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희운 선사 7 / 있고 없음이 다 망상이다

2011. 10. 21. 08: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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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지심경 106 /황벽희운 선사 7 / 있고 없음이 다 망상이다

 

師云 法本不有 莫作無見 法本不無 莫作有見 有之與無 皆是情見

황벽 선사가 말씀하였다. “법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없다는 견해도 내지 말고, 법은 본래 없는 것도 아니니 있다는 견해도 내지 말라. 있음과 없음이 다 생각으로 난 견해이다.”

 

해설 : 법이란 진리다. 즉 참다운 이치, 올바른 이치다.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으로 태어나서 영장답게, 즉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참되고 바른 길을 알고 그 길에 맞게 사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참되고 바른 길이란 있음과 없음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러면서 있음과 없음의 두 쪽을 다 수용하면서 사는 것이다. 예컨대 배가 강물을 따라 바르게 진행하려면 오른쪽과 왼쪽의 어느 쪽에도 기울지 말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양 쪽의 언덕 때문에 강물이 흐른다고 하여 어느 한 쪽에라도 치우쳐 정박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바르고 참된 삶이란 서로 상반되고 차별된 삼라만상과 일체만물을 다 수용하면서, 그리고 그 어느 것에도 치우쳐 기우려지지 않고 사는 일이다. 그것을 백장 선사는 여기에서 법이라고 한 것이다. 즉 있음과 없음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그 때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이 열린다. 정으로 난 견해란 치우쳐 기울어진 삶을 말한다.

 

 

황벽희운 선사⑧

 - 마음에는 망상이 없다

 

又云 妄本無 卽是汝心所起 汝若識心是佛 心本無妄 那得起心 更認於妄

백장 선사가 또 말씀하였다. “망상이란 본래 실체가 없고 곧 그대의 마음에서 일어난 바다. 그대가 만약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안다면 마음은 본래 망상이 없는 것이니, 어찌 마음을 일으켜서 다시 망상을 오인하겠는가.”

 

해설 : 일반적인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번뇌와 망상이 분명히 존재함으로 그것을 어떻게 하든 없애고 소멸하여 번뇌가 다 사라진 뒤에 성불에 이른다고들 한다. 그러나 백장 선사는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공연히 스스로 번뇌가 있다는 생각을 한 뒤에 다시 없애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마음은 본래 망상이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스스로 망상이 있다는 마음을 일으켜서 다시 망상이라고 오인하는가.

필자도 한 때는 망상이 본래부터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망상이 있다고 가르치는 방편상의 경전이나 어록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송광사 문수전 선방에서 정진할 때였다. 새벽 3시에 예불을 하려고 문수전 옆에 있는 관음전 법당으로 가는데 캄캄하여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매일 하던 예불이라서 눈을 감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길이며 익숙한 일이었다. 법당 문을 열고 탁자 앞으로 걸어가서 성냥을 그어서 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 온 법당은 순식간에 환하게 밝았다. 법당은 그 많은 어둠이 새어나갈 아무런 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어둠은 사라졌다. 어둠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착각하여 본래 어둠이 있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움 그 자체가 그대로 밝음이다. 사람들의 번뇌 망상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다만 있다고 착각하였을 뿐이다. 세상은 온통 광명 천지뿐인데 맹인이 스스로 세상이 어둡다고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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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Zen)이 추구하는 바는 말이나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으로 참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상황과 자기의 처지,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똑바로 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주제파악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주제파악한 인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정성껏 몰입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집착을 떨치고 포기를 합니다.  그러니 하는 일마다 순조로울 수 밖에요.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한 평생 잘 살아갑니다.

 

부처님이 깨우치신 바는;

1번 "모든 것은 영원불멸치 않고 변한다(제행무상)",

2번 "그러하니 "나"라고 집착할 어떤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제법무아)"

3번 "그럼에도 자꾸 집착하면 삶은 곧 고통이다(일체개고)",

4번 "그러하니 어리석은 집착을 떨치면 열반이다. (열반적정)"

입니다.  위의 3개만 추려서 3법인이라고도 하며 4번까지 포함해서 4법인이라고도합니다.

 

삼법인은 불교의 핵심가르침으로서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이 삼법인으로 귀결됩니다.  삼법인의 가르침이 담긴 팔만대장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교학"이라하고, 삼법인의 가르침을 실질적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인과불락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를 3법인에 비추어 잘 참구해 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말이되겠습니까?

무상과 무아입니다.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주변 모두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 없이 나라는 것이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남을 구별하고 나에게만 집착하는 것이 무의미해 지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깨달았답시고 "나는 인과에 떨어 지지 않는다고 마구 행동하고 남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불쾌하게 하고 아무렇게 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깨달은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간혹 깨닫는 다는 것을 신통방통한 초능력이 생겨서 전지전능해지는 것쯤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런 것에 집착해서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게 수행하지만 깨닫기만 하면 인과에 떨어지지도 않고 나고 죽지 않는 능력을 얻고...신도들에게서 존경도 얻고...돈과 명예도 따라오지 않을까?  의식적으로야 청빈한 수행자인척 하지만 내심 무의식적으로라도 정도의 차이지 집착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깨달음 과는 정반대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인과에도 떨어지지 않나요?"  그런 질문한다는 자체가 내심 무의식적으로 "전지전능"을 바라는 욕심꾸러기의 본심을 보이는 질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을 숨기려해도 결국은 다 본 바닥이 드러나게 되지요.

 

진정 깨닫는 것은 무상과 무아인 현실의 이치를 깨닫고 무상한 것에 대한 집착을 여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같은 것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살은 또 죽음에 집착하는 행위니까요.  주어진 현실과 인연을 긍정하고 자신의 주제파악을 하고 열심히 현실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아입니다.  그러니 만물은 모두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깨달은 사람은 자연스레 나와 주변 모두를 위해서 착한일과 공덕을 쌓는 일을 많이 하게 되겠지요.  그럼에도 내가 착한일한다, 공덕 쌓는다, 하는 그런 집착도 없는 것이 바로 인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겠지요.  오로지 행함이 있을 뿐입니다.  무아이기 때문에 착한 일했다고 생색내는 "나"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진정 깨달은 사람은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실천됩니다.   

 

불이 뜨겁다고 아무리 가르쳐봤자 실질로 불의 뜨거움을 느껴본 것만 못합니다. 

선은 무상과 무아의 도리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절실히 사무치게 느껴서 깨닫는 것입니다. 

 

제자인 황벽스님이 스승인 백장스님의 뺨을 때리니 백장스님이 웃으셨다는 것은 백장스님이 황벽스님을 인정해준 셈이겠지요.  인정했다는 것은 황벽스님이 무상과 무아를 사무치게 깨달아서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거리낌 없이 저절로 행동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은 말로 설명한다고 해봤자 결국 서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착을 여의고 무상과 무아를 진짜 사무치게 체험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끊어진 그 자리를 서로 깨달았는가 법거량하면서 확인하는 방편으로 옛 선사들은 할(고함)과 방(몽둥이)등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

 


 

운주사 잔디밭의 석불 와상

[운주사 가수 정솔모]   09년 찬불가요 대상곡

정솔모/운주사

 
운주사  돌고돌아 천불 미소에 빠져드니
이내 마음 어느것도 물이어라 구름이어라
흘러 흘러 잘도 간다 절로 절로 잘도 간다 
사랑도 눈물도 부질없는 욕심도
천불에 보내리라 천탑에  보내리라
천불 천탑 운주사여
 
천불산  돌고돌아 와불 고요한 풍경소리
이내 몸 갈 곳 잃어 산이어라 바람이어라
절로 절로 잘도 간다 허이 허이 잘도 간다
중생에 지은 죄 씻을길이 없어라
천불에 보내리라 천탑에 보내리라
천불 천탑 운주사여
천불 천탑 운주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