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의 눈물,그리고 노무현과 임수빈 검사

2011. 11. 7. 09:08일반/금융·경제·사회

728x90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 선고를 받고 찾아간 곳은 봉하마을이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요? 한명숙 전 총리는 트위터에서 다음과 같이 심경을 밝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참배하고 그의 작은 비석에 두 손 얹었어요. 차가운 느낌이 그분이 겪었을 고통의 무게로 다가와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사는세상 꼭 만들고 싶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절규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위에 손을 얹는 순간 자신보다 더 힘들고 고통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니 그저 눈물만 나왔을 것입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정치인 중에서 가장 깨끗했던 인물에서 한순간 비열하고, 더러운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사람들에게 질타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린 주역이 바로 검찰입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불법정치 자금 수수 사건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나오면서 “이번 판결은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선고이며, 이명박 정권과 정치검찰이 합작해 만든 추악한 정치공작에 대한 단죄”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검찰이 정치검찰로 활약했던 일들을 수없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조봉암' 사건은 이승만이 정적 조봉암을 제거하기 위해서, 'KBS 정연주 사장 배임건'은 이명박 정권 첫해에 언론을 장악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을 늘 곱지 않습니다. 검찰이 법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치 권력자의 충견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검찰에는 이런 썩어빠진 사람들만이 있을까요?

오늘 저는 한 명의 전직 검사를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MBCPD수첩 화면 갈무리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자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보도했습니다. PD 수첩이 방송되자 촛불집회 시위가 거세어졌고, 검찰은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수사팀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국민의 불안과 의혹 해소가 시급하다면서 한 달 만인 7월 29일, 방송된 프로그램의 19곳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됐다는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당시 PD수첩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배경에 대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주재한 회의에서 MBC PD수첩 방송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라는 언급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준표 의원은 '일벌백계'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이들이 직접 검찰에 지시했는가를 물어본다면 알려진 사실은 없습니다.(공식적으로) 그러나 검찰은 '촛불세력'이 있기에 배후를 찾아내야 한다는 정부 측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고 알 수 있었던 일들입니다.

ⓒYTN 화면 갈무리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PD수첩 사건을 담당했던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합니다. 임수빈 부장검사의 사표는 PD수첩에 대한 검찰 조차의 오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PD수첩 수사가 시작되면서 검찰은 “형사처벌보다는 진실 규명 차원의 수사”라는 법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다가, 갑자기 중간수사 결과에서는 PD수첩의 오류를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처벌할 수 있다는 식의 발표를 했습니다.

임수빈 부장검사는 처음부터 PD수첩에 대한 수사의지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로 'PD 수첩은 정부 비판에 모아졌기 때문에 개인 명예 훼손에 대한 약하고, 법리 적용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비추었습니다. 부장검사 자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PD수첩 당사자에 대한 소환도 늦어지고 수사도 8개월 이상이나 장기화 됐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에 검찰에서는 속이 탔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단순한 사건으로 왜 수사를 8개월이나 끌었는지, 혹시 일부러 시간을 끈 것은 아닌가?라는 의혹을 임수빈 검사는 받았습니다.

임수빈 검사는 결국 수사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고 중간에 사퇴하였습니다.

 

ⓒYTN 화면 갈무리


임수빈 검사가 사표를 내자 임채진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전현준)에 사건을 배당했고, 그동안 임 검사가 하지 않았던 제작진의 이메일과 자택을 압수 수색했고,그간 소환에 불응했던 프로듀서와 작가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아 이들을 체포했습니다. 여기에 MBC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바뀌자 8개월 동안 하지 않았던 자택과 MBC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 시작됐고,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체포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김보슬 PD는 결혼을 나흘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까지도 방해하며 신속히 체포된 상황을 보면 검사 한 사람이 얼마나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임수빈 검사는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원을 졸업했으면 197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검 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을 거치면서 검찰 내에서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검찰 내 비판은 'PD 수첩' 사건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임수빈 검사를 이야기하면서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집안입니다. 임수빈 검사의 처가는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집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보다는 독립운동가 출신 집안에 의식있는 가문이라는 사실이 다릅니다.

많은 유명 인물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있습니다.

임수빈 검사는 속칭 검사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너무 소심했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까닭에 상관에게 야단을 맞아도 철저하게 일로 보여주었지, 부하직원이나 수사관들에게 큰소리 내는 법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최태민 보고서'를 보도한 월간<신동아>를 고발한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후보에게 유리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단지 동아일보 기자들 때문에 영장집행을 하지 못했을 뿐인데 정치적인 결과에 휘말린 것입니다.

혼자 술을 마시면서 정치 검찰에 대한 답답함을 풀었던 그에게 정치검찰은 어쩌면 자신의 가치관과 삶과는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 모릅니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와 MBC PD 수첩 제작진 ⓒ민중의 소리


검찰로부터 기소되었던 한명숙 전 총리와 MBC PD 수첩 제작진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하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주장은, 사람들에게 거짓과 타락이라는 의혹을 받게 하기에 충분했고, 어쩌면 그들의 의도는 성공했는지 모릅니다.

단지 수사만 했다고 저들은 말하면서 법조인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엄정한 법의 집행자라고 자부했던 검찰은 막상 자신들의 비리와 의혹에는 더러운 손을 대지도 않습니다.

만약 상식적인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정치 검찰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을 권력에 팔아버리고, 충견으로 주인의 발을 핥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현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던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

노무현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던 임채진 검찰총장은 미네르바 구속,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KBS 정연주 사장, MBC 수사 등을 진행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인물입니다.

전직대통령에 대해 예의조차 지키지 않았던 검찰의 무리한 수사 뒤편에,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은 검찰총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사 외압과 정치 검찰이 싫어서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던 검사가 사표를 던졌습니다.

'책도 글도 쓸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라고 표현할 만큼 힘들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깨끗한 정치인에서 한순간에 비열한 정치인으로 마녀사냥을 당했던 한명숙 전 총리.

이승만,박정희, 전두환 시대에서 정치권력자의 충견으로 살았던 정치 검찰은 지금도 살아 있고, 영화처럼 청와대의 말 한마디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수사라는 명목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할 준비를 늘 하고 있습니다.

임수빈 검사는 소설을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02년 9월 7일 오후 학벌없는 사회 월례토론회에 참석, 강연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으로 갔던 많은 개혁적 정치인들이 더 이상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에 있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저는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노선과 정책에 따라 정계를 재편하자고 공개적으로 국민에게 주장하고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민주세력, 개혁세력, 통합세력을 하나로 뭉쳐 지역구도를 정책구도로 재편하고, 이 세력이 국회의 다수당이 되어 중산층과 서민의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이념과 정책정당을 통한 정치를 해나갈 것입니다. 이는 90년 3당 통합으로 붕괴된 정치 제도를 복원하는 것이며, 역사의 순리입니다.

저는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초선의원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었으며, 노동위원회에서 가장 많은 의정활동을 펼친 1등 의원이었습니다. 93년에 역대 야당의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해양수산부 장관도 잘 했습니다. 도전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국민여러분께서 도와주십시오.

■ 제가 대통령이 되면 원칙이 바로선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정직과 진실로서 정도를 걸어왔습니다. 동서통합, 노사화합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나아가서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성공시키겠습니다. 중산층과 서민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내실있는 경제, 안정과 성장이 조화된 탄탄한 경제를 만들겠습니다. 일자리 만들기, 일자리 찾아주기,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농업대책, 조세개혁과 복지제도로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학벌사회를 청산하고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개혁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교육개혁은 교육주체들과 함께 의논하고, 농업정책결정에 농민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며, 노사정위를 활성화시키겠습니다.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겠습니다. 강력한 지방육성ㆍ지방분권 등 지방화정책을 펼치겠습니다. 동북아 경제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가장 적합하다”생각해서, 저는 대통령에 되려는 것입니다.

■ 비전은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비전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비전은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비전입니다.
자격있는 사람이 말하고, 그리고 진실로서 말할 때 비로서 우리는 비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화려한 비전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구호들 중에 지켜진 것이 무엇입니까? 정의사회가 구현이 되었습니까? 보통사람의 시대가 왔습니까? 신한국 건설은 또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전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비전을 외쳐대는 바람에 이제 국민들이 지도자가 내세우는 비전을 믿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과 말을 검토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또 자신이 한 말을 실천할 철학과 자질을 갖고 있는 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걸어온 과거를 보아야,
그 사람이 걸어갈 미래가 보이는 법입니다.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반성도 하지 않고,
언제나 “미래를 보고 앞으로 나가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에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사람의 미래는 또다시 국민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저 노무현은 약속합니다.
화려한 구호나 공약보다 더 소중한 신뢰와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원칙의 시대, 화합의 시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승리해서 정치개혁과 동서화합을 이루고,
그리고 원칙이 승리한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또 역사에게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주석 11)


주석
11> <노무현 재단> 제공.

 


이렇듯 하루하루 사는게 힘겹고 
자꾸만 마음의 문 굳게 닫고 싶어질땐 
내가 아주 작아 보일 
큰사람 하나 만나고 싶습니다 
망가진 가슴에 
다시 도랑 하나 흐르게 할 
그런, 고운 사람의 노래 
듣고 싶습니다
-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백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