을 못보고 있는 상태를 극복하여 진실을 바로 보는 일이다. 다시 말해 모양[相]에 눈이 가리워져 모양만을 쫓아다니는 삶을 극복하고, 모양 없는 진실이 진정한 본질임을 확인하여 모양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 바로 마음공부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곧 진실을 찾는 일이며 실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공부에는 오로지 실천이 있을 뿐이고, 어떤 허망한 관념적 이론에도 매달려서는 안된다. 실천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로 지금 자기의 모든 행위에서 진지하게 마음을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행위에서 참으로 진지하고 절실하게 변함 없이 바탕이 되는 진실을 탐구한다면, 마음공부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 김태완

 

 

 

해인사 싸리비 /손 인호


가야산 해인사에서 본 싸리비
가을이 오면 이 싸리비가 낙엽들을
솨악 솨악 모으겠지

내 마음에도 커다란 싸리비 하나 만들어
잡다한 생각 나부랭이들
허튼 욕심, 바보 같은 버릇
솨악 솨악 쓸어버리고 싶다

나는 해인사에 세우겠다는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보다
한 구석에 쌓아놓은 싸리비에게나
절을 올리련다

불상이 크면 뭐 하나
차라리 큰 싸리비 하나 만들어
세상의 때를
솨악 솨악 비질이나 하지
그게 부처님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