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8. 12:5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즉문즉답(卽問卽答)>/고우스님
고우 스님의 법문이 끝난 후 바로 즉문즉답(卽問卽答) 시간이 이어졌다.
한 50대 거사가 일어나 질문했다.
“아뢰야식(제8식)은 자성(自性)과 같습니까. 다른 것입니까?”
고우 스님은 좋은 질문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아뢰야식과 자성은 같다고도 할 수 있지만 효능면에서는 다릅니다. 아뢰야식, 이 정도만 알아도
담담해서 악한 생각과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는 경지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를 극복해야 성불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아뢰야식을 보고 착각해서 공부를 멈추고 맙니다.”
충주에서 올라왔다는 30대 거사의 두번 째 질문은 더욱 난해했다.
“나라는 것이 없다고 하여 ‘무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윤회하는 주체는 무엇입니까?”
고우 스님은 두 번째 질문에도 주저없이 답변했다.
“세계의 학자들이 한평생 연구하는 분야가 무아인데, 무엇이 윤회하는가 라는 ‘윤회와 무아’에 대
한 주제입니다. 우리나라의 호진 스님도 이 주제로 박사학위를 딴 걸로 압니다. 학자들은 이 문제
에 평생 몰두하지만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풀립니다. 윤회의 주체는 아시다시피 제8식인 아뢰
야식입니다. 그러나 아뢰야식 역시 연기된 현상이기에 이 윤회하는 식 역시, 무아인 것입니다. 부
처님께서는 ‘모든 존재가 연기된 것이기에 무아(제법무아)’라고 하셨듯이 전혀 이론적으로 상충되
는 문제가 아닙니다. 형상이 있거나 없거나 모든 존재는 연기되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이 공이자
연기이기에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컵을 들며) 여러분은 이것이 꽉 찬 걸로 보이겠지만, 이 컵이
그대로 공인 것입니다.”
세번 째 역시 50대 거사의 질문.
“스님께서는 의심을 내기 위한 의심은 하지 말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참 의심은 어떻게 해야 합니
까?”
“본래성불인 그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의심이 필요하겠지요. <선요>에서도 대분심, 대
의심, 대신심을 공부의 필수요건으로 말했지만, 이를 다 갖추더라도 자기가 파놓은 구덩이에 떨어
져 있는 꼴입니다. 살이 터지고 뼈가 드러나도록 용맹정진해도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 대는 꼴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큰 의심이 든 것이고, 이걸 깨치면 성불입니다. 왜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
대는가를 알면 얻은 게 없이 이미 다 갖춰져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의심을 크게 하려면 분심과
신심이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입니다.”
<수행법>
고우 스님의 수행법은 ‘닦을 것이 없음을 닦는’ 무수지수(無修之修)의 단박깨침(頓悟)을 강조하는
정통 조사선, 즉 최상승선의 입장이기에 따로이 수행법이 없다고 해야 정답이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구지 설명하자면, ‘본래 부처’임을 철저히 믿고 늘 성
성적적(惺惺寂寂)한 가운데 한 생각 일어 난 그 자리를 돌이켜 비춰 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 공
부로 요약된다.
“<선요>에서는 물을 져다가 우물에 붓듯이, 물에 비친 달 건지듯이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우물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더 차지 않고, 물에 비친 달을 아무리 건지려 해도 얻어지지 않듯이 깨달을 것
이란 없습니다. 보고 듣는 그놈이 하는 일이니, 집착만 세탁해 버리면 됩니다.”
고우 스님은 여러 수행법을 닦더라도 우리가 본래 부처임을 꼭 믿고 해나가면 된다고 말한다. 참
선뿐만 아니라 봉사, 주력, 염불도 좋다고 한다. ‘본래 성불’임을 믿고 근기에 맞게 공부하되 주의
할 점은 자기를 비우고 쉬는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고우 스님은 선(禪)은 부처님의 오리지널 수행법인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육조 스님의 제자인 영가 스님은 사마타를 ‘적적성성(寂寂惺惺)’, 위빠사나를 ‘성성적적(惺
惺寂寂)’으로 표현했습니다. 6바라밀 수행과 염불, 주력, 참선 등의 모든 수행법이 ‘적적’과 ‘성
성’을 강조합니다. ‘성성’은 혼침(昏沈, 조는 것)하지 않는 것이며, 적적은 ‘도거(掉擧, 망상)’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외도는 적적(寂寂)만을 강조해서 삼매에 들면 모든 행위가 정지되지만, 불교
삼매(三昧)는 모든 행위를 하면서도 화두를 들 수 있습니다.”
고우 스님은 늘 ‘성성적적’한 공부를 통해 삼매에 들었을 때나 깨어있을 때나 양쪽 다 삼매를 성취
하는 것, 이것이 불교수행의 특색이라고 말한다. 고우 스님이 <육조단경> ‘정혜불이품’ 에 “정혜
(定慧)가 하나가 되더라도 도가 아니다. 하나가 되어 통류해야 한다”라는 대목을 보다가 안목이 열
린 것도 정과 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행에 앞서 중
도연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바로 보는 정견(正見)이 가장 중요하
다”는 고우 스님은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좋은날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분별심을 버리고 비우고
쉬는 공부를 해 나가야한다“고 말한다.
한편 고우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강정진 법사가 펴낸 <영원한 대자유인>과 관련,
“그 책에서는 수행법도, 깨달음도 방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조사선에서는 그런 설명은 발도 붙일 수 없기에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낙엽빛깔 닮은 커피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잎 두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잎 두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 오십시오
낙엽빛깔 닮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마음을 향기롭게 피어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우리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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